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진짜 오랜만이다. 잘 지냈어? 나야 뭐, 잘 지냈지. 너 조금 달라진 것 같다. 분위기가 어른스러워졌어. 나도 달라 보인다고? 그러게, 옛날엔 나 진짜 해맑았는데. 맨날 웃고 다녔잖아. 뭐가 그리 좋았는지.
회사 다닐 때도 그랬어. 사람들이 나 엄청 신기해했다니까. 근데 3년 차쯤 되니까 웃음기가 쫙 빠지더라. 완전 찌들었지 뭐. 퇴사하고 나서도 회복이 안 돼. 옛날엔 옆에 누가 앉아있으면 막 다가가서 먼저 인사하고 그랬는데, 이제는 나도 먼저 말 안 걸고 조용히 앉아 있는다니까. 아, 그냥 나이 먹어서 그런 건가? 하하.
퇴사한 지? 음... 거의 2년 되어가지. 그치. 생각보다 오래됐더라. 가끔 회사 가고 싶을 때도 있긴 해. 진짜 가끔이지만. 한 번은 회사 동기랑 신차 타고 놀러 갔는데, 그 차에 내가 설계한 스위치가 있더라고. 퇴사하기 전에 해놨던 거. 그거 보니까 고생했던 게 생각나면서 다시 해보면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맞아, 물론 착각이지. 원래 과거 기억은 미화되는 법이잖아. 근데 진짜 한 달 정도는 재미있을 것 같기도 해. 지금은 맨날 혼자 일하니까. 사람들이랑 같이 일하던 게 그립기도 하거든. 근데 아마 한 달 지나면 못 견딜 거야. 그렇게 생각하면 5년이나 다녔던 게 참 신기해.
또 한 번은 부품회사 다니는 친구가 자기네 팀에 사람 뽑는다고 혹시 일할 생각 없냐고 물어봤을 때. 입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땐 남편이 퇴사하고 싶어 하는데 내가 돈을 못 버는 게 마음이 아프더라구. 나의 자유에는 남편의 지분이 큰데, 나도 남편을 도와주고 싶었어. 들어가면 일단 연봉이나 복지 같은 건 보장되니까 남편이 퇴사해도 문제없을 거고.
뭐, 그렇게 고민만 하다가 말았지. 길게 보면 회사를 안 가는 게 더 맞는 것 같더라고. 왜냐고? 처음 퇴사했을 때 생각이랑 똑같지 뭐. 나랑 안 맞는 회사를 다닌다면 지금 당장은 돈을 벌 수 있을 거야. 하지만 하고 싶은 일과는 점점 멀어질 테고, 갈수록 불행하겠지. 시간이 흐를수록 월급의 고리를 끊기가 어려워지잖아. 반대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그 일을 계속하다 보면 잘해지게 될 거라고 생각해. 또 복리처럼 보상도 점점 커질 거고. 그게 선순환 아닐까?
회사 친구들도 자주 만나. 참, 회사는 변하지 않는 것 같아. 왜 학교 찾아가면 옛날 선생님들, 하나도 안 변하고 그대로인 것 같잖아. 동기들한테 회사 얘기 들어보면 내가 졸업한 학교 얘기 듣는 느낌? 좀 반가우면서도 이상한 기분이야.
친구들 보면 나만 멈춰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나만 변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해. 5년 동안은 같은 속도로 시간이 흘러갔는데, 이젠 완전히 다르게 흘러가는 것 같아. 누가 멈춰 있는지는 모르겠어. 사실 아무도 안 멈춘 거 아닐까? 그냥 나에겐 그들이 보이지 않고, 그들에겐 내가 보이지 않는 것뿐일지도.
벌써 진급한 동기도 있어. 이제 내년이면 다들 진급 연차이기도 하고. 그런 거 보면 새삼스럽게 시간이 많이 갔구나, 싶으면서도 동기들이 대단해 보이더라. 나도 회사에 계속 있었으면 내후년쯤 책임을 달았을까 싶기도 하고.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바뀌는 입장들이 신기해. 책임을 달면 회사를 바라보는 시선도 조금은 바뀌겠지?
너도 퇴사하고 싶다고? 맞아, 모든 직장인들의 꿈이지. 하하. 퇴사하니까 좋냐구? 음, 당연히 좋지. 하루하루가 행복해. 통장에 돈은 안 들어오지만. 통장에 돈 안 들어와도 행복할 수 있으면, 퇴사 추천해. 나는 왜 퇴사한 거냐고? 이유야 많지. 아, 커피 나왔다. 가지러 갔다 올게. 잠깐만 앉아 있어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