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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잘자유 Jan 11. 2023

아빠와 스마트폰


“이거 꽃 이름 알려주는 거, 어떻게 하는 거였지?”     


 아빠는 또 나한테 묻는다. 내가 집에 오기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이번에 받은 화분의 꽃 이름이 궁금한가 보다.  


“지난번에 알려줬잖아.”

“그랬지. 근데 그런 거 들어도 며칠 지나면 다 까먹어.”     


알려줄 때부터 기억을 못 할 것 같긴 했다. 아빠는 스마트폰을 터치하는 내 손가락만 바라보다 스마트 렌즈를 켜주고 나서야 핸드폰을 받아 들었다. 사진을 찍고 꽃 이름이 화면에 나타나면 이렇게 말하곤 했다. 야, 이거 참 신기하다. 참 좋은 세상이야.

     







얼마 전, 서울 디지털 재단 스토리텔러로 교육을 받았다. 그제야 아빠가 왜 내가 알려준 걸 자꾸 까먹는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


어려서부터 스마트폰 사용에 익숙했던 가 아날로그에 익숙한 아빠를 가르치려고 하니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아빠의 눈높이에서 차근차근 가르쳐 줄 사람이 필요했다. 서울디지털재단의 어디나 지원단은 어르신 강사님들이 직접 스마트폰 활용법을 알려준다고 했다.     


교육생이 직접 실습을 해 볼 수 있는 실습형 강의부터, 직접 배울 수 있는 오프라인 강의까지 강의의 형태도 다양했다.


제일 좋은 점은 온라인 강의가 있어 반복적으로 시청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못 알아들었다는 게 자존심 상해 ‘다시’ 알려달라고 말하지 못하는 아빠를 위해서 아주 좋은 강의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 이제 나한테 물어보지 말고 이거 들으면서 공부 좀 해봐.”

“어디나 지원단? 이게 뭐야?”

“어르신 디지털 나들이. 어르신들이 아빠 눈높이에 맞춰서 나보다 더 잘 알려줄 거야.”     


아빠는 ‘어르신’이라는 단어에 기분이 조금 나쁜 듯 얼굴을 찌푸렸지만 이내 영상을 재미있게 시청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나를 흘긋 바라보며 말했다.     


“너도 시간 지나 봐라. 나도 옛날에는 이런 거 잘했어.”

“엥? 진짜? 아빠가?”

“그래 이 녀석아. 옛날에 아빠가 컴퓨터 동네에서 제일 잘했었어.”     


아빠가 컴퓨터를 잘하는 모습은 상상이 안 됐다. 아빠도 옛날엔 멋에 죽고 멋에 사는 젊은이였겠지.     




“아빠, 그럼 이거 한번 해봐. 디지털 역량 진단.”

“디지털 역량? 내가 너보단 스마트폰 못쓰지만 그래도 내 또래에선 잘 쓰는 편이거든? 한번 해보자.”     


서울디지털재단의 에듀테크 캠퍼스에 접속해 디지털 역량진단을 시작했다. 아빠는 한 항목 한 항목 고민하며 신중하게 대답을 골랐다. 질문에 모두 대답하고 제출을 누르자 아빠의 점수가 떴다.     


“봐, 거의 다 평균보다 높잖아?”

“오~ 그러네! 솔직하게 응답한 거 맞지?”

“당연하지.”     



아빠의 레벨은 ‘디지털 중급’이었다. 검사 결과 밑에 추천 교육 과정도 나왔다.     


“아빠, 이거 들으면서 공부해서 다음에는 더 높은 점수 받아보자.”

“그래, 너 다음번 올 때까지 열심히 공부해 볼게.”

“이러다 아빠 어디나 지원단 강사 하는 거 아냐?”

“아빠 그 정도는 할 수 있어, 원래 아빠 가르치는 것도 잘하잖아.”

“에이, 아닌 거 같은데~”     


아빠는 허허 웃으며 컴퓨터 화면을 바라봤다. 그래도 중급이 나온 게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아빠와 함께 에듀테크 캠퍼스의 ‘고급’ 강의를 둘러봤다. ‘시니어 디지털 범죄’라는 강의가 눈에 띄었다.     


“오, 아빠. 이거 꼭 엄마랑 같이 들어. 옛날에 보이스피싱 당할 뻔 한 적 있잖아.”

“그래야겠네. 우리 딸, 좋은 거 알려줘서 고마워.”     








내가 아빠를 직접 알려줄 수 있으면 더 좋을 텐데. 이런 강의를 알려드린 것만으로도 기뻐하는 아빠를 보니 더 빨리 알려드리지 못한 게 아쉬웠다.


어느새 희끗해진 아빠의 머리칼이 눈에 띄었다. 다음번에 집에 내려갈 때는 더 자신감 있는 아빠의 모습을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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