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욕심껏 심어 놓은 단호박, 맷돌호박 덩굴들이 너머 뻗어나가 텃밭을 다 집어삼킬 기세다. 6월 말까지만 해도 너무 더디게 자라는 것 같아 걱정이었는데 7월 중순에 접어들면서부터는 하루가 다르게 쑥쑥 뻗어나가더니 급기야 다른 밭을 침범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서 순을 휙휙 처내기로 했는데, 날은 덥고 마음은 급했는지 조심성 없이 작업을 하다가 단호박 몇 개가 덩굴과 함께 잘려나가 버렸다. 조금 덜 익었나 싶기는 했지만 후숙 시키면 충분히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집에 가져와 베란다 한편에 모셔두었다.
단호박, 맷돌호박은 텃밭과 경계를 이루는 비탈에 심어 제 마음대로 살길을 찾아갔지만 애호박은 오이처럼 지주대를 세우고 망을 쳐서 덩굴들이 위로 오르도록 해주어서 다른 작물들을 덮어버리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이렇게 해두면 커다란 호박잎 아래에 숨어 있는 애호박을 찾기도 수월하고 면적도 많이 차지하지 않아서 규모가 작은 텃밭을 요모조모 알뜰히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단호박을 후숙 시키면 당도가 높아진다.
올해는 폭염이 더 극성이었지만 고맙게도 애호박이 제법 많이 달려서 좋아하는 애호박찌개를 자주 식탁에 올릴 수 있었다. 이 염천에 찌개가 웬 말이냐 싶을 수도 있지만 한여름에도 새우젓으로 간을 한 애호박찌개만은 포기하지 못하고 식탁에 올려왔었다. 호호 불어 한입 떠 넣으면 입 안 가득 뭉그러지듯 퍼지는 애호박의 달고 싱그러운 맛은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도 화구 앞에 서게 만든다. 대단한 음식은 아니지만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여름이면 늘 먹어온 음식이라 삼복더위도 아랑곳 않고 다시 새우젓 애호박찌개를 끓인다.
이제는 더 이상 먹을 수는 없는 어머니의 애호박찌개도 아주 뜨거운 한여름에 먹는 음식이었다. 종일 밭에서 일을 하고 돌아오신 어머니의 저녁 준비는 애호박을 찾아내는 일에서부터 시작됐다. 집 뒤 비탈을 가득 덮고 있는 호박잎들을 막대기로 살살 헤쳐 나가다 보면 매끈한 모양의 연둣빛 애호박이 고개를 내밀었다. 이 애호박을 숭덩숭덩 썰고 새우젓으로 간을 해 지저 낸 자박한 찌개 한 냄비 앞에 온 가족이 둘러앉았었다. 너무 더울 때는 찬물에 밥 말아 풋고추 찍어 먹거나 여러 푸성귀를 넣고 고추장으로 비벼 먹는 일이 여름을 지내는 흔한 식사법 중 하나다. 하지만 너무 찬 음식으로 배앓이라도 하지 않을까 걱정을 하셨는지 한 번씩 꼭 이 애호박 찌개가 상에 올리셨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니 선풍기 하나 변변히 없었을 텐데, 그 뜨거운 찌개를 끓여내느라 그 시절의 어머니들은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을까?
▲ 텃밭의 애호박은 생김생김이 제각각이다.
사람들은 언제부터 이 여름 삼복더위에 애호박 찌개를 끓였을까? 우리나라에서 호박을 키우고 먹은 기록은 명확지 않다. 조선 후기에 들어서야 여러 문헌에서 호박에 대해 찾아볼 수 있는데 실학자 ‘이익’ (1681년~ 1763년)이 쓴 ‘성호사설’ (星湖僿說)에 애호박이 언급되어 있다. ‘호박이 난지 거의 백 년이 가까이 되었는데 아직까지 호남 지방에는 미치지 못했다’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1600년대에도 호박이 키워진 것을 알 수 있다. 왜 전라도에는 이르지 못했는지는 알 수 없다.
또 ‘이규경 (1788년 ~ 미상)’이 쓴 ‘오주연문장전산고’ (五洲衍文長箋散稿)를 보면 ‘처음에는 승려나 평민들이 먹기 시작했으나 이제는 사대부들도 먹는다. 나중에는 하루라도 빠짐없이 먹는 채소’라고 기록하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의 끼니였고 승려들이 먹었기 때문에 ‘승소’(僧蔬)라고도 불렀다. 실학자 다산 정약용이 지은 시 ‘남과탄’(南瓜歎)에서는 좀 더 자세한 속사정을 알 수 있다. 일부만 살펴보자.
"듣자니, 끼니 떨어진 지 서너 날
호박을 길러 따서 죽 끓여 마셨다만,
어린 호박 다 따 버려 어쩔 수 없고
늦게 핀 꽃 지지 않아 열매 아예 달리지 않은 터,
옆집 밭에 익은 호박이 항아리만 같아
여종이 틈을 엿보아 훔쳐다가,
충성을 바쳤으나 야단을 맞으니
누가 훔치라 했냐 회초리에 꾸지람이 호되네."
이 시의 제목인 남과(南瓜)가 호박을 의미하고, 여기에 탄식할 탄(歎)이 붙었으니 ‘호박 탄식’이 되겠다. 끼니를 겨우 호박죽으로 버텼지만 이마저 떨어지자 옆집 밭의 호박을 훔친 여종을 부인이 나무라는 모습을 보고 탄식하는 내용이다. 시 하나로 당시의 생활상을 다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호박이 구황작물로 이용되지 않았을까 유추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애호박에서 호박잎, 호박꽃, 늙은 호박까지 어느 하나 버릴 것 없었으니 얼마나 고마운 작물이었을까? 게다가 조리법도 다양해 국이나 찌개에도 들어가고 삶거나 볶아 반찬이 되며, 호박죽 한 그릇이면 배고픈 사람들에는 충분한 끼니가 되어주었을 테니, 한여름이라도 더위를 아랑곳 않고 불을 지피지 않았을까?
▲ 호박꽃 진 자리에 호박이 열린다.
이제 보릿고개는 방송 드라마의 소재이거나 옛날 어른들 얘기에서나 듣는 말이 되어버렸고, 상시적인 배고픔은 일반적으로는 사라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구황작물이라고 부르는 작물도 없다고 할 수 있겠다. 호박의 위상도 달라졌다. 2019년 기준 우리나라의 호박 생산량은 343,511톤에 이른다. 이중 노지호박이 177,795톤을 차지하고 시설호박이 165,716톤이다. 전남과 경남이 최대 산지이며 경북, 경기 순으로 생산량이 많다. 어느 마트던지 채소코너에 호박이 떨어지는 날은 없다. 보통 애호박 하나에 천원 안쪽이면 살 수 있으니 단짠단짠의 원조 격이 새우젓 애호박찌개냐, 아니면 돼지고기 조금 넣어 단백질을 보강한 칼칼한 고추장 애호박찌개냐를 결정하면 될 일이다.
그래도 아직 이 애호박 하나에 한 여름 폭염처럼 애가 타는 사람들이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애호박 농사를 짓는 농민들이다. 기후위기로 생산량은 들쭉날쭉하고,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음식점 납품은 급감하고 학교급식 또한 뚝 끊겨버린 것이다. 판로도 없는데 수확하고 포장, 발송하는 비용까지 들일 수야 없는 노릇이다. 애호박 한 박스에 500원이라니 폐기 처분하는 일이 그나마 덜 밑지는 일이 돼버렸다. 노지 호박의 주요 산지 중 하나인 강원도 화천군에서만 213톤을 폐기한다고 한다.
도시농부들이 작은 텃밭에서 농사짓는 효과 중 하나가 농사의 고단함과 소중함을 이해하는 것이라지만 농부들의 이 타는 마음을 어찌 헤아릴 수 있겠는가? 이 도돌이표 같은 질문을 멈추기 위해서 도시농부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 질문해본다.
▲ 2021년 여름, 노지 애호박의 산지인 강원도 화천군에서는 가격이 폭락한 애호박을 폐기하고 있다. (이미지 출처 - 화천군 홈페이지)
<도시농부들을 위한 호박 농사 tip>
- 한 여름이면 애호박이 하루가 다르게 자란다. 도시가구에서는 모종 2개면 충분한 양을 얻을 수 있다. 기르는 재미와 수확을 기쁨을 얻고 더 필요한 수요는 농민들이 정성껏 재배한 호박을 구매하는 것도 도시농업의 한 부분이다. 도시에서는 먹는 것도 농사라 했다.
- 텃밭이 넓지 않거나 공동체 텃밭에서는 삼각형으로 지주대를 세우고 유인줄을 묶어주어 덩굴이 위로 가게 하면 좁은 공간에서도 덩굴작물을 키울 수 있다.
- 단독주택이나 유휴공간이 있는 곳이라면 지주대를 시렁처럼 엮어 주거나 울타리를 이용해 덩굴을 얹어주면 녹색커튼 효과와 풍광을 즐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