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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희 Jun 29. 2023

능력주의 사회

어떻게 생각하나?

실력주의 혹은 능력주의에 바탕을 둔 시험제도로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에 취직하는 방식이 공정하다고 생각하나? 적어도 옛날처럼 왕이나 귀족이 상속받은 특권으로 모든 걸 차지하지 않고 개인의 재능과 능력에 따라 지위와 기회가 분배될 수 있으니 공정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거다. 우리는 모두 알게 모르게 계몽주의 시대에 장자크 루소나 볼테르 같은 사상가의 영향을 받았다. 물려받은 사회적 지위가 개인의 기회와 성공을 결정한다는 볼테르에게 동의했고, 이상적인 사회는 자원과 기회의 공정한 분배를 보장해야 한다는 루소의 말에 고개를 끄떡였다. 그래서 루소처럼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지만 똑똑한 사람에게 기회가 돌아갈 수 있는 능력주의를 환영했다. 그러나 300여 년이 지난 지금 과연 몇 명이나 이런 운이 따를까? 아직도 있을 수 있겠지만 통계적으로 이상치(outlier) 일 거다.


"능력주의(meritocracy)"라는 용어는 영국의 사회학자이자 정치가인 마이클 영(Michael Young)이 1958년 "능력주의의 부상(The Rise of the Meritocracy)"이라는 책에서 처음 사용했다고 한다. 책은 미래 사회에 대한 디스토피아적 비전을 제시했다. 개인의 위치는 표준화된 테스트로 측정된 지능과 능력에 따라 결정되어 점수가 높은 사람은 더 많은 특권과 혜택을 받는 반면 점수가 낮은 사람은 제한된 기회와 낮은 사회적 지위에 직면한다. 그리고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 사이에서 사회적 불평등과 환멸감이 커지면서 분열이 심화된다. 지능과 능력에만 의존하는 사회 위계질서는 다른 가치 있는 자질을 소홀히 하고 사회 분열과 불만을 낳는다고 주장했다. 어디서 본 듯한 현상 아닌가?


65년이 지난 지금 한국은 영이 말한 "능력주의(meritocracy)" 사회의 전형이 아닌가 싶다. 어디 한국뿐이겠는가? 미국이나 유럽의 많은 나라도 비슷한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경제적으로 더 가진 자가 앞서갈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걸 금세 알 수 있다. 넉넉한 집에서 태어난 아이는 정규 교육이 시작되기 전부터 두뇌의 발달을 촉진하는 건강한 음식을 먹으며 학습이 중요한 환경에서 자랄 거다. 실제로 하트 (Hart)와 리스리(Risley)는 전문직 가족, 노동계급 가족, 복지 가족의 세 가지 다른 사회경제적 그룹에서 부모와 자녀 사이의 언어 상호 작용을 관찰했는데 만 3세가 되면 전문직 가정의 아이들은 약 4,500만 단어, 노동계급 가정의 아이들은 약 2,600만 단어, 복지 가정의 아이들은 약 1,300만 단어를 듣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같은 언어 노출의 차이는 어휘 발달과 이후의 학업 성과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여겨졌다. 따라서 경제력에 따라 출발선이 다르다.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은 실력도 있고 노력을 많이 해서 그렇게 되었다고 굳게 믿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니 꼭 그렇지 만은 않다. 물론 그들이 노력하지 않았다는 게 아니다. 목표를 향해 열심히 정진했을 거다. 그러나 어느 정도 자산 있는 집에서 태어난 사람은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학습 분위기에 노출되고 비슷한 환경에 있는 사람과 네트워킹도 잘 되고 사회 참여 기회도 더 많은 것 같다. 비슷한 여건이라면 '운'도 한몫하는 것 같다. 나만 해도 그렇다. 나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고 똑똑한 친구들이 얼마나 많았나? 그런데 나는 운 좋게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 아마도 사회에서 어느 정도의 부와 힘을 갖고 있는 사람들, 티브이에 나오는 사람들, 잘 생각해 보면 모두 운이 좋았다. 이렇게 운이 좋은 사람은 재물에 탐을 내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게 잘 안 되는 것 같다. 어떻게 이 자리까지 왔는데... 라며 금전적 보상에 집중한다. 물론 실력 있는 사람이 전문적인 일을 하는 게 맞고 그에 따른 적절한 보상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실력주의의 허점은 개인의 성취가 오롯이 개인이 이룬 거라고 착각하거나 좋은 인성보다 좋은 성적을 중시하는 사회분위기라고 생각한다. 


2019년에 다시 능력주의를 비판하는 책이 나왔다. 예일 대학교 법대 교수 다니엘 마르코비트스(Daniel Markovits)는 "능력주의 함정(The Meritocracy Trap)"이란 책에서 능력주의는 교육적 성취에 대한 지나친 관심으로 소수 엘리트에게 부와 권력, 기회를 집중시키는 메커니즘으로 진화해서 사회적 이동성을 약화시키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또한, 능력주의 사회는 공동체 유대와 사회적 연대를 약화시키고, 일중독을 심화시킨다고 했다. 즉 사람을 이기적으로 만들고 고단하게 만든다는 거다. 이건 정말 피곤한 일이다. 해결책이 있나? 몇 가지 정책을 제안했다. 소외된 지역 사회에서 초등 및 중등 교육에 더 많은 지원과 자원을 제공하는 정책, 부유층에 대한 세금을 인상하고 자원을 재분배하는 정책, 사회 안전망 확대와 같은 조치. 이미 시행되고 있지만 더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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