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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레매거진 Feb 10. 2021

[나의 STUFF] 아버지는 왜 TV를 부쉈을까


친구 아버지 이야기다. 친구가 평소처럼 자기 방안 침대에 누워 있었다.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려 나가보니 아버지가 술이 불콰해져서 들어오셨다. 친구는 아버지에게 인사를 하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퍽하는 큰소리가 나서 거실로 나가봤더니 TV 패널이 박살나 있었다. 친구 아버지는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리모콘을 TV 패널에 세게 던졌던 것이다.


그 후로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아마도 TV를 바꾸고 잠깐의 해프닝으로 끝났을 것이다. 그래도 의문은 남는다.


왜 친구 아버지는 TV를 부쉈을까.

우리도 부모님 집에서 10년 넘게 삼성 파브 LED TV를 쓰다가 수명이 다해 새로운 TV로 바꾸었다. 어쩌면 친구 아버지가 아니라 우리 아버지가 리모콘을 던졌다고 써도 이 이야기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버지의 명예를 위해 일단은 친구 아버지라고 해두자. 누구나 술 마시고 실수는 할 수 있는 거니까.

 

친구 아버지가 TV를 부수기까지 아마도 무수한 일들이 뒤에서 벌어지고 있었을 것이다. 가정 불화가 있었을 수도 있고 사회적인 관계가 틀어졌을 수도 있다. 아니면 단순히 그날만 술이 너무 취해서 폭력성이 노출된 건지도 모른다. 현상은 하나지만 해석은 여러가지가 될 수 있다.


친구 어머니는 남편이 TV를 부순 것에 대해 별말은 안 했지만 속이 끓었을 게 분명하다. 친구도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TV가 부숴진 것에 대해 나름대로 충격을 받았다고 나중에 나에게 털어놓았다. 거실에 있는 TV란 가족을 위해 마련한 물건으로 한 가정의 화목함을 상징하기도 한다. 가족들은 저녁을 먹으면서 TV 소리를 듣기도 하고, 같이 예능프로그램을 보면서 웃기도 한다. TV 프로그램에 나오는 연예인을 두고 한두마디씩 던지는 것이 어쩌면 그날 가족끼리 나눈 유일한 대화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TV를 부쉈다라. 요즘처럼 젊은이들은 TV를 보지 않고 넷플릭스에 수천억원을 갖다 바치는 세상에서 TV 따위는 없어도 괜찮을 수도 있다. 실제로 자신은 집에서 TV를 보지 않고 유튜브를 본다는 사람도 많다.


나는 TV를 바꾼 후 얼마 되지 않아 독립을 했다. 부모님의 강권에 따라 웨스팅하우스의 TV를 샀다. 대기업 물건은 아니지만 KT 셋톱박스에 연결해서 케이블 방송을 보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요즘처럼 스마트 TV가 흔해진 시대에 이런 ‘보통 TV’를 보는 것도 흔하지 않은 일이 되어버렸다.

아무래도 집에 혼자 있으면 태블릿으로 인터넷 방송이나 유튜브, 페이스북을 보게 되지 TV를 뚫어져라 시청하는 일은 드물다. 본래 TV는 가족 단위의 시청을 목적으로 사는 것이었고 방마다 TV를 사기 시작한 건 최근의 일이다. 더욱이 스마트폰과 태블릿의 등장 이후에는 제각기 방에 틀어박혀 있기 일쑤다. 우리 아버지도 넷플릭스 구독자다. 정작 나는 아닌데.


TV를 켠다는 건 거실에 가족들이 모여든다는 의미다. 이들에게 대화거리를 제공해주고 잠시 동안 동일한 영상물을 감상하게 해서 동질감을 형성한다. 2021년의 TV는 그런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친구 아버지가 핸드폰을 던졌다거나 했다면 그다지 놀랄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핸드폰은 떨어뜨리면 쉽게 고장나고는 하는 물건이고, 개인의 것이기에 그걸 부수든 말든 각자의 선택이다.

하지만 TV는 공동의 것이다. 집안의 가장이라고 해도 가족들이 같이 보는 TV를 독단적으로 때려 부술 권리는 없다. 때문에 TV를 부수는 행위는 가족간의 유대를 해치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들만의 시간을 없애버리는 것이다.


한국 사회는 점점 3~4인 가구가 사라지고 1인 가구화가 되고 있다고 한다. 나 역시 1인 가구 중 하나다. 1인 가구의 TV와 3~4인 가구의 TV는 그 성격이 다르다. TV가 부숴지고 우리는 서로 떨어져 살게 된다. 가끔 전화로 안부를 묻고 얼굴을 보지만 일상 속에서 TV를 보는 시간을 공유하던 때와는 다른 느낌이다.


TV가 부숴졌을 때의 우리와 그렇지 않았을 때의 우리가 영영 가까워지지 못하는 평행선처럼 일정 거리를 두고 멀리 떨어진 기분이 든다. TV 하나가 부숴졌다고 해서 너무 과도한 의미부여를 하는 걸까. TV는 시간이 지나면 고장나게 되어 있고 요즘 신형 TV는 그렇게 비싸지 않으니 얼마든지 새로 바꿀 수 있는 게 아닐까.

TV는 바꿀 수 있지만 가족은 바꿀 수 없다. 어떤 일본 코미디언은 가족을 두고 남들이 보지 않을 때 내다 버리고 싶은 것이라고 말했다. 우스갯소리이지만 곰곰이 씹어볼 만한 이야기다. 나는 이제 나만의 가족을 만들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하지만 물리적 여건은 여전히 1인 가구로서의 생활을 겨우 영위하고 있을 뿐이다.


한국의 수많은 젊은이들이 연애 대신 취업을, 결혼 대신 비혼을 선택하게 될 것이라고 뉴스에서는 떠든다. 생애 미혼율이 몇십퍼센트에 달할 것이란 암울한 통계도 있다. 가족이 사라지면 분명히 TV 소비가 줄어들 것이다. 집에서 혼자 보는 TV는 어딘가 섬뜩한 면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밥을 먹으면서 TV를 틀어놓지만 내용에 집중하지는 않는다. 그냥 배경음악처럼 켜놓고 머릿속으로 다른 생각을 한다.


지금 당장 누군가가 내 TV를 가져간다고 해도 아쉬울 게 하나도 없다. 대신 태블릿으로 인터넷 방송을 틀어놓으면 되기 때문이다. 트위치, 아프리카, 유튜브, 넷플릭스, 티빙, 디즈니플러스, 쿠팡플레이, 왓챠, 웨이브, 시즌을 보면 되기 때문이다. 유료든 무료든 하루 24시간 동안 볼 수 있는 매체는 수없이 많은 세상이 됐다.

그 중에는 가족들이 보기에는 너무 자극적이거나, 폭력적이거나, 선정적인 것도 많다. OTT는 기본적으로 개인적인 미디어다. 넷플릭스가 승승가도를 달리는 것은 가족의 시대가 저물고 개인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혼자 살면 적어도 아버지가 TV를 부순 일을 두고 놀랄 일도, 걱정할 일도 없다. 하지만 가족은 서로 걱정해주는 사이다.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궁금해하는 사이다. 끈적끈적하고 거추장스러운 관계일지도 모르지만 한국의 가족관계는 그런 식으로 작동한다.


그날 아버지가 TV를 부순 건 나름대로의 신호였을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한다. 아버지의 무시할 수 없는 신호를 잡아내서 그에 대한 답을 하는 것이 TV를 바꾸는 일보다 더 중요하다고 느낀다. 우리는 가족이니까. 그리고 TV를 같이 보는 사이니까.






타인의 취향을 엿보는 공간, <벨레 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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