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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희 Aug 18. 2023

<<전체주의의 기원>>

소감 1: 정치를 모르면 죽을 수 있다. 

책을 읽고 뭔가 새로운 것에 관심이 간 적이 있나? 해나 아렌트(Hannah Arendt)의<<전체주의의 기원 (The Origins of Totalitarianism)>>을 읽고 생전 한 번도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는 정치가 궁금해졌다. 심지어 제대로 정치에 참여하지 않은 게 부끄럽기까지 했다. 솔직히 정부에서 누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정치에 관해 전혀 모르면서도 정치인을 우습게 생각했다. 선거 철이 되면 확성기로 떠들고 돌아다니는 게 마치 동네에 물건을 팔러 온 상인 같았고, 티브이에 나와 말하는 걸 보면 토론을 하는 게 아니라 비방과 변명이 주를 이뤄 채널을 돌리게 됐다. 그러나 어쨌든 정치에 참여한 많은 사람 덕분에 민주주의 국가에서 잘 살고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전체주의가 아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그러나 아렌트의 책을 읽으며 살짝 걱정이 됐다. 세계 1차 대전 후 독일이 전체주의가 된 데에는 몇 가지 요소가 있는데 요즈음 우리 사회도 그런 요소가 있지 않나 해서다. 집 없고, 뿌리 없고, 외롭고 불만에 가득 찬 사람. 경제력이나 학력에 관계없이 이런 요소를 가진 사람이 거리낌 없이 수백만명의 유대인을 학살했단다. 


칸트 같은 철학자를 배출한 나라가 어쩌다 히틀러 일당의 소굴이 되었을까? 아렌트는 답을 찾기 위해 10년 이상 조사한 결과를 600페이지가 넘는 책 속에 담았다. 유럽의 역사 정치적 상황 특정 인물 등을 통해 어떻게 나치 독일과 스탈린주의 러시아에서 인권이 유린되었는지 설명했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눠져 있다. 반유대주의, 제국주의, 전체주의. 각 편은 4~5장으로 나뉘었고, 각 장에는 두세 개의 소제목이 붙여져 있다. 아렌트의 글쓰기는 좀 특이하다. 책 내용이 역사 철학 문학 나치기록 등 여러 자료에 바탕을 둬서 이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저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 헷갈렸다. 네 개의 서문이 있는데 어떻게 보면 서문만 읽어도 모든 걸 다 들은 느낌이다. 그러나 책을 다 읽어야 서문이 이해가 간다. 절대로 급하게 읽으면 안 된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책장이 잘 넘어가지 않을 때는 책에 관한 설명과 토론 등을 담은 유튜브 영상도 찾아봤다. 


초한 서문은 이렇게 시작된다: 한 세대에 두 차례 세계 대전이 일어났고 그 사이에도 지역 전쟁과 혁명은 끊임없이 계속됐다... 두 강대국 사이의 제3차 세계 대전을 예상하면서 끝났다… 가장 다양한 조건과 이질적인 상황에서 우리는 같은 현상, 즉 전례 없는 규모의 노숙자(정치 문화 등 유대가 없는 상태)와 전례 없는 뿌리 없는 현상이 전개되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우리의 미래는 그 어느 때보다 예측 불가능하며… 다른 세기의 기준으로 판단하면 완전히 미친 것처럼 보이는 정치 세력에게 그렇게 많이 의존한 적이 없다. 그것은 마치 인류가 인간의 전능함을 믿는 사람들(대중을 조직하는 방법을 알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무력함이 그들의 삶의 주요 경험이 된 사람들로 분열된 것과 같았다. (ix)


1950년에 쓴 서문이 마치 오늘의 세계를 보는 것 같지 않나? 아렌트는 나치 독일이나 스탈린주의 러시아의 전체주의가 일탈이 아니라 권위주의 민주주의 파시즘의 정치에서 가장 안 좋은 요소만을 차용해서 가장 극악무도한 형태의 정부를 만들었다고 했다. 이런 요소를 잘 감시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전체주의는 발생할 수 있지 않을까? 곧바로 여기에 그런 요소들을 나열해서 독자의 상식을 높이고 싶지만 이 책을 몇 줄로 끝내고 싶지 않다. 앞으로 몇 번 더 이 책에 대한 감상문을 쓸 예정이어서 양해를 구한다.  


제1편 ‘반유대주의’에서는 우선 두 가지 질문을 해본다. 첫째 나치 독일은 왜 유대인을 죽였을까? 둘째 반유대주의 이념은 어떻게 생겼을까? 아렌트가 말하는 반유대주의(Antisemitism)는 우리가 알고 있는 반유대주의(Anti-Semitism)와 다르다. 영어 철자를 보면 하이픈이 없고 유대인도 소문자로 시작한다. 아렌트의 반유대주의는 유대인이나 유대교 등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19세기에 나타난 이념이다. 유대인이 없으면 세상이 좋아진다. 나치는 이것을 실행했다. 전례 없는 대량 학살의 원인에 대해 이런저런 추측이 자자했다. 아렌트는 사람들이 몇 가지 사실을 잘못 알고 있다고 했다. 


첫째, 외국인을 혐오하는 민족주의와 반유대주의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오히려 반유대주의는 민족주의가 약해지면서 기승을 부렸다. 진정한 민족주의는 나라에 사는 모든 사람을 존중하는 원칙이 있어서 인종차별을 하지 않는다. 두 번째, 유대인이 권력과 재력 때문에 수난을 당했다고 생각하지만 유대인이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때는 부가 문제되지 않았다. 그러나 권력을 잃고도 여전히 돈이 많았을 때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셋째, 유대인이 어쩌다 희생양이었다고 생각하지만 나치가 무작위로 유대인을 지목한 게 아니다. “시온의 장로들의 프로트콜(Protocols of the Elders of Zion)’과 같은 날조된 문서를 대다수 사람이 믿을 때 문서가 가짜라는 걸 증명하는 건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그보다 가짜 뉴스의 목적을 간파했어야 했다. 마지막으로 유대인은 항상 혐오의 대상이어서 유대인이 나치에게 당했다고 생각하지만, 유대인도 반유대주의를 역으로 이용했었다. 19세기 유럽의 민족 국가에서 유대인에게 시민권을 부여했을 때 많은 유대인이 학자, 언론, 정치, 전문직 등 그동안 가질 수 없는 직업에 종사하며 동화했지만 한쪽에서는 민족을 잃을 수 있다는 위기감에 반유대주의 정서를 이용해 공동체의 결속을 공고히 했다. 


앞서 말했듯이 반유대주의 이념의 출현은 19세기 유대인이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권리를 얻게 되면서 시작됐다. 그러나 특정 유대인은 이미 중세시대부터 영주들의 돈을 관리하며 특별 대우를 받았고, 17세기 18세기 절대 왕정에서 민족 국가가 나타나면서 로스차일드(Rothschild) 같은 유대인은 국가 간의 재무 거래를 담당하며 특권을 누렸다. 민족 국가는 국가를 대표하는 민족, 예를 들어 영국에 앵글로색슨 족과 그 외 민족이 특정 계급에 속해 사는 나라다. 그러나 유대인은 계급이 없었다. 재산으로 볼 때 중산층에 속했고 정치에 관심도 없었지만 전통적으로 국가의 은행 업무를 담당해서 사람들은 유대인을 국가와 연결해서 생각했다. 따라서 국가의 비리나 부패를 규탄할 때 반유대주의 노선이 대두됐고 특히 산업화가 되면서 삶이 힘들어진 숙련공이나 소상인 등 중하층 계급은 유대인에게 열린 직업의 자유가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더구나 전통적으로 고리대금업에 종사했던 유대인은 “노동력과 생산능력이 아니라 불운과 불행을 착취하는 자”로 여겼다.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에서 모두 반유대주의 정당이 탄생했다. 


지금까지 제1편 ‘반유대주의’ 중 제2장(Chapter 2)까지 요약해 봤다. 읽을 때는 “이런 일이 있었어?”라고 반복하며 쓸 말이 많은 것 같았는데 막상 쓰려니 어디에 중점을 둘 지 어려웠다. 그런데 자꾸 맴도는 구절이 있다. 아렌트는 마치 유대인이 정치에 참여하지 않아서 재앙을 예견하지 못했다는 것 같았다. 


그들 자신의 과거에 대한 무지나 오해는… 전례 없는 위험을… 과소평가한 데 부분적으로 책임이 있다. 정치적 능력과 판단력의 부족은 … 유대 역사의 본질 자체에 기인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2000년 동안 모든 정치적 행동을 피했다. 그 결과 유대 민족의 정치 역사는 다른 민족의 역사보다 훨씬 더 예측할 수 없는 우발적 요인에 의존하게 되었고, 유대인들은 이 역할에서 저 역할로 비틀거리며 아무 책임도 지지 않았다. (p.9)


물론 아렌트가 피해자를 비난하는 건 아닐 거다. 그러나 유럽 사회에서 수세기 동안 살면서 금융 사업에만 몰두하고 정치에는 무지했던 게 안타까웠던 것 같다. 그러나 유럽의 그 많은 사람이 차별하는데 어쩔 수 있었겠나? 길드에서 받아주지도 않고, 땅을 소유할 수도 없어서 먹고살기 위해 고리대금업을 했을 거고, 힘 있는 왕이나 귀족 옆에서 인정받으며 살만했을 거다. 어차피 일반인과 함께 살지도 않았으니 자기 할 일만 잘하고 살면 된다고 생각했을 거다. 한편 유럽 시민도 이해는 간다. 자기네는 힘들게 일해도 만져볼 수 없는 돈을 게토(ghetto)에 살았던 다른 민족이 누리고 있으니 샘이 날만 하다. 그렇다고 사람을 죽이나? 물론 단순하게 유대인의 부가 탐나서 학살로 이어진 게 아니지만, 유대인이 정치에 참여하지 않았던 대가가 너무 컸다. 


<참고문헌>

Arendt, H. (1951/2017). The origins of totalitarianism. Penguin Random House UK

https://youtu.be/uA-kbYXUpj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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