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 의심 신고
병원 내 보안요원이 두꺼운 외투를 찾는다며 얇은 옷을 입은 아이와 함께 사회복지팀을 찾아왔다.
어머니가 입원 중이었고 며칠 동안 병간호를 해왔다고 했다. 그런데 어떤 갈등이 있었는지 어머니가 아이를 병실에서 쫓아냈고, 갑작스럽게 추워진 날씨에 외투를 챙길 겨를이 없었다고 한다. 고등학생 정도의 아이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일반적인 기대와는 다른 상황이었다.
창고에 쌓여있는 기부물품 중 두꺼운 외투를 찾아 아이에게 건넸다. 이어 다른 가족에게 연락할 수 있는지 물었지만, 아이는 묵묵히 고개를 저었다.
“등교하지 않고 병원에 있었어요?”
“고등학교는 중퇴했어요.”
“왜 중퇴했나요?”
“배가 자주 아파서 결석이 많았고, 아이들과 잘 지내지 못했어요. 그래서 그만뒀어요.”
예상하지 못한 답변이었다.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중퇴 후 집에서만 지낸다고 한다.
“배는 왜 자주 아팠어요?”
“1년 전에 종양 진단을 받았고 서울에 있는 병원으로 가보라고 들었지만 가지 않았어요.”
서울의 상급병원을 권유받았다는 것은 그만큼 높은 수준의 의학적 치료가 필요했다는 의미다. 대부분의 보호자라면 치료를 위해 발 빠르게 움직였겠지만, 아이는 1년 동안 아무런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지내왔다고 했다.
기록을 확인해 보니 내가 있는 병원에서 ‘복부 종양’으로 진단받은 이후 추가 진료가 없었다.
“집에는 어떻게 갈 거예요?” 하고 묻자 아이는 침묵했다.
곧 울음을 터트릴 것 같았다. 휴대폰도 현금도 없었다. 다른 가족에게 도움을 구할 수 없는지 물으니 아이는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했다.
전날에는 아버지에게 폭행을 당했고, 오늘은 어머니에게 머리채를 잡혔다고 했다. 부모는 평소 아이 앞에서 ‘고아원에 보내야 한다.’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아이의 진술이 사실이라면, 신체적·정신적 학대와 방임·유기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아이의 나이는 충분히 의사소통이 가능한 단계였기에 다시 물었다.
“부모에게 적절한 보호를 받고 있다고 느끼나요?”
“아니요.”
“집이 아니라면 갈 곳이 있나요?”
“남자 친구 집이요.”
남자 친구는 성인이었고, 부모와의 갈등을 피해 의지하는 대상처럼 보였지만 실질적인 보호자는 아니었다. 미성년자가 성인에게 의존하는 상황 또한 위험요소가 될 수밖에 없었다.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은 누구든지 학대 의심이 있을 경우 신고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의료기관 종사자는 신고의무자다.
의료기관 종사자가 아동학대 신고의무자인 이유는 아동의 신체적, 정신적 학대 등 아동학대의 징후를 발견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가끔 소아청소년과에서 아동학대가 의심되나 눈에 띄는 외상이 없는 경우 사회복지팀에 의뢰하는 경우는 있지만 지금처럼 아동이 환자가 아닌 때 아동학대로 의심되는 경우는 처음 경험한다.
"보호해 줄 수 있는 곳이 있다면 가고 싶어요?"
"어디든 가고 싶어요. 집으로는 가기 싫어요."
‘의심만 있어도 신고한다.’는 원칙이 있지만, 현실에서 의료기관이라는 특성상 신고자가 특정될 위험이 있어 망설여지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아이는 보호시설 입소를 희망했고, 더 이상 가정으로의 복귀가 적절하지 않다는 판단으로 아동학대 의심 신고를 했다.
경찰관 2명이 먼저 도착해 1차 면담을 진행했고, 이후 형사 2명이 추가로 출동했다. 경찰은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 무렵부터 학대를 받아온 것으로 추정했고, 이어 구청 아동보호팀이 출동해 응급보호가 이루어졌다.
일련의 절차가 빠르게 진행되는 동안 아쉬움도 있었다. 신고자인 나에게 경찰은 별도의 진술을 요청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이가 또래에 비해 의사표현이 명확하다 하더라도, 신고자의 관찰과 진술은 사례 판단에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동보호팀이 아이와 동행해 떠난 후, 곧 병원으로 연락이 왔다. 아이의 소지품이 병실에 있으니 가져다 달라는 요청이었다. 신고자인 나로서 아이의 어머니에게 어떤 설명을 해야 할지 순간 난감했다. 경찰과 함께 물품을 수거했다면 더욱 안전하고 자연스러웠을 일인데, 다소 아쉬운 부분이었다.
병실에 들렀을 때 어머니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밝은 표정으로 휴대폰을 보며 누워 있었다. 경찰관이 다녀간 상황이라면 으레 긴장되거나 불안하기 마련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모른 척 아이 어머니에게 경찰에서 아이의 물품을 가져다 달라는 연락받고 왔다며 둘러댔다. 대답은 더 가관이다.
“아이가 옷을 입고 있든 벗고 있든 알아서 하라고 하세요.”
"아이 물품은 못 주겠어요."
2020년, 온 국민을 분노하게 했던 ‘정인이 사건’을 모두 기억할 것이다.
아동권리는 시간이 지나 잊히는 사회적 이슈가 아니라,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권리’다.
아동이 처한 현실과 우리 사회의 보호 체계가 여전히 강화되어야 함을 다시 한번 절실히 깨닫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