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를 정리할 때 지워지는 단어들
연애는 감정으로 시작되지만,
관계는 때론 '말(언어)'로 정리된다.
'미혼남녀의 효율적만남'이라는 드라마에서
묘하게 계속 생각나는 장면을 봤다.
여자 주인공 의영은
두 남자의 고백을 동시에 받는다.
한 사람은 마음이 가는 사람, 태섭.
다른 한 사람은 좋은 사람이지만,
부담스러운 마음이 드는 지수.
지수는 계속 마음을 표현하고,
의영은 그 호의를 알면서도
명확하게 선을 긋지 못한 채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닫는다.
이대로는
상대에게 계속 여지를 주는 거라는 걸.
결국 의영은 선택을 한다.
그리고 관계를 정리한다.
태섭과는 연인이 되고,
지수에게는 더 이상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
며칠 뒤, 작은 일이 하나 생긴다.
지수가 가지고 있던 의영의 가디건.
지수는 가디건을 다시 건네주려고 의영을 찾아갔지만,
의영을 직접 만나지 않는다.
밤늦게 의영의 집 앞까지 왔다가,
경비실에 조용히 맡겨두고 돌아선다.
굳이 얼굴을 마주하지 않는 선택.
이미 많은 감정이 지나갔다는 걸
그 행동 하나로 알 수 있다.
다음 날 아침.
의영은 태섭을 만나러 집을 나선다.
경비 아저씨가 그녀를 불러 세운다.
“어제 누가 이거 맡기고 갔어요.
잘 받았다고 연락이나 좀 해줘요.”
그제서야 의영은
지수가 다녀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손에 쥔 건
단순한 가디건 하나지만,
그 안에는 정리되지 못한 감정이 같이 들어 있다.
의영은 휴대폰을 꺼낸다.
그리고 메시지를 쓴다.
“지수야. 가디건 잘 받았어. 고마워.
어제는 잘 들어갔어?”
우리가 너무 익숙하게 쓰는 문장이다.
이름을 부르고,
안부를 묻고,
대화를 이어갈 수 있는 문장.
그런데 의영은 멈춘다.
그리고 생각한다.
이 말이,
또 여지를 남기는 건 아닐까.
잠시 후, 몇 개의 단어가 지워진다.
남은 문장은 하나다.
여기서 질문.
어떤 단어들이 지워졌을까?
어떤 단어만 남았을까?
지워진 단어를 생각해보기를 바란다.
여기서 사라진 건
단순히 한 두개의 단어가 아니었다.
그 이상이었다.
바로, 관계가 멈춘 것이다.
정답을 공개한다.
.
.
.
.
.
“가디건 잘 받았어. 고마워.”
다시한번 살펴보자.
지워진 것은 두 가지였다.
이름과 질문.
이름을 부르는 순간,
관계는 다시 시작된다.
상대를 다시 불러들이는 행위다.
관계의 문을 한 번 더 여는 신호다.
질문은 더 분명하다.
관심의 표현이자
대화를 이어가겠다는 의지다.
그래서 사람은
관계를 정리할 때 이 두 가지를 지운다.
이름과 질문.
그 장면을 보면서
한 가지가 더 선명해졌다.
관계를 끝낼 때
사람이 지우는 것이 있다면,
관계를 이어갈 때
사람이 남겨야 하는 것도 분명하다는 것.
이름을 부르는 것.
그리고 질문을 건네는 것.
이름은
상대를 지금 이 순간의 ‘한 사람’으로 만든다.
질문은
관계를 이어가겠다는 신호다.
그래서 관계는
이름과 질문으로 시작되고,
이름과 질문이 사라지면서 끝이 난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이름을 불러주고 있는지.
그리고
그 사람에게 질문을 건네고 있는지.
관계는 거창한 말이 아니라,
이 두 가지에서 이어진다.
오늘,
가장 소중한 사람의 이름을 한 번 더 불러주고,
그에게 진심 어린 질문 하나를 건네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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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뮤니케이션 칼럼리스트 김광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