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명희 Jul 13. 2023

<<실낙원>> 도전

어떻게 시작할까?

A mind is its own place, and in itself

Can make a Heav'n of Hell, a Hell of Heav'n

What matter where, if I be still the same,

마음은 그 자체의 장소여서, 마음 스스로 지옥의 천국, 천국의 지옥을 만들 수 있다.

내가 여전히 똑같다면 장소가 무엇이 중요한가

(실낙원, 제1권, 254-256행)


위에 나온 말은 누가 했을까? 사탄. 천국에선 가장 똑똑한 천사 루시퍼 (Lucifer, 빛을 가진 자)가 하나님에게 덤볐다가 지옥으로 떨어져 사탄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상하다. 사탄이 철학자 같지 않나? 존 밀턴 (John Milton)은 어떤 의도로 사탄에게 철학자의 감성을 부여했을까?


혹시 <<실낙원(Paradise Lost)>>을 읽어봤나? 기독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아담과 이브가 금기된 열매를 먹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이야기는 들어봤을 거다. 바로 그 이야기를 존 밀턴(John Milton)은 무려 12권(book12)에 걸쳐 11,185줄에 달하는 서사시로 만들었다. 셰익스피어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시인이라고 들어서 몇 번 읽어보려 했지만 번번이 몇 페이이지를 넘기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어려워서 재미없었다. 왜 이렇게 많은 이름이 나올까? 하느님에게 반역한 천사의 이름, 그걸 묘사할 때 비교한 신화 속 인물, 호메로스나 셰익스피어가 쓴 글에 나오는 장면 등 배경 지식이 있어야 알아들을 수 있다. 그런데 독서 모임에서 읽자고 하여 하는 수 없이 읽었다.


2주 동안 6권까지 읽기로 했지만 1권부터 어려웠다. 영어 어휘와 구조를 안다고 이해할 수 있는 문장이 아니었다. 창세기 3장에 나온 이야기를 안다고 해서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 강의를 들어야 했다. 유튜브가 너무나 감사한 순간이었다. 세 명 교수의 강의를 들었다. 한 명은 인도 대학 교수 한 명은 미국 대학 교수 나머지 한 명은 영국 대학 교수였다. (아래 유튜브 링크 참고)


처음에 예일 대학 교수 강의를 들어봤다. 설명은 잘하는데 일부분만 다뤄서 나머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그런데 인도 대학 교수는 제1권을 완전히 한 줄 한 줄 읽어 내려가며 설명했다. 이거다. 처음엔 그녀의 강한 인도식 영어가 익숙하지 않아 몇 번 다시 들었지만 한 한 시간 듣고 나자 그녀의 악센트가 다정해졌다. 제1권을 설명하는데 무려 5시간 넘게 걸렸지만 서사시 규칙, 지옥 묘사, 사탄과 바알세불의 대화, 반역 천사들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나자 책에 흥미가 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1권밖에 강의하지 않았다. 다행히 예일대 교수보다 훨씬 많은 대목을 읽으며 설명하는 영국 교수 강의를 찾았다.  


일단 이 책을 이해하려면 서사시(Epic poem)가 뭔지 알아야 한다. 서사시?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같이 전설적인 인물이 모험을 하며 영웅적 행동을 한 이야기를 쓴 긴 시다. 주제는 명예, 용기, 운명, 선과 악의 본질과 같은 심오한 인간 경험이다. 형식은 특정 운율이나 리듬이 들어간 운문으로 구성되며 서사시적 관행이 있다. 뮤즈(예술을 담당하는 여신)를 호출하여 창조적 영감을 받고 이야기를 설명하는 내레이터가 있다. 이야기는 중요한 사건에서 시작한다. 이전 일은 회상한다. 내레이터는 도덕적 품격을 갖췄고 영웅은 목숨을 걸고 다른 사람을 구하거나 나라를 구한다. 저승 세계도 나오고 신이 회의하는 대목도 나온다. 무엇보다 서사적 직유법을 이용하여 신화나 다른 작품에서 나온 인물이나 사물을 비교하며 다양한 의미를 부여하고 도덕적 규준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서사시에 관한 기본 이해를 하고 나서 밀턴의 시를 읽으면 전통적 서사시와 다른 무운시(blank verse: 약강 오보 격을 거슬린 운문) 기법을 볼 수 있다. <<실낙원>>은 영시 중 처음으로 운을 맞추지 않는 설화시(narrative poem)다. 밀턴은 일찍이 호메로스나 베르길리우스보다 더 스케일이 큰 서사시를 써서 영국을 넘어 유럽에 길이남을 작품을 쓰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었다. 능력도 출중했다.  프랑스 스페인어 이태리어뿐만 아니라 라틴어 그리스어 히브리어까지 능통했다. 그런데 영국에 내전이 일어나자 <<아레오파지티카(Areopagitica)>>  같은 정치적 글을 쓰며 올리버 클롬웰의 청교도 혁명을 지지했고 찰스 1세를 참수하자 이를 지지하는 글도 썼다. 덕분에 콜롬웰 정권에서 10년간 외국어 장관직을 맡으며 외국으로 보내는 서신을 라틴어나 다른 언어로 작성하거나 정권을 위한 선전물을 제작하고 검열했다. 그러나 클롬웰이 사망하고, 찰스 2세가 왕으로 돌아오고, 시력을 잃은 밀턴은 1658년부터 1663년까지 딸에게 구술하여 실낙원을 완성했다.


이미 독서 모임에서 토론은 끝났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책을 읽고 있다. 강의에서 다룬 부분만 읽어서 나머지 부분을 마치 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거나 연기하듯이 큰 소리로 읽으면 재미있다. 내용은 여전히 어렵지만 강의를 듣고 읽으니 확실히 전보다 읽을만하다. 예일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면 필히 읽고 졸업해야 하는 책이란다. 이 책이 왜 그렇게 큰 권력을 가졌을까? 권력은 사람이 무언가를 신성시하고 숭배하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그럴만한 가치가 있어야 한다. 영어의 숭배 혹은 예배(worship)라는 단어는 가치 있는 것을 의미하는 고대 영어 단어에서 유래했다. 즉, 하나님은 마땅히 공경받을 만한 가치가 있어서 2000년 넘게 예배하는 거다. 권력이 있고 힘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밀턴의 <<실낙원>>도 오늘날까지 읽히고 인용되고 있으니 문학적 힘이 있다. 그렇다면 권력이란 전통이 만들어내는 걸까? 무수히 많은 질문이 찾아야 하는 어휘만큼 마음속에서 요동친다.


<참고자료>

https://youtu.be/TKDJbG0bR7U

https://youtu.be/H62G9yIN5Wk

https://youtu.be/-FO64Q_wtGs



작가의 이전글 나약한 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