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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희 Nov 28. 2023

정직은 하인의 덕목인가?

그럼 나는 하인이다.

내가 어릴 때 어른들은 티브이가 바보상자라고 했다. 확실히 무슨 말인지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티브이를 많이 보면 다른 사람의 말만 믿고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는 바보가 된다는 걸 거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코미디언 덕분에 즐겁게 웃을 수 있었고 열심히 사는 사람의 이야기를 보며 감동도 받았고 역사적 사실이나 강연도 들을 수 있어서 유익한 점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방송을 하는 목적에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왜 저런 걸 보여주지? 무슨 메시지가 담겨 있지? 저 사람이 저렇게 이야기하는 의도는 뭘까? 특히 건강에 관련된 정보를 제공하고 나면 꼭 그에 해당하는 약품을 홈쇼핑에서 파는 걸 보며 옛날에 '약장수'가 원숭이에게 묘기를 부리게 해서 사람의 이목을 끌었다면 21세기에는 전문가를 앞세워 사람의 이목을 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티브이에서 방영하는 모든 프로는 유튜브나 인스타에 올린 동영상만큼 사람들의 마음을 현혹시켜서 무언가를 이루려는 목적이 있는 거다.


물론 모든 목적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건강 상식도 알아두면 좋고, 특정 분야의 권위자가 많은 문헌조사와 연구를 통해 발표한 결과는 신뢰하는 편이고, 다수가 찬성하는 사회 운동이 이해가 갔을 때는 동의하는 편이다. 그러나 때로 모두가 좋다고 하니까 꼭 그렇지 않지만 그렇다고 말할 때도 있다. 아마도 이런 현상은 생존 본능일 거다. 과거 우리 조상이 위험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타인과 조화롭게 결속하고 그룹에 반대하지 않아야 배척당하거나 추방당하지 않았던 경험의 유전자가 내게도 있어서 그럴 거다. 그래서 웬만하면 다수가 괜찮다는 책이나 주장에 동의하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도 그럴 수 있겠다고 이해하는 편이다. 그런데 요즈음 다양한 매체에서 많은 설명 없이 고정관념을 깬다는 명목으로 엉뚱한 말을 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우연히 교육방송을 통해 듣게 된 강연은 "악을 행하더라도 형벌에 가까워서는 안 된다."라는 장자의 말을 인용해 우리가 사회의 메시지에 길들여져서는 안 된다는 걸 가르치려 했다. 사회에서 '선‘이라고 하는 것에 한 번쯤 의문을 가져야 한다. 왜 그게 좋다는 거지? 그것이 과연 내게도 좋은 건가? 맞는 말이다. 그런데 강연자의 말에서 확 거부감이 드는 말이 들렸다.


“정직은 하인의 덕목입니다.” 뭐라? 이어진 설명은 방향이 묘연했다. 부하직원이 겉과 속이 달라서 회사 공금을 횡령하면 화사가 운영이 안 되니 정직해야 한다. 그러면 사장은 정직하지 않아도 되나? 그런 말은 없었다. 갑자기 말을 바꿨다. “선악과 좋음과 나쁨은 구별되어야 한다. 아버지는 남자 친구와 사귀는 걸 악이라고 했지만 딸은 남자 친구를 만나는 게 행복하다. 그러면 해야 한다. 국가의 선악과 좋음과 나쁨은 달라요. 좋음과 나쁨은 내 기준이다. 딸의 기준이다... 국가 악은 객관적 일지 모르지만 아버지의 기준이다. 그래서 니체가 책을 쓴 것 아닙니까? 선악을 넘어서라고. 선악을 넘어서야지 내가 좋아하는 좋음과 나쁨이 발견된다. "라고 했다. 취지는 알겠다. 비판 없이 권력이 만든 기준을 따르지 말고 자신이 진정 원하는 걸 알고 행하는 게 좋은 거다. 그러나 니체도 그렇고 “정직이 하인의 덕목”이란 말이 영 껄끄럽다. 우선 니체의 철학은 애매모호하다. 따라서 어떤 부분을 가져다가 확장 해석하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니체가 의도했든 안 했든 “선악을 넘어서야 한다”는 말을 듣고 나치는 강하고 우수한 아리아인 나라를 만들기 위해 나약하고 열등한 유대인을 죽이는 게 나치의 기준에선 '좋음"이어서 괜찮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나처럼 단순한 사람은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 계속됐다. "악을 행하되 형벌에 가까워서는 안 된다.... 원하는 걸 해라. 대신 나한테 들키지 마라." 아버지 몰래 데이트하는 건 그렇다 쳐도 회사 몰래 공금을 횡령하고, 소비자 몰래 철근을 누락하고, 나라 몰래 군사 기밀을 누출하고, 국민 몰래 인권을 탄압하고... 그렇게 자신의 이익만을 챙긴다면 우리가 어떻게 함께 살 수 있을까? "정직은 하인의 덕목"이 아니라 인간의 도리다. 정직하지 못한 일을 하면 가슴이 뜨끔해야 한다. 내 "좋음"을 위해 다른 사람에게 누를 끼쳤다면 니체가 말하는 "자신의 가치에 따라 자신을 스스로 창조"한 게 아니라 그냥 나쁜 짓을 한 거다. 나의 가치를 찾는 것이 지켜야 할 덕목을 위반하라는 말은 아닐 거다. 딸이 사귀는 사람을 반대하는 부모가 있다면 딸은 부모를 설득시키는 게 순서다. 몰래 하는 게 아니라 정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호소해야 한다. 그래도 반대한다면 자신이 "좋은" 길을 택하고 자신의 결정을 책임지면 된다. 부모는 아마도 딸이 정직하지 못했을 때 딸의 결정을 더 신뢰할 수 없을 거다. 딸이 모든 걸 솔직히 말하면 설사 딸의 결정이 부모와 달라서 서운한 마음이 들어도 스스로 자신의 길을 찾은 딸을 응원할 거다.  


자식은 자식 나름대로 옳다고 생각하는 삶을 사는 게 맞다. 그렇다고 해서 "사회에서 종교에서 국가에서 체제에서 자본주의에서 선이라고 하는 걸 행하고... 길들여져서" 사는 게 나쁜 건가?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성적 받고, 종교에서 강조하는 '이웃을 돕고', 자신이 갖고 있는 재능을 잘 활용해서 경제활동하고, 자신과 뜻이 맞는 사람 만나서 아이 낳아 키우고, 시집 장가보내고, 그렇게 보수적으로 사는 게 길들여진 '노예의 삶'이라면 나는 길들여진 사람이다.  사실 젊었을 때는 비판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보지 못했다. 그저 부모에게 칭찬을 받기 위해 노력했었다. 그러나 부모의 일상을 관찰하며 배우자만큼은 내 기준에 합당한 사람을 찾아야 한다고 다짐했다. 나는 무엇이 중요한가? 나와 평생을 함께 할 사람은 어떤 사람이어야 하나? 답은 간단했다. 부지런하고 성실하고 나를 무척 좋아해 주는 사람. 나는 첫눈에 반하는 그런 로맨스보다 내가 존경할만한 덕목을 갖춘 사람을 꿈꿨던 것 같다. 그래서 남편을 만난 지 42년이 지난 오늘도 여전히 남편이 좋다. 남편은 부지런하고 성실하다. 만약 남편이 몰래 성실하지 못한 행동을 했다면 어떤 기분일지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그러나 남편은 아마도 나보다 더 자신의 행동에 대한 실망으로 괴로워할 거다. "정직이(은) 하인의 덕목"이라면 남편과 나는 둘 다 하인이어서 잘 맞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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