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토록 푸른 당근 잎

텃밭의 속사정 ⑨ 당근

by 황반장

“이게 뭐지?”

“글쎄? 뭘까?”

“저기 아저씨! 여기 심어진 게 뭡니까?”


지나가던 사람들이 텃밭에 심어진 채소를 보며 서로 몇 마디 나누는가 싶더니 이내 이게 무엇인지 내게 묻는다. 하! 이런 도시 양반들 보게. 가르쳐줄까 말까 하다가 “뭘까요? 한번 맞춰보세요” 하고 되물었다. “이런 건 처음 보는 거라서... 혹시 파슬리 아닌가요?” 한다. 처음 보는 사람들의 대답 중에서 가장 근접했다고 할 수 있는 대답이었다. 오호. 이분 눈썰미 있으신 분이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면 파슬리를 가루로만 본 것이 아니라 파슬리 생잎을 직접 본 사람이라는 거다. 하긴 요즘은 마트에서 파슬리도 제법 유통이 되니깐. “그러고 보니 이파리는 파슬리랑 비슷하네요. 근데 이건 이파리는 안 먹고 뿌리를 먹는 거예요” “...” 그래도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당근 잎이에요" "당근 잎?"


아주 흔하고 많이 먹는 채소지만 잘 알지 못하는 것이 바로 ‘당근’이다. 그렇다고 당근을 아주 모를 리는 없다. 김밥에서 비주얼과 단맛을 담당하는 것도 당근이며, 잡채에서도 컬러와 밸런스를 담당하는 당근이 빠지면 섭섭하다. 엄마들은 아이들 몰래 볶음밥, 오므라이스, 계란말이에 당근을 다져 넣는다. 카레에서는 당당한 주연 중의 하나다. 하지만 이렇게 알게 모르게 당근과 친숙하지만 우리가 아는 것은 통통 갸름하며 주홍색이 선명한 당근의 뿌리다. 마트에서 파는 당근은 이파리 부분을 제거하고 깨끗이 세척해 몇 개씩 봉투에 담아 놓은 ‘세척 당근’이거나 검은흙이 묻어 있어 밭에서 바로 온 것 같지만 역시나 이파리는 없는 ‘흙 당근’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스마트폰 앱에서 볼 수 있는 당근 캐릭터들도 모두 당근의 뿌리 부분이다.


그래서 아주 많은 사람들이 당근의 이파리를 한 번도 보지 못한 것이다. 전체 모습은 한 번도 보지 못했으니 당근밭을 지나가면서도 이게 당근인지 잘 모르는 게 당연하다. 우리가 아는 당근은 땅속에 숨어 있으니 눈으로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전국 당근의 40% 정도가 제주도에서 키워지고 있으니 어쩌면 당근밭을 만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당근1.jpg 막 캐낸 당근


당근의 원산지는 아프가니스탄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나라에 자색, 황색 등의 다양한 색상의 변이종 당근이 분포되어 있는 것을 근거로 이곳을 당근의 원산지로 보는 것이다. 이 당근은 12세기에 이란, 터키 등을 거쳐 유럽으로 퍼져 나갔는데 이때의 당근은 뿌리가 가늘고 자색을 띠었으며 심지어 딱딱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당근은 17세기 중반 이후 네덜란드에서 처음 개량하기 시작한 것으로 이를 유럽형 당근이라고 부른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13세기에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 남부를 통해 중국 전역과 주변 고원지대로 전파된 것이다. 이를 동양계, 또는 동양형 당근이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에서는 언제부터 재배되었는지는 정확하지 않으나 당나라를 거쳐 들어왔다고 해서 당근이라 부른다는 설이 있다. 홍당무 역시 붉은 당나라의 무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런데 왜 당근은 제주도에서 많이 생산될까? 제주도에서 당근이 심어진 것은 약 50여 년 전인데 1969년 제주도 구좌읍에서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은 전국 최대 당근 주산지가 바로 이곳 제주시 구좌읍이다. 하지만 이곳이 토양이 비옥하고 당근 농사가 잘되기 때문에 많이 키워지게 된 것은 아니다, 제주도는 예전부터 땅이 척박해 농사에 적합하지 않았던 곳이다. 벼농사도 불가능해서 일부 산에 심는 벼가 있을 뿐이어서 조나 메밀을 식량작물로 심었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고구마를 많이 심었지만 현대에 들어서는 감귤을 제외하고는 마땅히 수익을 내는 작물이 없었다. 이때 척박하기는 하지만 물 빠짐이 좋고 통기성도 좋은 화산회토 토양에서 심어질 만한 작물로 고려된 것이 바로 당근이었다. 당근은 배수가 잘되는 사질토에서 잘 자라는 작물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영양분, 즉 비료성분이 이곳 토양에는 없었다는 것이다. 농부들은 척박한 이곳 땅에 당근을 심기 시작할 무렵, 때마침 보급되기 시작한 화학비료와 바닷가에 지천이었던 각종 유기물들이 비료의 역할을 해주었다. 물론 다 사람의 힘으로 다시 흙을 일구어내야 했다. 그렇게 수십 년, 악조건을 기회로 바꾼 농민들의 노력이 지금 제주도 구좌읍이 전국 최대의 당근 생산지가 된 원동력이던 것이다.


땅 속 당근을 키우기 위해 당근 잎은 오늘도 태양을 향해 오른다. 사람들에게는 자신을 보여주지 못하지만 달고 싱싱한 주홍색 당근을 키워 내는 것으로 족하다. 농부들의 마음이 그럴 것이다.




2019년 기준 전국의 당근 생산량은 67,327톤이며 이중 제주도는 25,727톤으로 38.2% 차지하는 전국 최대 생산지이다. 뒤로는 경남, 강원, 경북 순이다. 지역별로 출하시기가 다르며 제주도 당근은 주로 겨울재배를 하기 때문에 1~2월이 제주 당근을 맛볼 수 있는 시기다. 서울에서도 1톤 정도 극 소량이 생산되기는 하지만 서울 당근을 찾지는 어렵다. 당근은 다른 관리 없이도 비교적 잘 자라서 텃밭에서 키우기에도 어렵지 않은 작물이다. 남들이 볼 수 없는 이파리와 당근 꽃을 볼 수 있는 재미도 있다.


당근꽃.jpg 당근 꽃






<도시농부를 위한 당근 재배법>


- 요즘 서울, 경기 등에는 당근 모종을 팔기도 하지만 모종으로 심으면 뿌리내림도 좋지 않고 수확도 실하지 않다. 가급적 씨앗으로 파종하는 것을 권장한다.

- 서울 경기 기준 4월 파종-7월 말 수확, 7월 말 파종- 11월 수확이 가능하다. 발아와 초기 자람이 아주 느리니 조급하지 않고 기다려야 한다.

- 중간중간 솎아주어야 하며 마지막으로 15cm ~ 20cm 간격으로 키워준다.

- 바깥 잎이 늘어져 땅에 닿을 정도가 되면 수확한다.



당근.jpg 당근이 심어진 텃밭 고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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