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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희 Jun 20. 2023

동거 조건

프랑스에서는 나이 든 사람과 대학생의 동거가 종종 있는 일이라고 한다. 거기도 집값이 비싸다 보니 월세를 아끼려는 대학생 중에 노인과 동거하는 경우가 있단다. 프랑스어 선생님이 보여준 동영상에는 한 여학생이 대학교 근처에 큰 집을 소유한 80대 할아버지와 동거하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부인을 잃고 매우 우울했는데 학생과 함께 지내면서 삶의 활력을 되찾았다고 했다. 한 달에 35유로. 월세는 거의 무료나 마찬가지였다. 조건은 있다. 아침저녁을 함께 만들어 먹고 산책도 하고 카드놀이도 하며 시간을 보내는 거다. 둘은 진짜 할아버지와 손녀 같았다. 학생의 부모도 할아버지와 친하고 할아버지의 진짜 손녀와도 친구라고 했다. 프랑스어 선생님은 한국에서도 이런 사례가 있는지 혹은 이런 조건으로 살 의향이 있는지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라고 했다.


한 여학생이 말했다. 아무리 나이 들었어도 할아버지와 여학생이 동거하는 건 위험한 것 같단다. 또, 할머니와의 동거는 다른 이유로 불편할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아주 오래전에 프랑스에 교환학생으로 가서 80대 할머니와 동거한 적이 있는데 처음에는 나이 든 사람이라  프랑스어를 배우기가 좋을 거라고 생각했단다. 그러나 할머니가 청력이 좋지 않아 계속 큰 소리로 말하고 대답을 잘 알아듣지 못해 오해하기도 했다. 라면을 끓여 먹으면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봤고 할머니가 만든 프랑스 음식을 계속 칭찬하며 먹어야 하는 부담을 느꼈다고 한다. 결국 10개월 계약으로 들어갔다가 4개월 만에 나오겠다고 했더니 엄청 화를 냈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현재 대학에 다닌다는 여학생은 아무리 임대료가 저렴해도 나이 든 사람과 동거할 생각은 없다고 했다. 나이 든 사람뿐만 아니라 젊은 사람과도 함께 살기 힘들 것 같단다. 일단 자신은 조용히 집에서 공부하는 스타일인데 누가 있으면 그럴 수 없어서 불편할 거고 일정한 시간에 자고 일어나야 하는데 상대방이 그렇지 않다면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단다. 또, 청소하고 식사하는 문제 등 골치 아픈 일이 많을 것 같아 앞으로 프랑스에 간다면 혼자 쓰는 기숙사에 묶을 거라고 했다.


나도 그렇다. 아이들이 다 독립한 후 일 년에 한두 번 집에 와서 며칠 지내다 갈 뿐인데 처음에는 좋은데 나중에는 힘들다.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모두 대가족을 이루고 살았는지 모르겠다. 아마 불편해도 맞춰가며 살았을 거다. 또, 그렇게 사는 게 익숙해서 떨어지면 오히려 불안했을 거다. 그러나 이제는 남편과 단 둘이만 있는 게 익숙해서 그런지 다른 사람이 오면 부담스럽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건 아직 사회생활을 하고 적당히 사람을 만나고 있기 때문에 사람이 그립지 않은 거다. 만약 정말 아무도 없다면 프랑스 할아버지처럼 대학생에게 저렴하게 임대를 줘서라도 누구와 시간을 보내고 싶을지도 모른다.


우리 그룹에서 유일한 남학생은 프랑스와 달리 한국에선 나이 든 사람과 친구가 될 수 없어서 동거하는 게 힘들 거라고 했다. "나랑 친구 아니에요?" 지난 3개월 동안 같은 그룹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기 때문에 장난스럽게 물었다.  "프랑스어로 말하면 친구란 생각이 들어요. 그러나 한국어로 말하면 어려운 것 같아요." 한국어로 말하면 사회에서 기대되는 모든 규칙이 적용되어 편하게 말할 수 없다고 했다. 나이 든 사람에게 존댓말을 사용하는 순간 상하 관계가 굳어져 동거는 불편해질 거란다. 


그러나 나이 든 한국인도 서서히 젊은이에게 전통적 예의를 기대하지 않는다. 상호존중이면 족하다. 언젠가 티브이에서 교수와 학생이 반말을 하는 수업도 있다고 들었는데, 나는 학생에게 늘 존댓말을 사용한다. 경험상 부부 사이에도 존댓말을 사용하면 아무리 화가 나도 말을 절제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반말이 편한 사람도 있을 테니 적어도 만 18세가 넘는 사람끼린 공평한 방법으로 말하면 어떨까? 둘 다 존대를 하든지 둘 다 반말을 쓰던지. 그러면 나이 든 사람과 젊은 사람이 친구도 되고 동거도 가능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말하는 방법도 중요하지만 내용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존댓말을 사용해도 상대방을 불편하게 만드는 내용은 삼가야 할 거고 반말이어도 서로가 배려하는 마음으로 대화한다면 나이에 상관없이 친해질 수도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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