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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희 Feb 10. 2024

치과 치료

신뢰가 중요하다

어릴 때 이를 잘 딱지 않아서 어금니가 많이 썩었었다. 그렇게 한 번 썩은 이는 몇 년에 한 번씩 조금 더 썩어서 치료를 요구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가기 전에 치과 치료를 받았다. 미국은 치과가 비싸서 한국에서 치료받는 게 좋다는 말을 들어서 부모님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지금 남편이 된 남자 친구에게 부탁했다. 마침 남편 절친의 형이 서울대학교 치대를 나와서 개업한 지 2년 정도 됐다며 함께 가자고 했다. 서울 변두리에 있던 치과는 크지 않았지만 깔끔했다. 남편 친구의 형님은 잔뜩 떨고 있는 내게 많이 아프지 않을 거라고 안심시켰다. 그리고 남편에게 내 잇몸에 마취약을 주사하라고 했다. 남편은 친구 형님의 지시대로 조심스럽게 잇몸에 주사를 놓았다. 그 후 남편 친구의 형님이 오랫동안 꼼꼼하게 어금니를 치료해 줬다. 한 시간 정도 기다렸다가 식사를 하라고 해서 점심이 늦어졌다. 그러나 그때까지 마취가 아직 풀리지 않아 한쪽으로 침을 질질 흘리며 자장면을 먹었던 게 생각난다. 지금 생각하면 남편은 그런 내가 뭐가 그렇게 좋았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 일로 난 남편을 확실히 신뢰하게 됐다.


그렇게 치료를 받았지만 전처럼 이를 꼼꼼하게 잘 닦지도 않고 치과 정기 검진도 받지 않았다. 그래도 이는 7년간 아무 이상이 없었다. 그러다 예전에 치료받았던 부위가 조금 아팠다. 그때 첫 아이를 계획하고 있었고 아이를 가지면 이가 안 좋아진다고 하여 서둘러 미국 치과에 갔다. 역시 이전에 치료받은 부위에 다시 충치가 생겼다. "언제 어디서 치료받은 건가요?" "한국에서 7년 전에 받았어요." "7년이나 됐어요? 한국 치과 기술이 아주 좋은 것 같군요." 비록 다시 충치가 생겨서 아팠지만 한국 치과 의사가 기술이 좋다는 말을 들으니 왠지 뿌듯했다. 그 후 매년 스케일링도 받고 치과 검진을 정기적으로 받았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남편이 근무하는 병원에서 정기적으로 이를 관리했다. 그러나 남편이 병원을 옮기고 더 이상 대학병원 치과는 갈 수 없었다. 새로 옮긴 병원 치과는 양악수술만 하고 일반치과만을 위한 환자는 받지 않았다.


남편 친구의 형님이 운영하던 치과는 집에서 너무 멀어 딸의 친구 엄마가 운영하는 치과에 다니기 시작했다. K엄마도 꼼꼼하고 친절했다. 그러나 40이 넘어 미국 대학원에 진학하여 그곳 치과로 옮겨갔다. 뭐든 좀 굼떠서 설탕 듬뿍 넣은 우유 커피를 마시며 밤을 세야 하는 날이 많았다. 결국 이 하나가 많이 상해서 신경치료를 받고 금니를 박았다. 6년 후 한국으로 돌아와 다시 K엄마를 찾아갔다. 집에서 좀 멀기는 했지만 전철을 타면 갈만 했다. 그렇게 일 년에 한 번씩 치과 검진을 받다가 코로나 기간 후반 2년간 치과에 가지 않았다. 그리고 올 초 사랑니에 충원한 아말감이 조금 떨어져 나간 것 같아 K엄마 치과에 예약했다. 그러나 막상 병원에 찾아가니 K엄마가 없었다. 분명히 전화를 했을 때 K엄마의 성함을 대며 예약을 했는데, K엄마가 병원을 그만뒀다는 얘기는 없었다. 전화를 받은 접수원은 예전에 있던 직원 중 한 명이었다. 이런 사실을 알기도 전에 가자마자 구강 엑스레이를 찍어서 일단 상태를 진단받기로 했다. 접수 직원은 새로 온 원장이 K엄마와 친구라며 잘 봐줄 거라고 했다.  


K엄마의 친구라는 의사에게 스케일링을 받았다.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그리고 나이 든 남자 치과 의사가 들어왔다. 목소리는 친절했지만 사랑니를 보기 위해 그랬는지 말도 없이 얼굴을 확 돌려서 깜짝 놀랐다. "사랑니 아말감이 떨어져 나갔군요. 사랑니는 그냥 빼는 게 가장 깔끔하죠. 그러면 앞으로 충치 걱정 안 해도 되고..." "아픈가요?" "매복된 게 아니라 똑바로 나서 간단합니다." "그럼 해 주세요." 마취 주사를 놓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가 금방 빠졌다. 그런데 마취를 하며 의사는 "지혈 비용으로 10만 원입니다"라고 했다. 한 5년 전에 K엄마에게 아들이 매복된 사랑니를 뺐을 때 4만 원 줬던 것 같은데 시간이 많이 흘러서 가격이 올랐다고 생각했다. 스케일링까지 139,100원을 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인터넷에 검색했더니 비용이 평균보다 비싼 것 같았다. "할 수 없지... 이제 2주 후면 실밥 뽑고 앞으로 올 일이 없을 거야."  


그러나 실밥을 뽑은 여의사는 1주일 후 잇몸 치료를 하러 오라고 했다. 전에 스케일링을 하고 사랑니를 뽑을 때 그런 말은 없었다. 의사는 여직원이 다음 약속 날짜를 정하는 걸 보고 진료실로 돌아갔다. 접수 직원에게 잇몸 치료를 받는 이유를 물어봤다. 스케일링을 했지만 지난 2년 동안 치석이 많이 쌓여서 마취를 하고 잇몸 안에 있는 치석을 제거해야 한다고 했다. 왠지 찜찜했다. 일단 K엄마가 은퇴를 했다고 했지만 나중에 알아보니 다른 병원으로 이직한 거였다. 그러나 친구라는 의사도 접수 직원도 그 사실을 말해주지 않았다. 남편과 상의하고 다시 연락하겠다고 했다. 직원은 한사코 꼭 해야 하는 치료라고 설득했다. 다시 전화를 해서 약속을 취소해 달라고 했다. 한번 신용이 떨어지니 모든 게 의심스러웠다. 그리고 그다음 날부터 사랑니 옆 어금니가 조금씩 불편해졌다.


사랑니를 빼고 거의 한 달 만에 남편이 근무하는 대학병원 내에 있는 치과에 갔다. 원래는 양악수술 환자만 받고 일반치과는 특수한 경우에만 보는데 사랑니 옆 어금니가 점점 더 아파져서 남편에게 말했더니 당장 예약을 잡아줬다. 그렇게 병원에 가서 장시간 치료를 받고 "앓던 이가 빠지는 기분"이란 게 정말 무슨 뜻하는지 알 것 같았다. 앞으로 세 번 더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한 번 치료만드로도 살 것 같았다. 어금니가 썩고 고름이 찼다고 했다. 그럼 사랑니를 뽑았던 병원에서도 엑스레이로 그와 같은 문제가 있다는 걸 알았을 텐데 왜 잇몸 치료만 한다고 했을까? 이래서 사람들이 병원에 아는 사람이 있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나? 물론 추측만으로 사람을 의심하기 싫지만 K엄마가 떠난 치과 병원은 믿음이 안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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