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토종쌀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텃밭의 속사정 ⑩ 토종쌀

by 황반장


작가 조정래의 대하소설 ‘아리랑’은 일제강점기 군산을 배경으로 일제로부터 수탈을 당하는 감골댁 가족과 민중들의 수난사가 그려진다. 강제로 고향을 떠나 군산으로 오게 된 감골댁의 식구들은 주로 쌀을 실어 나르는 부두 주변에서 여러 일을 전전하며 생활한다. 감골댁의 딸 ‘수국’과 친구 ‘오월’은 당시 군산에 우후죽순 생겨난 ‘미선소’에서 일하며 온갖 고초를 겪게 된다.


소설의 주인공인 ‘수국’이 고초를 겪으며 일하는 곳으로 그려진 ‘미선소’는 벼 나락을 도정해 쌀로 가공하는 ‘정미소’에 딸린 시설이다. 일제는 일본에 모자라는 쌀과 군량미를 충당하기 위해 우리나라를 ‘미단작지대’ 로 설정하고 호남평야 일대의 쌀을 군산항을 통해 수탈해갔다. 이 때문에 1920년대부터 군산에는 현대식 정미소가 우후죽순 생겨나게 된 것이다. 1920년에서 1930년까지 군산에는 만석 이상 도정이 가능한 정미소가 14곳이 있었고, 이중 5만 석 이상 가공하는 정미소도 5곳이나 되었다고 한다.


벼는 그냥은 먹을 수 없어 껍질을 벗겨내 가공하는 도정작업을 거쳐야 한다. 또 벼 나락째 운송하기보단 현미나 백미로 가져가는 것이 부피가 적고 운임도 적게 들었다. 철도와 항구가 만나는 자리에 정미소 거리가 형성된 이유다. 수확된 벼는 건조를 하고 나면 겉껍질인 왕겨를 벗겨내 현미로 만드는 과정을 거치는데 커다란 맷돌을 돌려 왕겨를 벗겨내는 곳을 ‘매갈이간’ 이라 하고 이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을 ‘매갈이공’ 이라 했다. 몹시 힘든 과정이어서 주로 남성들이 일을 했었다. 이렇게 왕겨를 벗겨낸 현미는 기계식 정미기로 속껍질을 벗겨내 백미로 만드는데 이 전후 과정에서 쌀에 섞인 돌이나 뉘 같은 이물질을 손으로 골라내 깨끗한 백미를 만드는 일은 주로 여성들이 담당했고 이를 ‘미선공’ 이라 불렀다.

일본으로 쌀을 실어가는 과정에서 우리가 겪어야 하는 고통은 가혹한 것이었다. 저임금 장시간 노동과 관리자의 폭언, 폭력이 도를 넘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소설이긴 하지만 ‘아리랑’에서 미선공 ‘수국’과 ‘오월’이 일본인 기술자와 관리자들에게 겪는 온갖 고초와 성폭력으로 그 참담한 실상을 엿볼 수 있다. 이런 가혹한 노동과 탄압이 군산이 호남지역에서 가장 먼저 3.1 운동이 일어난 배경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분석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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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 군산 아사히 정미소 (이미지 촐처 - 군산근대역사박물관 / 우 - 조정래 대하소설 아리랑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이미지 검색)



그렇다면 일제가 우리에게 수탈해간 쌀은 어떤 것들이었을까?


일제강점기 이전에 우리나라에는 약 1,500여 종의 토종벼가 재배되고 있었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은 이름도 생소한 ‘북흑조’, ‘자광도’, ‘대관도’, ‘각씨나’, ‘궐나도’ ‘버들벼’, ‘메산디’, ‘대춘도’, ‘화도’, ‘졸장벼’, ‘까투리찰’, ‘강능나’, ‘붉은 차나락’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오랜 세월을 거치며 농부들에 의해 육종 되어 각기 다양한 모양새와 색, 향과 맛을 가지고 전국 각 지역의 풍토에 맞게 키워져 왔던 토종벼들이 있었다.

물론 이런 여러 가지 품종의 벼들이 모두 보존되거나 살아남는 것은 아니다. 변화하는 환경에 잘 적응하고 맛과 생산량 같은 여러 조건에 따라 도태되거나 변이를 반복하여 개량되는 과정을 겪는 것이 자연적인 순리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키워지던 다양한 품종의 토종벼들을 자연적은 순리에 의해 더 개량되거나 도태되거나 하지 못하고 단기간에 자취를 감추게 되는데 바로 일제 강점기, 일본의 도입품종 확산 정책 때문이다.

일본 내부의 쌀값 안정과 군량미 보급을 위해 일본은 생산량이 많은 소위 우수 품종을 우리나라에 재배하기 시작했다. ‘와세신리키’, ‘다마니시키’, ‘가노메오’ 같은 일본 품종이 토종벼를 밀어내고 아주 빠르게 우리나라 논에 심어졌다. 1912년 우리나라 총재배 면적에 2.8%에 밖에 되지 못했던 일본 도입품종이 단 8년 만인 1920년에는 52.8% 에 도달했고 10년 뒤인 1930년에는 대부분의 토종벼는 사라지고 일본의 도입품종, 일본 품종을 원종으로 하는 개량품종만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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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 토종벼 화도와 대춘도 / 아레 - 토종벼 북흑조, 북흑조가 심어진 논의 모습



토종벼는 해방 이후에도 다시 복원되지 못했다. 마치 친일잔재가 온전히 청산되지 못하고 독립운동가들의 공훈이 제대로 보상되거나 기록되지 못한 것처럼 보존의 목적으로나 수집되어 겨우 명목을 유지해왔다.

물론 아직까지 그때 일본이 보급한 일본 품종들이 키워지는 건 아니다. 현재에는 농진청에서 개발한 ‘신동진’, ‘삼광’, ‘새일미’, ‘일품’, ‘영호진미’, ‘오대’ 등의 현대에 와서 육종 되고 개량된 벼들이 많이 재배되고 우리 식탁에 오른다. 그렇다 해도 우리는 우리가 주식으로 매일 먹는 밥, 즉 ‘쌀’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는지 생각해볼 만하다. 이 ‘쌀’은 맛과 영양도 가지고 있지만 우리가 살아낸 시간도 담고 있으니 말이다.


다행히 몇 년 전부터 뜻있는 농부들이 조금씩 토종벼를 재배하기 시작해 100여 종 이상의 품종을 복원했다. 토종벼에 대한 다양한 고민과 해석을 담은 행사도 매년 열려 토종벼의 가치에 대한 새롭고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너무 작은 면적에 키워지고 너무 적은 인식을 넘어서진 못하고 있다. 고맙고 다행이긴 하지만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야 더 많이 키워질 것이고 더 많이 키워져야 다양한 그 가치가 복원될 일이다.

그 많던 토종벼는 모두 어디로 갔을까?


화도.jpg 토종벼 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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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벼를 복원하여는 다양한 노력들 (경기도 고양시 우보농장)




참고 및 인용

- 근현대 한국쌀의 사회사 (김태호)

- 한국독립운동의 역사 (한국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 2019 토종벼 하이라이트 (전국토종벼농부들, 이근이 글.정리)

- 거대한 감옥, 식민지에 살다 (민족문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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