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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잘자유 Aug 17. 2022

냉장고를 열면 안 돼

8시간의 정전


쏴아아-.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비가 내린다. 침대에 누워 창밖을 바라본다. 오전 9시. 동향인 우리 집은 보통 이 시간에도 불을 켠 듯 밝았다. 하지만 지금은 방 안이 먹구름 색으로 가득하다. 적당히 축축하고, 적당히 따뜻하다. 불을 켜고 싶어도, 에어컨을 켜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우리 아파트는 오늘, 정전되었기 때문이다.



변압기 교체공사로 인한 8시간 동안의 정전. 예고된 정전이었다. 아파트 전체의 전기가 나가면 냉장고 소리, 에어컨 소리, 모든 가전제품 소리가 나지 않고 조용하겠지. 하지만 새벽부터 시작된 비로 인해 아파트의 정적을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기회가 사라져 버렸다. 모든 것이 멈춘 집의 소리를 들어보고 싶었는데. 어쩔 수 없이 쏟아지는 빗소리를 듣는다. 어두컴컴한 방에서 듣는 빗소리도 나쁘지 않다.



핸드폰을 잠시 내려놓고 창 밖을 바라본다. 핸드폰은 쓸수록 배터리가 닳는다. 8시간 동안은 충전을 할 수 없다. 어두운 방에서 창 밖을 바라보며 누워있으니 다시 잠이 온다. 일어나 거실로 나온다. 정전이 되기 전 꺼내놓은 샐러드가 상 위에 있다.








정전이 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가장 걱정되는 건 냉장고였다. 요즘 날씨가 너무 더웠다. 8시간 동안 냉장고에 있는 음식이 상할까 봐, 그리고 냉동실에 있는 음식들이 녹을까 봐 걱정됐다. 네이버에 "정전 냉장고"라 검색하니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답은 간단했다. 냉장고를 열지 않으면 된다고 했다.



간단하지만 어려운 일이었다. 나도 모르게 냉장고를 까 봐 걱정이 됐다. 정전이 되기 전에 샐러드를 미리 꺼내놨다. 혹시 모르니 냉장고 문에 테이프라도 붙여놓을까 생각하다가 귀찮아서 그만뒀다.



꺼내 둔 샐러드를 먹으며 노트북을 열었다. 어제 쓰던 글을 마저 써야지. 노트북 배터리는 핸드폰 배터리보다 금방 사라진다. 시간제한이 있는 게임을 하는 기분이다.



먹다 보니 목이 말랐다. 우리 집엔 정수기가 없다. 시원한 물은 냉장고에만 있다. 미지근한 물보단 시원한 물을 마시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보다 중요한 게 있었다. 냉장고를 지켜야 한다. 결국 물을 마시지 않았다. 이따 카페에 가야 하니까, 얼음이 가득한, 시원한 아메리카노를 마셔야지.








오후에 카페에 가서 시원한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컵에는 얼음이 가득했다. 카페는 추울 정도로 에어컨이 빵빵했다. 콘센트도 많았다. 핸드폰과 노트북을 충전했다. 밖에는 계속해서 비가 왔다. 쾌적한 카페에서 전기에 둘러싸여 일을 하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에 집에 가서 냉장고를 열어보니, 다행히 음식들은 멀쩡했다. 냉동실의 음식들도 거의 녹지 않았다. 이 더운 여름에 남아있는 냉기만으로 음식을 보존해주었다니. 냉장고가 대견했다. 훗날 정전이 예고 없이 닥친다 해도 이젠 여유 있게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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