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남아 있을 가능성

자신을 돌아보려는 흔적도 경각심도 없는 환자

by 여행자

사이렌을 울리며 구급차가 드나들고 통증과 불안을 안고 찾아오는 환자들로 응급실은 언제나 긴박하다.

가벼운 증상으로 응급실에 올 일은 많지 않지만 그럼에도 너무 자주 응급실에 오는 환자도 있다.

수십 번씩 응급실을 이용하는 경우 그 이유를 단순히 질병으로만 설명하긴 어렵다.


40대 중반의 환자가 그랬다.


이번엔 뇌출혈로 응급수술 후 중환자실에서 치료받고 있다.

수십 번을 이용한 응급 기록에 ‘보호자’ 칸은 늘 비어 있었고 그의 삶이 기록 속 단어로 남아 있다.

‘음주’, ‘폭언’, ‘욕설’, ‘비협조’….


기초생활수급자로 보호받고 있었기에 관할 행정복지센터에 연락을 취했다.

입원 상황을 알리고 보호자 확인을 요청하자 담당자는 잠시 멈칫했다.


“그분은 협조적이지 않으시고 가족과 관계도 끊긴 지 오래예요.”

“그래도 노모가 계시니 연락해 보겠습니다.”


평소 행정복지센터에서도 사건이 좀 있었던 듯하다.

환자는 생계비 지원을 받았지만, 월세를 제외한 돈은 모두 술로 사라졌고 심지어 돈을 빌려 술을 사기도 했기 때문에 늘 가난했고 늘 취해 있었다.

자신을 돌아보려는 흔적도 경각심도 없었다.


행정복지센터 담당자의 연락을 기다리는 동안 환자의 의무기록을 다시 열람했다.

불과 하루가 지난 환자의 기록에 폭언과 욕설의 흔적이 빼곡했고, 의료진과 간호사에게 쏟아진 말의 상처가 어지럽기까지 했다.

수위가 높아 곧 무슨 일이라도 벌어질 것만 같지만 병원에서 치료를 거부할 권리는 없다.

환자는 언제나 환자이기 때문이다.


잠시 후 행정복지센터에서 노모와 연락이 닿았다며 노모의 연락처를 알려줬다.

70대 후반의 어머니는 병원에서 걸려 온 전화에 전혀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담담했다.

마치 언젠가는 연락이 올 것을 예감하고 있었던 듯했다.

입원 경위와 치료 상황을 설명하던 중 어머니가 말을 끊었다.


“더는 듣고 싶지 않아요.”

“그 아이에게 너무 많은 상처를 받아서 이미 오래전에 연락을 끊었어요.”


그 말에 오래된 상처가 스며 있어 더는 말을 이어갈 수 없었다.


“그래도 궁금하시거나 필요하시면 연락 주세요.”


“전화할 일 없을 것 같아요.”

“그리고 앞으로 전화는 안 하셨으면 좋겠어요.”

“그 아이가 꿈에 나올까 무서워요.”


노모는 감정적이지 않았고 오히려 차분했다.


숨만 쉬어도 나이를 먹는다고 하지만 40대는 적은 나이가 아니다.

가족도, 사회도, 자신조차도 지탱하지 못했고, 가족조차 단칼에 관계를 끊고 싶다고 말하는 환자는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아온 것일까?


내 역할은 단순히 보호자를 찾고 지원 체계를 연결하는 일에 머물지 않는다.

과정에 환자의 삶의 궤적과 마주한다.


환자는 이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나아지길 바라지만 아마 앞으로도 다르지 않을 것 같다.

그럼에도 나는 환자를 만나고 상담한다.

아주 작은 변화라도 가능하다는 믿음을 가져본다.

여전히 남아 있을 가능성을 본다.

내가 먼저 다가가지 않으면 환자는 언제나 자신의 그림자 속에 살게 될 것이다.


나는 ‘의료사회복지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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