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이 아니라, 보는 것부터 바꿔야 한다
컵에 물이 반쯤 담겨 있다.
이 장면을 보고,
보통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물이 반이나 있네"
"물이 반밖에 없네"
익숙한 이야기다.
아마 당신도
이 두 문장 중 하나를 떠올렸을 것이다.
사실 이 장면은
아주 오래된 비유다.
낙관적인 사람은 ‘반이나 있다’고 말하고,
비관적인 사람은 ‘반밖에 없다’고 말한다.
심리학과 자기계발에서
수없이 반복되어 온,
이른바 ‘클래식한 질문’이다.
그렇다면 질문 하나 해보자.
당신이라면
위의 장면(컵에 물이 반쯤 담겨있는)을 보고
다르게 말할 수 있겠는가?
조금만 더 생각해보자.
‘물의 양’ 말고,
이 장면에서
다른 것을 볼 수 있는가?
대부분의 사람은
같은 것을 본다.
그래서 비슷한 말을 할 수 밖에 없다.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이라는 책이 있다.
어느 날 이 책의 한 부분을 펴서 읽게 되었다.
아주 짧은 글이었지만, 긴 여운을 남겼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
"네 컵은 반이 빈 거니, 반이 찬 거니?"
두더지가 물었어요.
"난 컵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은데?"
소년이 말했습니다.
-
한 동안 깊은 생각에 잠길 수 있었다.
소년이 답한 그 말이 흥미로운 이유는
긍정적이어서가 아니다.
남다르게 봤기 때문이다.
책의 저자 입장에서도 생각해봤다.
이 짧은 글을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을까?
얼마나 다양한 각도로 바라봤을까?
얼마나 오래 관찰했을까?
우리는 보통
이미 보이는 것 위에서만 말한다.
그래서 말이 비슷해진다.
표현을 바꿔도,
결국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게 된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한 단계 더 들어간다.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그 상황이 만들어진 조건까지 본다.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도 그렇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이렇게 배웠다.
'꾸준함이 이긴다'
'방심하면 진다'
그렇다면
이렇게 질문을 한 번 해보자.
"이 게임은 정말 공평했을까?"
토끼는 육지동물이고,
거북이는 물에서도 움직일 수 있다.
그런데 경주는
오직 육지에서만 진행된다.
정말 공평한 게임이라면
육지에서 한 번,
물에서 한 번 해야 하는 것 아닐까?
이렇게 보는 순간,
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누가 더 잘했는가가 아니라,
어떤 조건에서 시작했는가의 문제가 된다.
같은 이야기를 보고도
누군가는 '보이는 것'만 말하고,
누군가는 '깊은 생각'을 말한다.
우리는 종종
말의 표현만 바꾸려고 한다.
더 잘 말하려고 하고,
더 설득력 있게 말하려고 한다.
그런데 정말 바꿔야 하는 건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보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같은 장면을 보고도
다르게 볼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이
결국 다른 말을 한다.
차이는 말솜씨가 아니다.
관찰이다.
남다른 말은
남다른 표현에서 나오지 않는다.
남다른 말은
남다르게 보았을 때 나온다.
얼마나 고민하고, 관찰하고, 생각했느냐에 따라
남 다른 말하기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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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뮤니케이션 칼럼니스트 김광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