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을 견디는 것도 소통일까

우리가 불편한 건 침묵이 아니라 해석이다

by 김광영

침묵이 불편한 이유


대화를 하다 보면

갑자기 공기가 멈추는 순간이 있다.


말이 끊기고,

짧지만 길게 느껴지는 침묵이 흐른다.


1초, 2초는 괜찮다.

오히려 자연스럽다.

그런데 그 시간이 조금만 길어지면

이상하게 마음이 조급해진다.


무언가를 말해야 할 것 같고,

이 어색함을 빨리 없애야 할 것 같다.


그리고 그때부터

머릿속은 바쁘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이분 취미가 뭐였지?”

“요즘 영화 이야기라도 해볼까?”

“가족 이야기를 꺼내도 괜찮을까?”


우리는 그렇게

침묵을 견디기보다

채우려고 한다.




우리가 불편한 건 침묵이 아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가 불편해하는 건 침묵 그 자체가 아니다.


그 침묵 위에

우리가 덧붙이는 해석이다.


“혹시 내가 재미없나?”

“나랑 이야기하는 게 불편한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혼자 의미를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그래서 침묵은 점점 더 길어지고,

그만큼 더 불편해진다.


여기서 하나의 기준을 바꿔보면 어떨까.


사람은

침묵 때문에 어색해지는 게 아니라

침묵을 해석하는 방식 때문에 어색해진다.




침묵은 멈춤이 아니라 흐름이다


상대방이 말이 없는 순간은

대화가 끊긴 것이 아니라

생각이 지나가고 있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말을 들으면서

내 생각을 정리하고,

어떻게 말할지 고르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 대화 중의 침묵은

멈춤이 아니라

잠시 속도를 늦추는 구간에 가깝다.


길을 가다 잠시 멈춰

주변을 둘러보는 것처럼,

대화도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




관계는 말이 아니라 침묵으로 드러난다


이 차이는 관계에서 더 분명해진다.


처음 만난 사람과의 대화에서는

침묵이 쉽게 어색해진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말을 이어간다.


하지만 오래된 관계에서는 다르다.


카페에 앉아

한 사람은 휴대폰을 보고,

다른 한 사람은 창밖을 바라보다가

아무렇지 않게 다시 대화를 이어간다.


그 사이에는

불편함도, 조급함도 없다.


오히려 그 침묵이

편안함을 만든다.


그래서 관계의 깊이는

얼마나 말을 많이 나누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자연스럽게 침묵을 함께할 수 있느냐로 드러난다.




그래서, 조금은 가만히 있어도 된다


우리는 대화를 잘하려고 할 때

무슨 말을 해야 할지를 먼저 고민한다.


하지만 어쩌면 더 중요한 건

말이 없는 순간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일지도 모른다.


침묵을 공백으로 보면

채워야 할 대상이 되고,


침묵을 흐름으로 보면

지나가도 되는 시간이 된다.


그 차이는 작아 보이지만,

대화의 온도를 바꾼다.


대화를 잘하는 사람은

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침묵을 다룰 줄 아는 사람이다.


대화를 이어가기 위해

무언가를 더하려 애쓰기보다,

잠시의 침묵을

그대로 둘 수 있는 여유.


어쩌면 그 순간이

대화를 더 깊게 만드는 시작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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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뮤니케이션 칼럼니스트 김광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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