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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잘자유 Sep 30. 2022

떨어진 감, 감나무, 그리고..



퇴사 586일 차. 오늘은 아침에 모닝페이지를 쓰고 운동을 다녀왔다. 운동은 가기 싫다가도 막상 가면 기분이 좋다. 뿌듯한 마음으로 운동을 갔다가 돌아오는데, 아파트 관리사무실 뒤 돌담 위에서 기시감이 느껴졌다. 내 허리 정도까지 오는 그 회색 돌담 위엔 주홍빛의 무언가가 있었다.






뭐지 하고 다가가 보니 감이었다. 그냥 감이 아니라 찌그러진 감. 왜 여기에 감이 떨어져 있을까? 어떻게 저런 모양으로 찌그러져 있을까? 누가 먹다 남은 것 같기도 하고, 누가 던져서 찌그러진 것 같기도 했다. 나도 모르게 위를 올려다봤다. 아, 여기. 감나무 밑이구나.





감나무에서 감이 떨어졌다니. 당연한 일이었다. 당연한 일이었지만 신기했다. 떨어진 감을 목격하다니. 태어나서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그동안 내 주변엔 감나무가 없었던 걸까? 아니면 내가 보기 전에 누군가가 다 치워놨던 걸까? 아니면 그냥, 내가 관심이 없어서 보지 못했던 것뿐일까?



감나무의 감들은 대부분 초록색이었다. 떨어진 감은 완전히 익은 주황색이었다. 성질이 급한 녀석인가 봐. 그렇게 감을 감상하다가 감 사진을 찍고 싶어졌다. 핸드폰 카메라를 켰다. 찰칵, 찰칵. 떨어진 감의 사진을 찍고, 감나무에 달려있는 감의 사진을 찍었다.






10배 줌을 해서 나무에 매달린 감을 찍다가 또 이상한 기시감을 느꼈다. 이번엔 감의 모양이 좀 이상했다. 동그랗고 예쁜 모양의 감이 아니었다. 게다가 감이 까매졌다, 밝아졌다 했다. 바람에 의해 흔들리는 그림자 같기도 했다. 그런데 흔들린다기에는 어떤 리듬감이 있었다. 자세히 보니 감이 아니라 감 뒤의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었다.



한참을 핸드폰 액정을 통해 바라보다 그게 새라는 걸 알아챘다. 새가 감 위에 앉아 감을 쪼아 먹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서있던 위치에서는 새의 부리와 꼬리만 보였다. 새가 있다는 걸 알고 나자 들리지 않던 새소리가 들렸다. 짹짹, 짹짹. 너무 신기하고 신이 난 나머지 사진을 더 열심히 찍었다. 찰칵, 찰칵. 동영상을 찍을까? 찰칵, 찰칵. 아니, 그냥 연속 사진으로 찍자.





그렇게 사진을 찍다가 한 장은 건졌겠지, 하고 핸드폰 화면을 껐다. 뿌듯한 마음으로 집을 향해 걸어가다가 문득 뒤를 돌아 감나무를 봤다. 그런데 웬걸, 이 각도에서 보니 아까 그 새가 풀샷으로 잘 보였다. 



급하게 다시 핸드폰 카메라를 켜고 새를 찾아 핸드폰을 움직였다. 10배 줌을 하니 새가 어디 숨어있는지 잘 보이지 않았다. 위로, 옆으로, 아래로, 핸드폰을 움직였다. 아무리 찾아도 새는 보이지 않았다. 핸드폰 액정엔 씨앗이 훤히 보이는 새가 먹던 감만이 남아 있었다. 





문득, 떨어진 감 생각이 들었다. 아까 떨어져 있던 감은 새가 먹던 감이구나. 자신의 한쪽 면을 새에게 내어주고, 남은 한쪽이 무거워 기울어지다가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떨어진 것이겠구나. 분명히 맛있게 잘 익은 감이었겠지. 그래서, 그렇게 맛있어 보였던 거구나.








감, 색깔이 참 예쁘다. 감잎 색깔은 감처럼 예쁜 주황으로 변한다던데. 언제쯤 그 주황을 볼 수 있을까? 감색으로 변할 감잎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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