넌 나의 쓸모야

<설거지 내가 하면 안 될까?>

by 카이

나이가 들수록 우울감이 심해진다고 한다. 매일 노인들과 생활하고 있는 내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여러 가지 이유야 있겠지만, 사회에서 혹은 가정에서 쓸모가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는 상실감이 그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내가 일하고 있는 일본 요양원에서도 그런 생각을 하고 계시는 할머니들이 많으며, 나름대로 본인의 존재 이유를 찾으려 노력하시는 것이 눈에 보이기도 한다.



빨래 정리 내가 도와줄까?


할머니들의 옷을 세탁기에 돌려 세탁한 후에 건조까지 마친 후, 테이블에 마른빨래를 올려두고 빨래를 개고 있었다. 소파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계시던 키무라 할머니가 조용히 내쪽으로 걸어오신다.


"빨래했어? 내가 도와줄까?"


"네. 키무라 할머니, 감사합니다"


할머니는 빨래 앞의 의자에 앉아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빨래를 개기 시작하셨다. 할머니는 정말 열심히 빨래를 정리하셨다. 온 맘과 정성을 다해 수건과 옷가지들을 가지런히 접으셨다. 나와 함께 한참을 정리하시던 할머니는 빨래 정리가 끝나자 뿌듯한 표정으로 일어나셔서 다시 소파로 돌아가시면서 내게 이야기하셨다.


"또 내가 도와줄 일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


"네 감사합니다"


사실, 일의 효율로만 생각한다면 할머니가 도와주지 않는 것이 내 일을 돕는 것이다. 나 홀로 빨래 정리를 하면 10분이면 끝나지만, 할머니와 함께 하면 20분이 걸리게 된다. 게다가 할머니가 정성 들여 접어주신 빨래들은 사실 다시 한번 정리를 해야 한다. 일이 두 배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마치 3살 정도의 아이가 엄마를 도와주겠다며, 집안일을 돕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머니가 빨래를 도와주겠다고 하시면 흔쾌히 도와달라고 한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할머니를 위해서이다.


언젠가 키무라 할머니와 함께 나란히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을 때, 할머니는 조용히 내게 말했던 적이 있다.


"난 이제 늙어서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졌어. 젊었을 땐, 나도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여러 가지를 할 수 있었던 사람이었는데. 일하고 있는 사람들 보면 부러워..."


그때 그 말이 마음에 걸려, 간단한 일을 할 때 할머니께 부탁을 드렸다.


빨래를 개거나, 쟁반의 먼지를 닦거나, 말차(녹차) 잎을 조그만 티백에 소분해서 담는 일들을 부탁드렸다.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정말 진지한 얼굴로 최선을 다해서 무언가 주어진 일을 하시는 모습을 보이셨다. 물론, 나중에 내가 할머니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다시 전체적으로 정리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설거지 내가 하면 안 될까?


저녁식사가 끝나고 설거지를 하고 있을 때였다. 비교적 젊은 시기에 치매가 와버린 어머니 한 분이 내 근처에서 괜스레 왔다 갔다 하셨다.


"무슨 일 있으세요? 뭐 필요하세요?"

라는 나의 물음에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다.


"저기... 설거지 내가... 하면 안 될까?"


"아... 네... 감사합니다"


이분 역시,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진 본인이 너무 한심하고 괴로운 것일 것이다. 마냥 앉아서 텔레비전만 보고, 주는 식사만 먹고 하는 자신이 싫을 것이다. 이 분도 젊은 시절에는, 아니 치매가 발현되기 전에는 사회의 한 곳에서 본인의 역할을 했었을 것이리라.


사실 이분은 무언가 본인이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하고 싶다고 수차례 나에게 이야기를 했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부탁하지 않자, 내가 하는 일들을 줄곧 바라보다 설거지 정도는 본인이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판단이 섰던 것 같다.


이 분께 설거지를 맡기고 나는 자리를 비켜드렸다. 한참이 지나고 설거지가 끝났다며 내게 말씀하셨다. 나는 고개 숙여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건넸다. 한층 밝은 얼굴로 본인의 방에 들어가셨다. 아마도 본인이 아직도 누군가에게 쓸모가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시며 만족하셨을 것이다.


이 분이 본인의 방으로 들어가시고 방문을 닫으신 것을 확인하고 난 싱크대로 가서 그릇들을 살펴보았다. 밥그릇과 국그릇에는 아직 세제와 비눗물이 그대로 남아있었으며, 수저에는 밥알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설거지를 처음부터 다시 했다. 이 분이 다시 거실로 나오시는 건 아닌지 예의주시하면서 몰래 서둘러서 설거지를 다시 했다. 본인이 했던 설거지가 다른 사람이 다시 한번 해야 하는 정도인 것을 알게 된다면, 그것 또한 좌절감을 느끼게 될지도 모르기에.




넌 나의 쓸모야


'무빙'이라는 드라마를 본 적이 있다. 국정원에서 현장직으로 일하던 남자주인공이 현장직에서 사무직으로 옮긴 뒤, 사무업무에 서투른 자신을 발견하며, 좌절하는 심정으로 하루하루 직장생활을 하는 장면이 있었다.


하루는 집에 돌아와 아내와 대화하는 장면이 나왔다.


"나는 회사에서 아무 쓸모가 없어져 버린 것 같아..."


이때, 조용히 듣고 있던 아내가 대답했다.


"넌 나의 쓸모야. 난 너의 쓸모고"


이 얼마나 아름다운 사랑의 고백이고, 상대방을 존중하며, 존재감을 치켜세워주는 대사인가.


요양원에서 일하고 있는 나도 이 말을 생각하며, 상대방을 존중하며 존재감과 자존감을 느끼도록 일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우리모두는 누군가에게 쓸모 있는 존재이다.


그리고 그 쓸모라는 단어의 의미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 충분한 이유가 될 것이다.


비록 치매노인이라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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