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발표 공포증이 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다. 대학생 때는 기계과였기에 발표할 일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내가 발표를 못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사람들을 좋아하고, 또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걸 좋아했기 때문이다.
내가 발표를 무서워한다는 걸 알게 된 것은 스물셋, 인턴 최종 발표를 할 때였다. 발표 자료를 만들 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다. 하지만 발표 날이 다가오자 긴장되기 시작했다. 잘하고 싶다는 부담감에 스크립트를 짜서 달달 외웠다. 발표 당일, 떨리는 목소리로 외운 스크립트를 줄줄 읊고 내려와 버리고 말았다. 다행히 합격은 했지만 그때의 경험이 트라우마로 남았다.
회사를 다니면서도 발표를 할 기회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발표 공포증을 극복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언젠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강의를 하고 싶다는 작은 소망이 있어서였다.
어느 날 프립이라는 어플을 통해 한 스피치 수업을 발견했다. 이름은 '자존감 스피치'.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 나에 대해 발표하며 발표에 대한 두려움을 줄여준다고 했다. 새로운 사람, 나에 대한 이야기, 발표 공포증 극복. 모든 키워드가 재밌어 보였다.
그 수업을 듣고 싶었지만 시간이 맞지 않아서, 서울까지 나가기 귀찮아서(?) 듣지 못했다. 그러다 퇴사 후, 몇 년 전에 보았던 것과 같은 수업이 눈에 들어왔다. 꽤 오래전에 봤던 것 같은데, 지금까지 진행되고 있다니 신기했다. 이번엔 백수이니만큼(!!) 망설이지 않고 '참여하기'를 눌렀다.
한창 집에서 혼자 글을 쓰고 책을 읽을 때였다. 인간적인 교류가 필요했다. 빨리 수업을 듣고 싶었지만 한 달 후에나 시작이었다. 발표에 대한 두려움 극복과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을 기대하며 한 달을 기다렸다.
첫 수업 시간은 기대했던 대로 좋았다. 하지만 내가 원했던 것 외에 또예상치 못하게 받게 된 선물이 있었다. '베개씨'라는 사람의 스토리였다.
베개씨님은 내가 찾던 유니콘 같은 사람이었다. 오랫동안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잘 다니던 대기업 퇴사 후 문화기획자, 래퍼, 연설가로 살아가고 있었다.
이런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도 너무 멋있는데, 게다가 랩도 하고 강연도 하다니. 진정한 다능인이었다. 다능인을 꿈꾸는 나에겐 하나하나 다 해보고 싶은 일이었다. 심지어 이 '자피치' 프로그램은 5년째 운영하고 있었다. 대단하다, 부럽다,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구나. 베개씨님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조금 더 용기를 내볼 수 있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삶'을 먼저 걷고 있는 선배들이 있다는 것은 너무나도 감사한 일이다. 멋진 스피치 문화를 만들고, 랩도 하고, 강연도 하는 베개씨님을 보며 나도 한 발짝 더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