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변의 시대는 끝났다

소피스트는 왜 사라지지 않았을까

by 김광영

웅변학원이 있던 시절


9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학교 앞에는 ‘웅변학원’이 있었다.


큰 목소리로 말하는 법,

또박또박 발음하는 법,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강하게 전달하는 법을 배웠다.


그 시절의 말하기는 분명했다.


누가 더 또렷하게 말하는가,

누가 더 확신 있게 주장하는가.


말하기는 메시지를 더 강하게

전달하는 기술에 가까웠다.




말하기의 기준이 바뀌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웅변학원은 거의 사라졌다.


대신 스피치, 콘텐츠, 스토리텔링 같은 말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왜일까.


과거에는 얼마나 강하게 말하느냐가 중요했다면,

지금은 얼마나 이해되게 말하느냐가 중요해졌다.


강하게 말하는 것은 일방향 소통이다.

나는 말하고, 상대는 듣는다.


하지만 이해된다는 것은 다르다.

상대가 받아들이고,

자기 방식으로 해석하고,

그 안에서 의미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지금의 말하기는

단순한 전달이 아니라 해석에 가깝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공감"이 있다.




같은 말도 왜 다르게 들릴까


이 변화는 일상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예전의 발표는

얼마나 논리적으로 설명했는지가 중요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같은 내용을 말해도

사례를 하나 덧붙인 사람이 더 오래 기억된다.


숫자와 근거만을 나열한 사실 중심의 설명보다

하나의 경험을 들려준 이야기가 더 쉽게 이해된다.




인류 최초의 말하기 학원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질문이 생긴다.


인류 최초로 돈을 받고 말하기를 가르쳤던 사람들은 누구이고,

그들은 무엇을 가르쳤을까.


고대 그리스에는

글과 문자가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말로 이루어지던 시대였다.


예를 들어 내 소유물을 누군가 빼앗아 갔다고 해보자.


지금이라면 계약서나 기록으로 증명할 수 있겠지만,

그때는 그럴 수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법정에 가서

자신의 말을 통해 모든 것을 증명해야만 했다.


말 그대로 말하기는 일종의 '생존 수단'이었다.


그래서 바로 그 법정 옆에는,

‘말하기를 가르치는 곳’이 생겨났다.


(지금 법원 앞에 변호사 사무실이 줄지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여기서 인류 최초로 돈을 받고

스피치를 가르친 사람은 누구일까?


바로, 소피스트다.


그들은 상대를 설득하는 법을 가르쳤다.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을 알려줬을까?

그들이 가장 먼저 가르친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이야기하듯 말하라."


스토리텔링이었다.

왜였을까.


사람은 정보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라진 것과 남아 있는 것


우리는 흔히 정확하게 설명하면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말을 정리하고,

핵심만 남기고,

불필요한 부분을 덜어낸다.


물론 이런 부분도 중요하다.

하지만 인간은 정보만으로 이해하는 존재가 아니다.


맥락을 통해 이해하고,

경험을 통해 받아들이고,

이야기를 통해 해석하는 존재다.


이야기는 흐름을 만들고,

흐름은 맥락을 만들고,

맥락은 의미를 만든다.


그래서 사람은 논리로 납득하기 전에

이야기로 이해한다.


스토리텔링은 단순한 말하기 기술이 아니다.

공감을 만들어내는 구조다.


상대가 그 안에서 자기 경험을 떠올리고,

자기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게 만드는 구조.


그래서 어떤 말은

맞는 말인데도 남지 않고,

어떤 말은 정확하지 않아도 오래 남는다.


그 차이는 정보의 정확성이 아니라 이해의 방식에 있다.


우리는 한때 강하게 말하는 법을 배웠다.

하지만 지금은 이해되게 말하는 사람이 남는다.


웅변학원은 사라졌지만,

소피스트는 사라지지 않았다.


말의 본질은 처음부터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정보만으로 설득되지 않는다.

이야기로 이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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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뮤니케이션 칼럼니스트 김광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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