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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희 Jul 20. 2023

혼자서 놀기

유튜브도 보고 책도 보고

우울한 건가? 정말 아무것도 하기 싫다. 그냥 소파에 앉아 티브이를 튼다. 채널을 돌린다. 혼자 사는 이야기, 돈 버는 이야기, 여행하는 이야기, 건강 관리 이야기, 홈쇼핑, 뉴스... 한 프로를 1분을 이상 볼 수 없다. 조금 불안하기도 하다. 잠깐만 쉬다 가자. 티브이 위에 시계를 본다. 잠깐 앉았던 것 같은데 벌써 30분이 지났다. 소파에 오래 앉아 있으면 안 되는데... 머리는 명령하지만 몸은 움직이지 않는다. 유튜브로 바꾼다. 평소 듣던 강의나 다큐가 뜬다. 보고 싶지 않다. 다른 게 뭐가 있지? 티브이와 마찬가지로 이것저것 잠시 보다가 우연히 어떤 젊은 부부의 영상을 보게 됐다.


간호사 아내와 회계사 남편. 둘은 같은 대학을 졸업하고 각각 큰 병원과 큰 기업에서 3년간 일하다 미국에 가서 뉴욕에 산다. 아내는 적극적이고 부지런하고 긍정적이고 남편은 조용하고 성실하고 변화를 싫어한다. 그런데 어떻게 미국에 갔을까? 아무래도 아내가 설득한 모양이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결혼 전에 미국 가서 일하며 공부할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우고 실천했다는 거다. 부인은 수술실에서 정규직으로 일하며 존스홉킨스 대학에서 DNP(Doctor of Nursing Practice) 공부도 한다. 전공을 바꾼 남편은 석사를 마치고 취직도 하고 회계사 시험에도 합격했다. 아내는 엑셀에 쓴 생활비를 남편에게 보여준다. "우리 외식비를 줄여야 할 것 같다... 그래... 지난달에 여행비를 많이 썼다... 그건 후회 안 한다... 통신비가 많이 나와서 알뜰폰으로 바꿨다... 근데 잘 안 터진다..." 한 가지 원칙은 학비를 위해 매달 2000불은 꼭 저금한다고 했다. 


열심히 사는 모습이 예쁘다. 소위 말하는 금수저도 아닌 것 같은데...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뚜벅뚜벅 자신의 목표를 달성해가고 있다. 일하며 공부하기도 힘들었을 텐데 언제 동영상을 찍어서 올렸을까? 아내는 봉사활동까지 한다고 했다. 시간 관리를 잘하는 모양이다. 나는 저 나이에 무엇을 했더라? 아이 둘의 엄마였다. 나는 엄마부터 시작했고 저들은 공부부터 시작했다. 생각해 보니 나도 부피가 큰 비디오카메라로 아이들 동영상을 찍었었다. 창고에 있을 텐데 이번 방학에 찾아봐야겠다. 어머나, 시간이 이렇게 지났다니... 너무 놀았다. 


젊은 부부 덕분에 기분이 좋아져서 서재로 돌아왔다. 실컷 놀았으니 이제 책 좀 볼까? 며칠 전 도착한 한글판 <<실낙원>>. 영어로 읽을 때는 바퀴가 고장 난 여행가방을 끄는 것 같았는데 한글로 읽으니 새 가방 같다. 사실 이 책을 한 달 이상 붙들고 있으며 녹초가 됐다. 그래서 한글로 된 번역이 궁금해졌다. 영어가 편해지고 난 후로 번역서는 읽지 않았는데 잘 번역된 책은 가치가 있다. 한글을 보며 영어로 적어보면 어휘도 늘고 기억력도 강화된다. 이 책은 특히 옮긴이의 정성이 행간에서 느껴진다. 덕분에 내용이 선명해져서 읽기가 즐거웠다. 직업병일까? 너무 놀아서 죄책감이 들었는데 책을 읽으니 마음이 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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