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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희 Aug 23. 2023

<<전체주의의 기원>>

소감 2: 선택받은 민족

유대인 하면 무엇이 떠오르나? 아인슈타인, 프로이트, 카프카 등 여러 분야에서 한 획을 그은 사람들이 생각난다. 유대인은 명석하다? 과학적 근거는 없지만 그런 생각이 든다. 요즈음은 또 어떤가? 오라클, 구글, 페이스북 등 첨단 기술 분야의 CEO도 유대계다. 2020년 미국기업연구소(American Enterprise Institute) 발표를 보면 유대인은 세계 인구 중 0.2%밖에 안 되지만 1901-2020까지 노벨상을 받은 사람이 22.4%고 그중 경제학으로 수상한 사람이 29명이나 됐다. 그래서 돈이 많나? 이스라엘 포브스에 따르면 2022년 전 세계의 유대계 억만장자가 267명인데 이는 억만장자의 약 10%를 차지한다고 했다. 확증 편향일 수 있겠지만 유대인이 왠지 그들이 말하는 "선택받은 민족" 같지 않나?.


19세기 유럽에서도 명석한 유대인을 특별히 우대했다. 법적으로 땅도 소유할 수 없고 길드에도 참여할 수 없던 유대인은 도시의 게토(Ghetto)에서 일찍이 무역과 금융업을 하며 살았다. 그러다 18세기 19세기 산업화와 도시화가 증가하면서 자금과 자본의 수요가 증가했고 유대인은 그동안 쌓은 노하우로 산업 인프라 국제 무역에 자금을 제공했다. 드디어 19세기 민족 국가에서 유대인에게 시민권을 주고 법적 제약을 완화시키는 “유대인 해방”을 선언했다. 그러자 국가에 살던 다수의 민족이 왠지 역차별을 받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가 주인인데 왜 세 들어 사는 저네들이 더 잘 나가? 나야 당연히 이 나라 전통과 문화와 피를 물려받은 민족이니까 권리를 누릴 자격이 있지만 유대인은 다르잖아. 아렌트(Arendt)는 경계가 모호했던 평등한 조건이 사회적 반유대주의를 심화시켰다고 주장했다. 


평등한 조건은 분명히 정의의 기본 요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인류의 가장 위대하고 가장 불확실한 모험에 속한다. 더 평등한 조건일수록 사람들 사이에 실제로 존재하는 차이점에 대한 설명이 적다. 따라서 개인과 집단은 더욱 불평등해진다. (p.69)


당시 사회가 유대인에게 주어진 평등의 조건은 두 가지였다. 부랑자(Pariah) 아니면 벼락부자(Parvenu). 어떻게 보면 유대인은 이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게토에 살며 유대 종교와 문화를 고수하면 부랑자로 차별을 받고, 주류 사회에 들어가려면 유대인의 정체성을 버려야 했다. 교육받은 “우수한” 유대인. 정부는 그들이 필요했고 사회는 그들만 인정했다. 아렌트는 벼락부자의 예로 영국에서 총리까지 지낸 벤자민 디스라엘리(Bejamin Disraeli)를 소개한다. 


19세기 영국엔 부유한 포르투갈계 유대인만 살았다. 다른 유대인은 이미 중세시대에 다 쫓아냈다. 이런 환경에서 디스라엘리는 오히려 유대인이라는 걸 드러내며 정치적 야망을 이뤘다. 유대인 복장과 머리를 하고 대중에게 외쳤다. “저는 선택받은 민족의 선택받은 사람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제가 어떻게 이 자리에 있겠습니까?” 디스라엘리는 운이 좋았다. 당시 영국은 자신이 특별하다고 믿으며 주어진 역할을 진지하게 수행할 사람이 필요했다. 그래서 대중의 존경도 받고 여왕의 친구도 됐다. 그러나 그는 특이한 이론을 폈다. "인종을 결정하는 건 피고, 피가 섞이지 않는 일류 귀족만이 자연적인 귀족이다". 소설도 썼다. 첫 번째 소설은 유대인이 엄격히 분리된 계급으로 유대 제국을 다스린다는 거였고, 두 번째 소설은 유대인의 자금이 왕실과 제국의 흥망성쇠를 좌우하고 최고의 외교로 세상을 다스린다는 내용이었다. 사람들은 디스라엘리의 성공이 유대인의 비밀조직 덕분이라고 의심했다. 디스사엘리 조차 이런 음모론을 믿었다. 최초 예수회는 유대인이었고, 유대인에 의해 러시아 외교가 조직되었고, 독일이 전적으로 유대인의 후원으로 발전하고 있고… 유대인이 공산당과 협력하는 것은 배은망덕한 크리스트교 세계를 파괴하려는 거다. 


디스라엘리는 부유한 집안의 자녀들이 사회주의자가 된 이유는 유대인이 수세기 동안 고통을 겪었기 때문에 복수를 위한 계획이라고 추측했지만 유대인 자녀들은 부모가 노동자 계급과 한 번도 분쟁하는 걸 보지 못해서 사회주의자가 될 수 있었다. 사실 독일은 프랑스나 오스트리아에 비해 지도자들이 적극적으로 “우수한” 유대인과 교류해서 일반 유대인이 차별을 받는다는 걸 알면서도 반항하지 않고 순응했다. 그러나 정부는 유대인 은행가에게만 특권을 주고 유대인 지식인들은 핍박했다. 아마도 부자 부모를 둔 유대인 지식인이 러드윅 뵈른(Ludwig Boerne)이나 칼 막스(Karl Marx)처럼 사회주의자가 돼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유대인은 부자면서 사회주의자야? 그럼 비밀리에 정치적 차이를 초월해서 세계를 제패하려는 것 아냐?


보다시피 디스라엘리의 이론은 유대인에게 도움이 되기는커녕 위험한 발상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유대인을 곱지 않게 보는 민족 국가에게 디스라엘리의 ‘인종’과 ‘비밀 사회’ 담론은 공포감마저 조장했다. 더욱이 유대인이 인종이라는 발상은 범죄에 대한 인식을 재정비했다. 예를 들어 프랑스에서는 유대인 범죄에 전보다 너그러워졌는데 그 이유가 유대인의 행동을 인종 탓으로 돌렸기 때문이다. 유대인은 태생이 ‘반역자’고 세계를 장악하려고 은밀한 음모를 꾸민다. 유대인은 이런 부정적인 유전인자가 있어서 고칠 수 없다. 


제3장 ‘유대인과 사회’를 읽으며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첫째, 지도자는 말을 조심해야 한다. 디스라엘리처럼 자신의 망상을 현실이라고 믿으면 나중에 애꿎은 사람이 죽을 수 있다. 둘째, 자랑은 시기를 부른다. 아이스킬로스(Aeschylus)가 그랬다. “부러워하지 않고 친구의 성공에 경의를 표할 수 있는 힘을 갖고 태어난 사람은 거의 없다”. 독일의 지식인도 그랬을 거다. “우수한” 유대인과 친구가 돼도 그들이 더 뛰어난 걸 시기했는지도 모른다. 아렌트는 동화한 유대인이 ‘선택을 받은 민족’이란 우월주의를 갖게 되었다고 했다. 조용히 있어도 유대인의 성공을 시기할 수 있는데 그런 마음을 나타냈다면 미움을 샀을 거다. 그렇다고 특정한 민족에 대해 선입견을 갖고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주입시키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서두에 유대인의 성취를 보며 감탄했는데 이런 긍정적인 선입견도 조심해야 한다. 까딱하다 그렇지 못한 민족을 쉽게 차별할 소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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