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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희 Jun 30. 2023

나약한 나

관성처럼 신을 찾다. 

어느 날 줌으로 대화를 하고 있는데 화면에 입술 아래가 검게 보였다. 새끼손가락 손톱 만한 부위에 멍이 든 것처럼 색소가 침착했다. 언제 생겼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언젠가 이를 닦다 잘못하여 칫솔 머리로 입술 아래를 세게 부딪친 적이 있어서 멍이 들었나 싶었다. 그런데 두 달이 넘도록 없어지지 않았다.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흑색종에 대해 알게 되었다. 혹시 이건가? 입술 아래 생긴 건 점은 아닌데 색이 가무잡잡해서 왠지 의심이 갔다. 그리고 상상하기 시작했다. 


보통 암이 생기면 그 주변까지 크게 도려낸다고 들었는데 아래 입술에 커다란 구멍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하니 겁이 덜컥 났다. 남들이 내 얼굴을 보고 두려워할까? 말을 할 수 있을까? 수업을 계속할 수 있을까? 악성 종양이라면 전이도 빠르다는데, 내가 살 수 있을까? 훅 죽음의 공포가 밀려왔다. 언젠가 떠난다는 것도 알고 더 나이 들어 잠자듯이 죽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봤지만 피부암에 걸려 생을 마감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신에게 기도했다. "하나님, 솔직히 입술에 구멍 나는 게 두렵습니다. 멍이 계속 가시지 않아도 좋으니 암이 아니길 바랍니다." 역시 급하니까 신을 찾게 됐다. 그리고 퇴근하여 들어온 남편에게 걱정을 털어놓았다. "흑색종은 어디서 들었어? 아냐. 피부과에 가서 물어봐." 대학 병원 피부과에 약속이 잡혀 있었지만 걱정이 되어 미리 지인 피부과에 들렸다. 천식과 습진 때문에 장기 복욕한 약이 원인일 수 있다고 했다. 며칠 후 대학 병원에 갔다. 알레르기 내과 교수는 천식약은 색소 침착을 유발하지 않는다고 했다. 피부과 교수는 습진 치료를 위해 복용하는 약이 색소 침착을 가져올 수도 있지만 멍이 오래갈 수도 있다며 흑색종은 아니라고 했다. 


살았다.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그런데 살았다고 생각하니 다시 미용에 신경이 쓰였다. 멍이 빨리 가셔야 할 텐데... 그래서 색소를 좀 연하게 만들어준다는 약을 처방받아 사용했다. 저녁에 소량 잘 펴서 바르라는 약사의 말에 따라 바르고 잤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아무 반응이 없었다. 다음날 좀 더 바르고 그렇게 사흘간 바르고 나니 피부가 얇게 벗겨지고 전보다 더 붉은 느낌이 들었다. 약을 중단하고 설명서를 보니 너무 많이 바른 것 같았다. 그제야 유튜브에서 약을 바르는 영상을 찾아보니 면봉으로 색소 침착 부위에만 살짝 바르라고 했다. 그런데 나는 거의 약으로 마사지를 했으니...


다행히 며칠간 약을 바르지 않았더니 붉은 기는 사라졌다. 입술 아래라 다른 부위보다 눈에 띄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화장으로 가리면 전혀 보이지 않지만 밥을 먹고 입을 닦거나 손주에게 뽀뽀 세례를 하고 나면 입술 아래 얼룩이 보였다. 속상하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너무 신경 쓰지 말자. 나중에 연고 치료를 다시 한번 시도해 보면 된다. 그래도 안 되면 그냥 내버려 두자. 남들이 없는 걸 가졌으니 얘도 나의 개성이다. 자꾸 보면 정이 들지 않을까? "아무튼 하나님, 이번 경험을 통해 인생이 길지 않고 하루를 잘 살아야 한다는 걸 깨닫게 해 줘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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