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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레매거진 Feb 16. 2021

[나의 STUFF] 트위터로 사람을 만나지 맙시다

2012년 겨울, 두번째 직장을 그만두고 부산으로 여행을 갔다. (사실은 잠수를 탔다.) 짧은 여행길이지만 지루할 것 같아서 애플 리셀러샵에 들러서 아이패드 3세대를 샀다.


이것이 내가 처음으로 쓴 태블릿 피시이며 애플 제품이었다. 어째서 직장을 그만두었는데 아이패드를 산 걸까. 인과관계는 알 수 없지만 그 당시 나는 그래야만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겨울 바닷가를 걸으며 아이패드로 심규선 with 에피톤 프로젝트의 ‘꽃처럼 한 철만 사랑해줄 건가요?’를 들었다. 당시 찍었던 사진들은 여전히 내 오래된 아이패드에 저장돼 있다. 지금은 갤럭시 탭으로 바꾸었지만 아이패드는 여전히 동작한다. 물론 수시로 꺼지긴 한다.

아이패드를 사용하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트위터 머신, 페이스북 머신, 인스타그램 머신, 유튜브 머신 중에서 고르면 된다. 페이스북도 봤지만 나는 주로 트위터 머신으로 사용했다.


트위터는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곳에서 혼잣말을 주절거리는 매체다. 내 혼잣말을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지켜보고 또 검색까지 된다니 놀라운 곳이 아닌가.


2021년 지금은 트위터 세계가 많이 줄어들었지만 2012년~2015년만 해도 아직 트위터에는 힘이 있었다. 나는 어떻게 하면 혼잣말을 창의적으로 할 것인가를 고민하며 하루를 보냈다.


여초인 트위터 사회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트윗과 리트윗을 여성들과 주고 받았다. 그러던 중 한 사람, 여기서는 A라고 하자, A와 친해지게 됐다.

A는 서울 모 대학 사회학부에 다니고 있는 여자 사람이었다. 어쩐지 그녀와는 말이 통할 것 같고 실제로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나는 대뜸 트위터로 “만날까요?”라고 트윗을 보냈다. 그녀는 망설이지도 않고 “좋아요!”라고 답했다.


우리는 혜화동에 있는 카페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3번째 직장인 시민단체에 다니고 있던 나는 회식이 있어서 연태주를 많이 마셨다. 술에 취한 채로 카페에 앉아서 그녀를 기다리며 아이패드로 트위터를 했다. 그녀의 트위터에 “조금 장난을 쳐볼까?”란 트윗이 떠 있었다.


그녀는 2시간이 지나서야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그녀에 대해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옷은 더럽고 머리카락은 오랫동안 감지 않은 것 같았다. 추리닝을 입은 그녀는 대학생으로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려 보였다.


당시 갓 30대를 넘은 나는 어리둥절해지고 말았다. 하지만 여전히 연태 고량주의 술기운이 남아있었던 터라 그녀와 혜화동 밤거리를 걸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가 도대체 어떻게 그런 말이 튀어나오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그녀가 갑자기 말했다.


“우리 결혼을 전제로 사귀기로 해요.”


나는 대번에 좋다고 말했다. 말했듯이 술이 아직 덜 깼던 것이다. 당시에는 모든 것이 꿈만 같고 몽롱한 상태에서 벌어지는 연극처럼 느껴졌다. 그녀와 나는 무대 위에 올라서 정해진 대사를 읊기만 하는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와 헤어지고 나는 집에 돌아갔다.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아 혁오의 노래를 들었다. 새벽에 뭔가 끓어오르는 것이 있었다. 나는 이전에는 한번도 여자친구를 사귀어본 적이 없었다. 오늘 마침내 이뤄냈던 것이다. 내게도 여자친구가 생겼다.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혁오의 노래를 들으면서 한참을 울다가 잠이 들었다.

사무실에 출근하자마자 조퇴를 하고 그녀를 만났다. 그녀와 나는 같이 살 집을 알아보기 위해서 돌아다녔다. 점점 겁이 나기 시작했다. 술은 벌써 깬지 오래이고 이건 꿈도 아니었다.


나는 계약하기 직전까지 부동산을 알아보다가 말도 안되는 핑계를 대고 계약을 파토냈다. 그녀가 내 손을 꼭 잡아주었다.


그녀가 이상한 사람이라면 나도 이상한 사람이었다. 이상한 것에도 정도가 있지 이건 정말 이상했다. 그녀는 내가 태어나서 만나본 사람 중에서 가장 이상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부산에서 올라온 아버지를 만난다며 자신의 갈 길로 갔다. 헤어지기 직전에 그녀와 달라붙어 서서 그녀의 머리카락을 훑어보니 비듬이 떨어졌다.


“개인 위생에 신경을 쓰셔야겠네요.”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츄리닝 대신 청바지와 닥터마틴 구두를 신은 그녀는 그렇게 떠나갔다. 그리고 트위터로 더 이상 그녀와 연락이 되지 않았다.

나는 트위터에서 차단당했고 전화번호는 수신이 되지 않고 발신만 되는 번호였다. 왜 그녀가 수신이 되지 않는 선불폰을 사용했는지 또 이상한 복장으로 첫만남에 나타났는지에 대해서는 다 이유가 있지만 굳이 여기서는 쓰지 않겠다. 누군가의 마음을 다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후로 나는 촛불 시위 때 우연히 그녀를 마주쳤다. 그녀는 노트북을 들고 뭔가를 치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지금 몇시죠?”라고 물었다. 그녀는 나를 보더니 “제이슨씨다!”라며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시간을 말해준 후 촛불 시위의 군중 속으로 사라져갔다. 나는 그녀에게 왜 연락을 끊었는지 묻고 싶었지만 묻지 않았다. 때로는 묻지 않는 게 더 나은 때도 있는 법이다.


나는 그녀를 좀처럼 잊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와 만날 방법이 없었다. 우리는 트위터 세계에 사는 인간들이었기 때문이다. 리트윗과 마음, 답글 사이의 우주에서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뿐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몇 년이 흘러 그녀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트위터를 통해 전해 들었다. 그녀가 왜 그랬는지 나는 여전히 알지 못한다. 그리고 왜 나에게 결혼을 전제로 사귀자고 했는지 이유를 들어보지 못했다.

그녀는 나에게 아이패드를 트위터 머신으로 쓰던 시기를 상징한다. 트위터를 통해 만나서 트위터를 통해 헤어진 그녀는 1과 0의 비트로 이루어진 인간이었다.


이건 아주 이상한 이야기이고 불쾌할 수도 있는 것이 되고 말았다. 불쾌한 사람이 있다면 이 자리를 빌어 사과를 드리고자 한다. 그녀에게 안녕이란 말을 하지 못했던 것을 후회한다. 어째서 우리는 만났고 헤어지고 영원히 다시 만나지 못하게 되었을까.


아이패드는 알고 있다. 그녀와 나눈 DM의 기록들이 아이패드에 다 저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애플 3세대, 뉴아이패드. 나는 이 녀석을 아무래도 당분간은 버리지 못할 것 같다. 아이패드에 저장되어 있는 사진들과 대화들이 내가 살아있는 이유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아직 그곳에 살아있기 때문이다.


나의 STUFF - 뉴아이패드(3세대)

사진출처: 언스플래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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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취향을 엿보는 공간, <벨레 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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