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끝을 지지하는 마지막 안전망

'가족'은 어떤 의미일까?

by 여행자

아버지는 경운기 사고로 척추를 다쳐 누워 지내게 되었고, 더 이상 경제활동이 불가능했다.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환자는 학업을 중단하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다.


부모와 세 명의 여동생을 위해 그는 가장이 되었다.


불과 열여덟 살의 미성숙한 나이에 생계부담을 홀로 짊어진 그는 외지에서 힘든 노동을 감수했고, 그렇게 7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에야 가족의 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고마움과 반가운 마음에 가족은 그를 맞이했지만 우울 증상과 감정 조절의 어려움을 반복적으로 보였다. 집기 를 부수는 등 분노를 효과적으로 조절하지 못했다. 가족에게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진 않았지만 증상은 점차 악화되었고, 조현병 진단을 받아 정신과 병원에 입·퇴원을 반복하며 살아간다.


외지에서 보낸 7년 동안 어떤 경험을 했는지 가족에게 이야기하지 않았고, 가족 역시 죄책감과 미안한 마음에 묻지 않았다. 정상적인 사회생활은 어려웠고, 부모가 돌아가신 뒤에는 통제와 돌봄은 더 힘들어졌다.


타인에 대한 이해나 윤리적 판단이 어려워 경범죄로 경찰 신고를 당하기도 했다. 주변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구치소에 수감되는 상황도 있었지만, 동생들은 그를 원망하거나 단절하지 않았다. 오히려 환자가 어린 나이에 가족의 생계를 짊어지지 않았다면 지금의 가정을 유지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그는 경범죄로 구치소에 수감되었고,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뇌출혈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다. 경찰 신고와 구치소 출입이 반복되는 가정은 흔히 가족 갈등, 돌봄 붕괴로 이어지기 쉽지만, 여동생들은 법적 후견인으로 등록하며 지속적인 돌봄 책임을 감당하고 있다.


뇌출혈 후유증인지 조현병 증상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상태로 장기간 치료가 필요하다. 병원비와 간병비는 점점 늘어났지만, 여동생들은 여전히 환자를 탓하지 않았다.


"그동안 힘들지 않으셨어요?"

"오빠이고 지금은 환자니까요."


질문이 무색할 정도로 대답은 간결했다.


준비되지 않았던 어린 시절,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감내해야 했던 경험은 환자 삶의 전부였을 것이다. 이제는 동생들의 돌봄 안에서 치료를 이어가고 있으며, 가족은 환자의 상실과 아픔을 함께 감당하고 있다.


수많은 가족을 만나지만, 이 환자에게 ‘가족’은 단순한 관계를 넘어 서로의 끝을 지지하는 마지막 안전망이다. 최근 좀처럼 볼 수 없었던 강한 보호요인과 환자의 회복 가능성을 지탱하는 중요한 가족의 기능을 볼 수 있었다.


우리에게 ‘가족’은 어떤 의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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