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갈 곳이 없는 환자
병원이라는 공간은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곳이지도 하지만, 환자가 경험하는 삶의 그늘이 드러나는 곳이기도 하다.
중환자실 치료 중인 40대 환자 곁에는 가족이나 형제, 친구조차 없다. 곧 일반 병실로 옮겨질 예정이지만 병간호할 보호자가 없어 의료진에서 사회복지팀에 도움을 요청했다.
과거 관절 질환으로 수술받았지만, 제대로 된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모양이다. 골수염으로 다시 입원해 수술을 받았고 앞으로도 2주 이상 집중적인 항생제 치료가 필요하지만 허약해 보이는 환자에게 치료 기간은 더 길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환자와 의사소통이 가능했지만 이해하려는 의지도, 다시 건강을 회복해 살아가겠다는 욕구도 높지 않았다. 밝은 표정도 어두운 표정도 아닌 깊은 무기력함이 보일 뿐이다.
어린 시절 부모님은 돌아가셨고 이른 시기에 노숙을 경험했다. 일용근로를 하며 버텼지만 때론 음주 문제로 구치소를 전전하기도 했다. 최근 구치소에서 나온 뒤 요양병원에 입원한 경험이 있고 퇴원 후 다시 노숙을 시작했다.
다행히 이전에도 내가 근무하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이력이 있어 입원 시 등록되어 있던 '양어머니'에게 연락했다. 양어머니는 환자가 월세 생활을 하던 시절 만났던 임대인이었고 어려운 청년의 사정이 안타까워 잠시 도움을 주었을 뿐, 이제는 환자를 도울 여력도 마음의 여유도 없다며 냉정하게 선을 그었다. 양어머니는 실제 가족이 아니고 책임도 없으니, 결정을 나무랄 수 없다.
그동안 도움 줬던 양어머니 이야기에 환자는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듯 무덤덤한 반응이었고 기대도 없었다. 짧은 희망의 끈이라도 잡으려는 의지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자신이 처한 문제를 전혀 모르지는 않을 텐데 무기력하고 무감각했다.
그나마 건강보험자격이 유지되고 있다는 것은 어딘가에 주소지가 존재한다는 것이지만 환자는 자신의 주소지조차 알지 못했고 수소문 끝에 어느 요양병원으로 등록된 주소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관할 구청을 통해 최근 기초생활수급 신청했지만, 본인 명의의 주택과 상가 건물을 보유하고 있어 탈락했다는 사실을 추가로 확인할 수 있었다.
노숙하며 구치소를 전전하기도 했던 환자에게 주택과 상가 건물이라니? 그럴만한 능력이 전혀 없는 환자는 노숙 생활 당시 누군가의 꼬임에 빠져 명의를 빌려준 듯하다. 명의를 빌려준 대가로 지금 환자는 어떤 복지 혜택도 받을 수없는 상황에 부닥쳤다. 서류상으로 환자는 재력가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고, 복지 혜택에서 완전히 멀어져 버린 상태다.
항생제 치료가 종료되면 퇴원해야 하지만 증상 관리를 위해 통원 치료나 요양병원 입원 치료가 필요하다. 작은 희망을 가지고 주소지로 등록된 요양병원에 연락해 봤지만, 병원비를 낼 수 없는 환자를 거부했고 이전 병원비도 받지 못했다며 손사래 친다. 이미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수 없다는 사실도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다른 요양병원에도 연락해 봤지만, 보호자도 없고 병원비도 낼 수 없는 환자를 받아주겠다는 곳은 없다.
가끔 접하게 되는 문제지만 명의대여로 인한 문제는 해결이 쉽지 않다. 명의 차용자를 찾기도 힘들뿐더러 찾는다 해도 책임을 입증하지 못하면 모든 법적 책임과 채무는 명의 대여자에게 돌아간다. 복잡한 법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기약 없는 시간이 걸리기도 하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기도 한다.
의료진과 원무팀에서 퇴원 계획을 묻는 연락이 잦아지지만, 여전히 ‘확인 중’이라는 애매한 답변밖에 할 수 없다. 다시 노숙 생활로 내몰 수 없어 병원에 고립되어 버린 환자의 현실에 좀처럼 해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가짜 재력에 갇혀버린 환자의 삶에 고민이 깊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