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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레매거진 Feb 23. 2021

[나의 STUFF] 한강에 자전거 타러 갔다가 차인 썰


나는 자전거를 잘 타지 못한다. 어렸을 때부터 운동신경이 없었고 커서도 운동하고는 담을 쌓고 지냈다. 자전거를 탈 줄은 알지만 능숙하게 타지는 못한다. 자전거를 타다가 멀쩡한 평지에서 넘어진 적도 여러 번이다. 이런 기억들이 나로 하여금 자전거를 타지 못하게 했다. 


모 잡지사에 취직했을 때 외발 세그웨이인 나인봇 원을 리뷰하게 되었다. 외발 세그웨이란 무게 중심을 앞으로 향하면 앞으로 가고 뒤로 향하면 멈추는 전동기구다. 


보통 바퀴가 2개 있는 것이 안정적인데 어째선지 내게 맡겨진 녀석은 바퀴가 하나만 달려 있었다. 당시에는 외발 세그웨이가 얼마나 타기 어려운 녀석인지 몰랐다. 그냥 타면 타지지 않을까라는 운동 초심자의 섣부른 생각만 있었다.


외발 세그웨이는 구조상 외발 자전거를 타는 것과 마찬가지인 난이도를 가지고 있다. 나는 회사 지하로 내려가 외발 세그웨이를 타기 위해 연습을 시작했다. 


하루가 흘러도 이틀이 흘러도 나는 수백 번 넘어지기만 할 뿐 좀처럼 녀석을 타고 주행을 하지 못했다. 주위에서 팔을 잡고 세그웨이 위에 올려놔도 중심을 잃고 쓰러지기 일쑤였다.

물론 리뷰는 실제로 사용하지 않아도 쓸 수 있다. 신문사에서 책을 읽지 않아도 리뷰를 쓰는 것과 마찬가지다. 외발 세그웨이는 다른 전자기기와는 달리 스펙만으로 쓸 수 있는 제품이 아니었다. 


직접 몸으로 타보고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아야 제대로 리뷰를 쓸 수 있는 제품이었다. 일주일 내내 외발 세그웨이를 타는 연습을 했고 종아리가 쓸려서 고통스러울 지경이 되었다.


회사 지하에는 주차장처럼 바닥이 매끄럽게 처리가 되어 있어서 세그웨이를 타기에는 적합했지만 한번 넘어질 때마다 제품이 바닥에 튕기는 소리가 요란했다. 


마침 주변에 다른 회사가 자리를 잡고 있어서 직원이 나와 손가락을 까딱까딱하며 타지 말라고 말리곤 했다. 나는 그럴 때마다 “안 타요”라고 입모양을 보여주며 나인봇을 챙겨 위층으로 후다닥 도망갔다.


결국 어떻게 됐냐고? 외발 세그웨이를 능숙하지는 않아도 100미터 이상 주행하는 데에는 성공했다. 종아리에는 멍이 들고 넘어질 때마다 쓸렸던 바지에는 구멍이 나 있었다. 세그웨이를 가지고 출퇴근을 한다는 기사가 흔하게 나오던 시기였다. 

하지만 세그웨이나 전동 킥보드는 자전거 도로가 아니라 일반 도로를 이용해야 하는 법적인 미비점이 존재했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세그웨이를 일반 도로에서 탄다는 것은 자살행위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세그웨이 에피소드로부터 몇 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관련 법 정비는 지지부진한 상태다. 


아픈 종아리를 주물러가면서 나인봇 원 리뷰를 쓴 나는 기사 말미에 자전거를 타러 갔다가 연락이 끊긴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짧게 썼다. 


우연히 알게 된 그녀와는 공연을 같이 보면서 처음 만났다. 2번째로 만날 때는 한강에서 봤는데 자연스럽게 자전거를 타게 됐다. 2인용 자전거를 타보면 어떨까 하는 제안에 그녀는 단호히 거부의사를 표시했다.


자전거를 타고 한강을 달리려고 했던 나는, 자전거 조작이 미숙했기에, 그녀에게 선두를 맡겼다. 그녀는 약간 머뭇거리다가 내 앞으로 가서 자전거를 몰고 갔다. 뭔가 낭만적인 기분이 들어서 칼바람 속에서 2시간 동안이나 자전거를 탔다. 다행히 그날은 넘어지지 않았다. 그 여자 분하고는 다시는 연락이 되질 않았다. 


자전거를 잘 타지 못한다는 것은 여러모로 살아가는 데 있어서 불편하다. 여자와 같이 한강에서 자전거를 탈 때 리드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업무로 외발 세그웨이를 탈 때도 수백 번 넘어져야 하는 핸디캡을 갖게 된다. 

이제는 한강에서 자전거를 빌릴 수가 없게 된지도 몇 년이 됐다. 요즘 한강에서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은 대부분 동호인들이다. 가벼운 마음에 자전거를 빌려서 타는 일이 불가능해졌다. 


한강 난지공원에서는 음악 페스티벌이 자주 열리곤 한다. 나는 1년에 1번은 빠지지 않고 페스티벌에 가는 편인데 가끔은 음악을 듣는 대신 자전거를 타곤 했다. 그런 소소한 재미가 이제는 사라지게 됐다.


삶의 변화를 생각해보면 문득 아득해지는 느낌이 든다. 외발 세그웨이를 타기 위해서 애를 쓰던 나, 한강에서 자전거를 타던 나, 그녀와 티라미수 케이크를 나눠 먹던 나, 그런 나는 이제 기억 너머로 사라졌다. 대신 남아있는 것은 오래된 기록들 뿐이다. 


잡지사에서 썼던 기사의 스캔본을 이력서에 첨부해 이곳저곳에 넣었다. 그중에는 외발 세그웨이를 탄 기사도 있었다. 여자와 한강에 갔다가 다시는 연락이 되지 않았다는 문구에 담긴 의미를 알아주는 고용주도 한 명은 있었다. 물론 그곳에서 오래 일하지는 못했다.

면접에서 항상 이런 질문을 듣게 된다. 물론 이런 질문이 나오게 된다면 그 면접은 애초에 그른 면접이지만. 


“왜 그렇게 이곳저곳 옮겨 다녔나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답은 매번 다르게 나온다. 직장에 적응하지 못해서, 더 나은 직장이 있을 것 같아서, 업무 강도가 세서, 급여가 낮아서 등등. 이런 질문은 다른 분야에도 적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왜 그날 한강에 가서 꼭 자전거를 탔나요?”


답은 그냥 그러고 싶어서다. 얼마 일하지 못하고 나온 잡지사에 들어가 외발 세그웨이를 타기 위해 노력한 시간도, 누군가와 같이 있고 싶어서 한강에 자전거를 타러 가자고 제안한 일도 사실 특별한 이유 따위는 없다.


그때그때의 충실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나는 선택을 했고, 그 결과가 남았을 뿐이다. 나인봇 원, 추천할 만하냐고? 물론 좋은 제품이다. 가격이 백만 원을 넘는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운동신경을, 연애세포를, 자전거 실력을 점검해보는 시간을 가지는 게 좋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나처럼 부어오른 종아리의 기억과 한강에서의 매서운 바람처럼 떠나간 그녀를 떠올리게 된다. 그녀는 다른 사람과 연애 중을 표시하고 금방 내 시야에서 멀어져 갔다. 그 후로 한강에 가서 자전거를 타는 일은 없었다. 외발 세그웨이를 타고 다니는 사람도 인도에서는 보기 힘들어졌다. 

세그웨이가 미래의 교통수단이 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지만 그 예상은 사람마다 다른 적응력을 무시한 예측이었다. 세상은 의외로 쉽게 바뀌지 않는다. 세상을 이루고 있는 사람 한 명 한 명이 변화에 저항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언젠가 누군가와 또 한강에 자전거를 타러 가게 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세상을 바꿀 뭔가가 또 나올 거라고 생각한다. 


오늘은 실패했지만 내일은 다르겠지.


나인봇 원

사진 출처 : 언스플래쉬



타인의 취향을 엿보는 공간, <벨레 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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