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소통을 지탱하는 힘 : 정(情)
우리는 왜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한 번 더 돌려 말할까.
왜 부탁을 받으면,
그게 부담스러워도 쉽게 끊어내지 못할까.
논리로 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 장면들이다.
해야 할 말은 하면 되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하면 된다.
그런데 우리는
그 단순한 선택 앞에서 늘 한 번 더 멈춘다.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우리는 '정' 속에서 소통하기 때문이다.
정은 정확히 번역되지 않는다.
affection(애착, 보살핌, 애정)이나
attachment(애착, 믿음, 지지) 같은 단어로
설명하려고 하면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어딘가 맞지 않는다.
왜냐하면 정은
특정한 감정 하나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쌓여온 감정의 총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말한다.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었다고.
여기서 중요한 건 순서다.
고운 정이 아니라, 미운 정이 먼저 나온다.
정은 좋은 감정만 쌓인 상태가 아니다.
함께 지내며 불편했던 순간들,
서운했던 기억들까지도 함께 쌓여 하나의 관계를 만든다.
그래서 한국인의 관계는 단순하지 않다.
싫다고 해서 쉽게 끊어지지도 않고,
좋다고 해서 가볍게 이어지지도 않는다.
이 복잡한 감정 구조 위에서 소통이 이루어진다.
정은 쌓이는 데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떨어지는 것은 순간이다.
이 비대칭이 문제를 만든다.
우리는 관계를 만들기 위해 많은 시간을 쓴다.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작은 호의를 주고받으며 서서히 정을 쌓아간다.
그런데 그 관계는 단 한 번의 말,
한 번의 태도로 쉽게 흔들릴 수 있다고 느낀다.
그래서 우리는 가끔
말하지 않는 쪽을 선택하기도 한다.
직장에서 누군가 무리한 부탁을 했을 때,
'그건 어렵습니다'라고 말하면 되는 상황에서도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는 이유다.
거절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말로 인해 그동안 쌓아온 관계가 무너질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정이 만드는 소통의 딜레마다.
관계를 지키고 싶어서 솔직하지 못해지고,
솔직하지 못해서 결국 관계가 더 어색해진다.
그래서 한국인의 소통은 종종 이상한 방향으로 흐른다.
명확하게 말하지 않고, 빙빙 돌려서 말한다.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분위기를 먼저 읽는다.
문제 해결보다 관계 유지가 우선이 된다.
따뜻하지만, 동시에 피곤한 구조다.
그렇다고 정을 버릴 수는 없다.
정은 한국인의 소통을 지탱하는 중요한 기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정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정에 끌려다니지 않는 것이다.
정은 자연스럽게 생기는 감정이지만,
그걸 어떻게 표현하느냐는 결국 선택의 문제다.
비슷한 행동이라도, 어떤 태도로 하느냐에 따라
관계의 온도는 전혀 다르게 느껴진다.
예를 들어,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을 줄 때도 그렇다.
무언가를 해주면서
“이거 내가 일부러 시간 내서 준비한 거야, 너를 위해서”라고
설명이 길어지는 순간,
그 행동은 호의가 아니라 의도가 있는 행동처럼 보이기 쉽다.
오히려
“그냥 생각나서 가져왔어”
이 한마디가 관계를 훨씬 편하게 만든다.
관계가 가까워질수록,
우리는 자꾸 균형을 맞추려고 한다.
“내가 지난번에 도와줬으니까, 이번엔 네가 좀 해줘야지”
이런 말이 머릿속에 떠오르기 시작하면,
그 순간부터 관계는 주고받는 계산으로 바뀐다.
편해지려고 시작한 관계가 오히려 더 신경 쓰이는 이유다.
또 하나 흥미로운 지점은 거절 이후의 태도다.
많은 사람들이
“이번에는 좀 어려울 것 같아요”라는 말을 꺼내는 것보다,
그 말을 한 이후의 어색함을 더 두려워한다.
그래서 아예 거절을 피하거나,
무리해서 받아들이는 선택을 한다.
하지만 관계는 거절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다음에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다시 이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이번 건은 어렵지만, 다음에 다른 방식으로는 꼭 도와드릴게요”
이런 한마디는 관계를 끊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시 이어주는 말이 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정을 많이 주는 것이 아니라,
정이 흐를 수 있는 방식으로 관계를 다루는 것이다.
정은 쌓이는 감정이지만,
그 쌓이는 방식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다.
우리는 흔히 정 때문에 힘들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정 때문이 아니라
정을 다루는 방식 때문에 힘든 것인지도 모른다.
한국인의 소통은 논리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그 밑에는 시간이 쌓아올린 감정이 흐르고 있다.
그걸 이해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왜 그렇게 말했고,
왜 그렇게 말하지 못했는지를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그때부터,
조금은 덜 휘둘리고,
조금은 더 건강하게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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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뮤니케이션 칼럼니스트 김광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