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가 되고 싶었던 공대생

SBI 출판학교 도전기 1탄 - 서류

by 잘자유



회사를 다닐 때, 나는 도서관 사서가 되고 싶어 알아보기도 했다. 그만큼 책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도서관은 나에게 힐링되는 곳이었다. 조용한 분위기, 산속에 묻혀 있는 도서관, 그리고 책 냄새.. 도서관 책 냄새를 맡으면 안정감이 들곤 했다. 아침마다 도서관으로 출근한다면 너무 행복할 것 같았다.



사서가 되기 위해서는 문헌정보학과를 나와야 했다. 이미 기계과를 졸업한 나는 자격 요건이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나에게도 기회가 있었으니.. 바로 사서교육원이다. 사서교육원은 1년 과정으로, 졸업하게 되면 준사서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다. 내가 알아봤던 사서교육원은 12월에 모집공고가 떴다.



이렇게 열심히 알아보고 지원서를 쓸까 말까 2년이나 고민했다. 고민한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사서의 대우가 좋지 않았고, 일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며, 내가 하고 싶은 일과 딱 맞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고민만 하다 결국 지원하지 못했다.



그게 2019년, 2020년의 일이었다. 2년이 지난 지금, 나는 또 책과 관련된 일을 알아보고 있었다.








출판사 폐업신고를 하며 출판사에 들어가 일을 배워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출판업계는 돈을 벌기 어려웠다. 다들 출판은 사양산업이라고 했다. 박봉이라고도 했다. 그렇게 출판사에 대해 알아보다가 SBI 출판학교에 대해 알게 되었다. 경력만 뽑는 출판업계에서 신입이 취직하기 가장 좋은 루트라고 했다. 1년에 한 번 모집하는데 마침 모집 공고가 떠있었다.



SBI 출판학교를 발견한 나는, 무작정 지원서를 쓰기 시작했다. 먼저 어느 분야에 도전할지 결정해야 했다. SBI 출판학교에서는 편집자, 마케터, 디자이너 3개 분야를 모집하고 있었다. 하고 싶은 것이 아주 많은 나답게(?) 모든 분야에 끌렸다. 그래도 그중에 어떤 일을 했을 때 가장 재미있을지 생각해 보았다.



출판사 직원 하면 편집자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책을 기획하고, 작가와 함께 책을 만들어가는 사람. 딱 봐도 너무 멋진 직업이다. 하지만 이 일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니, 교정/교열/윤문 작업이 필수였다. 나는 책상에 앉아 글을 보는 것보단 밖을 돌아다니며 여러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정말 매력 있는 분야였지만, 다른 분야로 눈을 돌렸다.



디자이너도 해보고 싶은 분야였다. 대학생 때도 드로잉기초 수업을 듣고, 시각디자인학부를 고민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제 스무 살이 아니다. 그들의 노고를 충분히 알고 있고, 30살에 그것을 시작할 자신은 없었다. 이미 실력이 뛰어난 친구들이 많을 테니 뽑힐 리도 만무했다. 그렇다면 남은 분야는 하나였다.



출판 마케터.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하지만 '마케터'란 직업에는 그전부터 관심이 있었다. ENFP에게 잘 맞는 직업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항상 새로운 것을 찾아내야 하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야 하고,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필요한 일.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책'과 관련된 일이다. 지원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SBI 출판학교에 입학하는 것은 쉽지 않다. 서류, 필기시험, 면접을 통과해야 한다. 첫 번째 관문인 서류부터 어렵다. 자기소개서는 언제나 어렵지만, 복병이 하나 더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독서 이력서'. 그동안 읽은 책 30권 이상을 쓰고, 각 책에 대한 200자 이내의 짧은 소감을 써야 한다. 30권의 책을 추리기도 힘들고, 그에 대한 소감을 모두 쓰기도 힘들다.



최근 읽은 책은 경제와 자기계발 책에 치중되어 있었다. 그래서 옛날에 읽었지만 재미있게 읽었던 소설책, 에세이 등을 추가해 약 50권의 목록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목록을 소설/에세이/인문/자기계발/경제경영/정치사회 6가지 분야로 나누었다. 각 분야별 6권 정도의 책을 선별하여 총 32권의 책을 골랐다. 소감은 생각나는 대로 짧게 썼다.



자기소개서에는 책에 대한 나의 진심과, 회사를 다니던 5년 동안 여러 부서와 협업한 경험 등을 적었다. 또 퇴사 이후 블로그를 하고, 전자책을 만들고, 그것을 배포한 경험을 바탕으로 내가 '출판 마케터'에 적합한 인재라는 것을 강조했다.



초조한 기다림의 시간이 지나고.. 5일 뒤, 서류 합격자 목록에서 내 이름을 발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