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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희 Dec 28. 2023

독감 조심하세요!

난, 참 어리석다. 

64년을 살아오면서 이번처럼 감기를 심하게 앓은 적이 없었다. 조카 결혼식을 가기 전부터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미열이 있는 것 같아 타이레놀을 먹었다. 그래서 결혼식에 참석했던 4시간 동안 특별히 아프지 않았다. 모든 일정이 끝나고 친척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차에 올라타는 순간 몸이 무거웠다. 남편이 차의 히터를 켜 줬지만 으슬으슬 추워서 이가 부딪쳤다. 집에 도착했을 때는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온몸이 쑤셨다. 곧바로 타이레놀을 한 알을 먹고 침대에 누웠다. 배가 아파서 잠에서 깼다. 명치끝이 아프고 속이 매스꺼워서 토를 시도했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배가 아픈 건 좋아졌지만 열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가래까지 나와서 숨이 찼다. 입맛이 없었지만 먹어야 기운이 날 것 같아서 남편에게 삼계탕과 닭죽을 사다 달라고 했다. 아침도 들지 않아 많이 먹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국물만 조금 마시고 죽도 몇 숟갈 밖에 뜨지 못했다. 가장 힘든 건 열감이었다. 타이레놀을 먹을 때는 열이 조금 떨어져 견딜만하다가도 약 기운이 떨어지면 머리가 빠개지는 것처럼 아팠다. 그러다 화장실에 가고 싶어서 일어났는데 머리가 어지러우면서 걷기가 힘들었다. 남편을 불러서 화장실에 가는 걸 도와달라고 했다. 그리고 잠시 후 화장실에서 일어났는데 그 후 기억이 없다.


남편에 따르면 화장실에서 일어나며 기절해서 약 20초 정도 숨을 쉬지 않고 맥박이 잡히지 않았다고 했다. 다행히 남편이 옆에 있어서 바닥에 부딪치지는 않았다. 남편이 입으로 인공호흡을 하며 숨이 돌아왔다. 곧바로 119를 불러서 남편이 근무하는 병원으로 이송됐다. 구급대원이 화장실에 들어와 다친 곳이 없는지 확인하고 맥박과 혈압을 재고 상황을 묻는 동안 눈을 뜰 수 없었다. 남편과 구급대원들은 눈을 뜨고 있으라고 했지만 눈을 뜨면 어지러워서 눈을 뜰 수 없었다. 


코로나 검사, 독감 검사, 엑스레이, 뇌 MRI 등을 찍었는데 다른 건 이상이 없고 독감 검사가 양성으로 나왔다. 그러나 갑자기 실신한 원인을 찾기 위해 며칠 동안 심장 병동에 입원하여 심장 원격 측정 모니터링을 하며 심장 CT, 심장초음파 등 다른 검사도 받아보기로 했다. 독감에 걸렸기 때문에 격리되어 타미풀루도 들기 시작했다. 약을 먹으니 증상이 호전되는 것 같았지만 코로나에 걸렸을 때보다 더 밥맛이 없고 어지러웠다. 게다가 백혈구 수가 낮게 나와 면역제 주사를 맞았는데 그걸 맞고 처음 병원에 실려왔을 때처럼 열감이 있고 온몸이 아팠다. 


다음날 의사에게 증상을 호소했더니 면역제를 맞았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증상이라고 했다. 다행히 모든 심혈관에 이상이 없다는 소견이 나왔다. 그러나 10여 년 전부터 몇 번 실신을 경험했는데 지하철에서 갑자가 정신을 잃거나 화장실에서 배뇨나 배변을 할 때 일어났다. 당시 미주신경성 실신일 가능성이 높다는 진단을 받고 전조 증상이 있으면 누우라고 했다. 그런데 이번에도 열이 많이 난 상태에서 화장실에서 배변을 보고 난 후 뇌로 가는 혈류가 일시적으로 중단되어 의식을 잃었을 거라고 했다.  


철이 없었을 때는 체육 시간에 기절하거나 코피를 흘리는 학생을 보면 나도 기절해서 운동을 하지 않고 쉬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막상 주기적으로 기절을 하고 보니 기절하기 전 증상이 두렵고 기분 나쁘다. 게다가 이번 독감은 유독 회복도 느려서 퇴원하고 일주일이 지나서야 겨우 입맛이 돌아왔다. 지난 일주일 동안 학교 일만 마치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티브이 앞에 누워있었다. 퇴원하자마자 학생들 성적을 입력해야 해서 채점을 하고 엑셀파일에 성적을 입력하고 누워서 잠만 잤다. 책도 읽기 싫고, 프랑스어 공부도 하기 싫고, 재미있는 연속극도 없고, 매일 쓰던 일기도 2주 동안 멈췄다. 초밥이 먹고 싶어서 초밥 맛집에 갔지만 몇 개 먹지 못하고 싸왔다. 


아무것도 하고 싶은 게 없고 우울한 느낌이 밀려왔다. 아프면 이렇게 금방 약해질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그러니 연말에 혼자서 아픈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까? 걱정해 주는 가족이 가까이 있어도 캐럴을 듣고 있으니 옛날 어릴 때 생각이 나서 눈물이 나는데... 다행히 몸이 조금씩 회복되니 에너지도 생기고 그동안 미뤄놨던 일을 하고 싶어졌다. 일단 아프기 전에 쓰지 못한 독후감을 완성했다. 빨리 끝내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책상에 앉아 있을 수 있었지만 무리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처음에는 2시간 밖에 집중할 수 없었다. 아프기 전에 내용을 더 자세히 정리할걸. 그냥 책을 다시 읽었다. 두 번 읽으니 내용이 더 확실해졌다. 


이번에도 남편 말을 들었으면 이렇게 아프지 않았을 거다. 11월에 독감 주사를 맞으라고 했는데 차일피일 미루다가 맞지 않았다. 코로나를 앓았지만 그전에 독감 예방 접종을 잘한 덕분인지 감기나 독감에 걸리지 않았었다. 그래서 방심했다. 스스로 건강관리를 잘해야 자신에게도 좋고 주위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건데... 이렇게 호되게 아파야 정신을 차리니 나도 참 어리석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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