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득은 기술이 아니라 '공기 설계'에서 시작 된다.
회의에서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있다.
요점만 말한다.
시간을 아낀다.
군더더기가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의 말은 잘 먹히지 않는다.
논리는 맞다.
자료도 충분하다.
그런데 사람은 움직이지 않는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우리는 설득 커뮤니케이션을 ‘내용의 싸움’이라고 알고있다.
무엇을 말했는가,
얼마나 설득력 있었는가,
근거는 충분했는가.
하지만 현장에서 반복해서 확인되는 사실이 하나 있다.
사람은 내용 이전에 분위기에 반응한다는 점이다.
공기가 굳어 있으면
아무리 좋은 말도 통과되지 않는다.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잡담이다.
많은 사람이 잡담을
쓸데없는 말,
시간 낭비,
비생산적인 대화라고 여긴다.
하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잡담은 말이 아니라 대화의 환경 설정에 가깝다.
대화에는 온도가 있다.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면
대화의 온도는 차갑다.
가벼운 한마디,
사소한 관찰,
짧은 웃음이 오가면
온도가 올라간다.
온도가 올라가면 경계가 내려간다.
경계가 내려가야 비로소 말(내용)이 들어간다.
엘리베이터에서 20층까지 아무 말 없이 올라가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아무 관계도 맺지 않은 채
층수 숫자만 바라보는 어색한 시간.
가끔 강의장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목격한다.
“자, 42페이지 보겠습니다.”
소개도 없이, 숨 고를 틈도 없이
곧장 본론으로 들어간다.
그 순간 학습자는 배우는 사람이 아니라
방어하는 사람이 된다.
예열 없는 엔진은 오래 가지 않는다.
시동을 걸자마자 RPM을 최대로 올리면
기계는 버티지 못한다.
운동 전에 스트레칭을 생략하면
근육은 쉽게 다친다.
와인도 마개를 열자마자
향이 바로 살아나지 않는다.
대화도 마찬가지다.
본론은 RPM이고
잡담은 예열이다.
우리는 예열을 비효율로 오해한다.
하지만 예열이 없으면
성능은 오히려 떨어진다.
잡담은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언어가 아니다.
관계를 여는 신호에 가깝다.
“나는 당신을 공격하려는 사람이 아니다.”
“이 자리는 안전하다.”
“우리는 같은 편이 될 수 있다.”
이 신호가 오가기 시작하면
대화는 부드러워진다.
흥미로운 점은 잡담을 어려워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 것이다.
“내가 어색해 보이면 어떡하지?”
“괜히 이상한 말을 했다가 분위기만 망치면 어떡하지?”
결국 잡담을 막는 것은 말솜씨가 아니라 지나친 완벽주의다.
잡담에는 완벽한 문장이 필요하지 않다.
논리도 필요 없다.
결론도 필요 없다.
필요한 것은 단 하나,
상대에게 관심을 두는 태도다.
강의를 하다 보면 숨이 막히는 공기를 마주할 때가 있다.
교육장에 들어서는 순간
교육생의 표정이 굳어 있고
팔짱이 끼워져 있는 분위기다.
이 상태에서 본론을 더 강하게 밀어붙이는 것은 좋은 전략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먼저 공기를 푼다.
“요 며칠 계속 비만 왔는데, 오늘은 해가 반짝 떠서 기분이 상쾌합니다."
“오~ 이 교육장은 통창이라서 교육중에 멍때리기 너무 좋은 환경인데요?”
작은 웃음이 한 번 돌고 나면
긴장이 조금 풀린다.
그제야 메시지를 꺼낸다.
놀랍게도 같은 내용이라도
공기가 풀린 뒤에는 훨씬 깊이 전달된다.
그때마다 다시 확인한다.
메시지의 힘은
내용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본론을 잘 말하는 법은 배운다.
하지만 본론이 들어갈 자리를 만드는 법은 배우지 않는다.
잡담은 그 자리를 만드는 기술이다.
겉으로는 가볍지만
실제로는 가장 전략적인 언어다.
그래서 이렇게 정의하고 싶다.
잡담은 설득이 작동하기 위한 예열 장치다.
예열 없이 가속하면
소리는 크지만 힘은 오래 가지 않는다.
대화도 마찬가지다.
본론이 먹히지 않는다고 느낀다면
논리를 점검하기 전에
공기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혹시 예열을 생략한 채
가속 페달부터 밟고 있지는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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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뮤니케이션 칼럼니스트 김광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