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상대를 느끼기만 하고, 이해하지 못할까
드라마 '일타 스캔들'의 한 장면이다.
이 드라마는
냉정하고 완벽한 수학 1타 강사 최치열(정경호)과
따뜻하고 생활력 강한 반찬가게 사장 남행선(전도연)의 이야기를 다룬다.
겉으로 보면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사람.
특히 그는(최치열) 늘 거리감 있고 차갑게 보이는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앙숙처럼 구도가 설정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이 둘은 서로를 이해하며 사랑에 빠진다.
막, 사랑에 빠지려는 그 지점에서
극 중 남행선은 그런 최치열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한다.
“처음엔 그 사람이 차가운 사람인 줄 알았어요.
그래서 오해하기도 했죠.
그런데 그 사람을 이해하고 보니,
그 사람은 ‘차가운 사람’이 아니라 ‘추운 사람’이었어요.”
짧은 대사였지만,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사람을 만나다 보면
이런 생각을 쉽게 하게된다.
“저 사람은 좀 차갑네..”
“정이 없는 사람 같아..”
“벽이 있는 느낌이야..”
그런데 이 말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
전부 '내 기준'에서의 감각이라는 점이다.
내가 느끼기에 차갑다.
내가 느끼기에 거리감이 있다.
회의 자리에서
유독 말수가 적은 사람을 보면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기 쉽다.
'왜 저렇게 협조적이지 않지?'
인사를 건넸는데
짧게 돌아오는 대답을 들으면
괜히 마음이 걸린다.
'내가 뭐 잘못했나.. 나를 싫어하나?..'
그 짧은 순간,
우리는 이미 상대를 정의해버린다.
'차가운 사람'이라고.
그 장면이 좋았던 이유는
이 기준을 뒤집어 버렸기 때문이다.
차가운 사람 → 내가 느끼는 상태
추운 사람 → 그 사람이 놓여 있는 상태
이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차가운 사람이라고 규정하는 순간,
이해는 멈춘다.
하지만 추운 사람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질문이 시작된다.
왜 저 사람은 저렇게 굴까.
어떤 상황에 놓여 있을까.
무엇이 그 사람을 그렇게 만들었을까.
우리는 종종
소통이 어렵다고 말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소통이 어려운 진짜 이유는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관점이 한쪽에만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내가 느낀 감정으로 상대를 정의해버리는 순간,
대화는 이미 끝난다.
하지만 한 번만 질문을 바꿔보면 어떨까.
'왜 저렇게 차갑지?'가 아니라
'혹시 저 사람, 지금 추운 건 아닐까?'
상대를 이해한다는 건
그 사람의 행동이 무조건 옳다고 인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 행동의 ‘이유’를 보려는 태도다.
차가움은 거리감을 만든다.
하지만 추움은 이유를 만든다.
그리고 사람은 그 이유가 보이는 순간,
조금 더 가까워진다.
누군가가 차갑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면,
조금만 멈춰보자.
그리고 이렇게 바꿔보자.
저 사람은 차가운 사람이 아니라,
지금 추운 사람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사람을 느끼는 데는 익숙하지만,
이해하는 데는 아직 서툴다.
-
by 커뮤니케이션 칼럼니스트 김광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