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brunch
매거진
서울 디지털재단 스토리텔러
실행
신고
라이킷
10
댓글
공유
닫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브런치스토리 시작하기
브런치스토리 홈
브런치스토리 나우
브런치스토리 책방
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잘자유
Jan 11. 2023
아빠와 스마트폰
“이거 꽃 이름 알려주는 거, 어떻게 하는 거였지?”
아빠는 또 나한테 묻는다. 내가 집에 오기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이번에 받은 화분의 꽃 이름이 궁금한가 보다.
“지난번에 알려줬잖아.”
“그랬지. 근데 그런 거 들어도 며칠 지나면 다 까먹어.”
알려줄 때부터 기억을 못 할 것 같긴 했다. 아빠는 스마트폰을 터치하는 내 손가락만 바라보다 스마트 렌즈를 켜주고 나서야 핸드폰을 받아 들었다. 사진을 찍고 꽃 이름이 화면에 나타나면 이렇게 말하곤 했다. 야, 이거 참 신기하다. 참 좋은 세상이야.
얼마 전, 서울 디지털 재단 스토리텔러로 교육을 받았다. 그제야 아빠가 왜 내가 알려준 걸 자꾸 까먹는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
어려서부터 스마트폰 사용에 익숙했던
내
가 아날로그에 익숙한 아빠를 가르치려고 하니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아빠의 눈높이에서 차근차근 가르쳐 줄 사람이 필요했다. 서울디지털재단의 어디나 지원단은 어르신 강사님들이 직접 스마트폰 활용법을 알려준다고 했다.
교육생이 직접 실습을 해 볼 수 있는 실습형 강의부터, 직접 배울 수 있는 오프라인 강의까지 강의의 형태도 다양했다.
제일 좋은 점은 온라인 강의가 있어 반복적으로 시청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못 알아들었다는 게 자존심 상해 ‘다시’ 알려달라고 말하지 못하는 아빠를 위해서 아주 좋은 강의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 이제 나한테 물어보지 말고 이거 들으면서 공부 좀 해봐.”
“어디나 지원단? 이게 뭐야?”
“어르신 디지털 나들이. 어르신들이 아빠 눈높이에 맞춰서 나보다 더 잘 알려줄 거야.”
아빠는 ‘어르신’이라는 단어에 기분이 조금 나쁜 듯 얼굴을 찌푸렸지만 이내 영상을 재미있게 시청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나를 흘긋 바라보며 말했다.
“너도 시간 지나 봐라. 나도 옛날에는 이런 거 잘했어.”
“엥? 진짜? 아빠가?”
“그래 이 녀석아. 옛날에 아빠가 컴퓨터 동네에서 제일 잘했었어.”
아빠가 컴퓨터를 잘하는 모습은 상상이 안 됐다. 아빠도 옛날엔 멋에 죽고 멋에 사는 젊은이였겠지.
“아빠, 그럼 이거 한번 해봐. 디지털 역량 진단.”
“디지털 역량? 내가 너보단 스마트폰 못쓰지만 그래도 내 또래에선 잘 쓰는 편이거든? 한번 해보자.”
서울디지털재단의 에듀테크 캠퍼스에 접속해 디지털 역량진단을 시작했다. 아빠는 한 항목 한 항목 고민하며 신중하게 대답을 골랐다. 질문에 모두 대답하고 제출을 누르자 아빠의 점수가 떴다.
“봐, 거의 다 평균보다 높잖아?”
“오~ 그러네! 솔직하게 응답한 거 맞지?”
“당연하지.”
아빠의 레벨은 ‘디지털 중급’이었다. 검사 결과 밑에 추천 교육 과정도 나왔다.
“아빠, 이거 들으면서 공부해서 다음에는 더 높은 점수 받아보자.”
“그래, 너 다음번 올 때까지 열심히 공부해 볼게.”
“이러다 아빠 어디나 지원단 강사 하는 거 아냐?”
“아빠 그 정도는 할 수 있어, 원래 아빠 가르치는 것도 잘하잖아.”
“에이, 아닌 거 같은데~”
아빠는 허허 웃으며 컴퓨터 화면을 바라봤다. 그래도 중급이 나온 게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아빠와 함께 에듀테크 캠퍼스의 ‘고급’ 강의를 둘러봤다. ‘시니어 디지털 범죄’라는 강의가 눈에 띄었다.
“오, 아빠. 이거 꼭 엄마랑 같이 들어. 옛날에 보이스피싱 당할 뻔 한 적 있잖아.”
“그래야겠네. 우리 딸, 좋은 거 알려줘서 고마워.”
내가 아빠를 직접 알려줄 수 있으면 더 좋을 텐데. 이런 강의를 알려드린 것만으로도 기뻐하는 아빠를 보니 더 빨리 알려드리지 못한 게 아쉬웠다.
어느새 희끗해진 아빠의 머리칼이 눈에 띄었다. 다음번에 집에 내려갈 때는 더 자신감 있는 아빠의 모습을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keyword
디지털
스마트폰
아빠
잘자유
자기계발 분야 크리에이터
소속
직업
엔지니어
5년 다닌 대기업 퇴사. 자유로 가는 길을 걷고 있는 잘자유입니다.
구독자
232
제안하기
구독
누구나 서울을 즐길 수 있다!
매거진의 다음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