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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희 Feb 06. 2024

독서 추억

추리소설은 여전히 재밌다.

1970년대에는 티브이보다 라디오 드라마가 더 재미있었다. 내용은 주로 남편은 바람피우고 아내는 고생하는 이야기가 많았는데 이광수의 <<무정>> 같은 소설을 읽어주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영어책도 오디오북을 좋아한다. 특히 드라마처럼 미스터리 로맨스나 추리소설이 재미있다. 이런 장르의 소설을 좋아하는 건 아마도 어릴 때 처음 읽은 소설이 코난 도일(Conan Doyle)의 <<바스커빌 가의 사냥개(The Hound of the Baskervilles)>>여서 그럴 거다. 물론 그전에 콩쥐팥쥐 흥부전 심청전 같은 전래동화를 읽었지만 샬록 홈즈 시리즈는 처음으로 삽화가 거의 없는 책이었다. 생각해 보면 독서에 취미가 생긴 건 다 코난 도일 덕분이다.


그렇게 시작한 독서 여정은 아버지가 방문판매원에게 할부로 구입한 한국문학전집과 세계문학전집에 힘입어 이어졌다. 엄마 말에 의하면 책을 판매하러 온 사람은 등록금을 벌기 위해 학교를 휴학한 대학생이었는데, 아버지의 장황한 인생관 경제관 등을 3시간 이상 묵묵히 들어서, 인내심이 가상해 책을 사줬단다. 막상 책을 받고 보니 한국문학전집은 재미있었는데 세계문학전집은 그렇지 않았다. 두껍고 딱딱한 검은 표지에 금박으로 쓴 제목이 멋있었지만, 책이 크고 두꺼워서 들고 다니며 읽기가 불편했다. 유명한 작가들의 책이라 어떻게든 읽어보려 했지만 내용이 너무 길고 번역된 언어가 친근하지 않아서 자꾸 눈이 감겼다.


다시 책에 재미를 붙이게 된 건 미국에 살게 되고 나서다. 미국에 처음 가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들이 카페에 앉아 책을 읽는 모습이었다. 그때 든 바람은 "나도 저렇게 늙고 싶다." 그래서 영어책을 읽기 시작했다. 처음 읽은 책은 로라 잉걸스 와일더 (Laura Ingalls Wilder) <<초원의 집(Little House on the Prairie)>>. 고등학교 다닐 때 한국 티브이에서 방영했는데 지리 선생님이 필히 보라고 추천했던 미국 드라마였다. 몇 번 보지 못했지만 영상이 기억나서 책으로 읽는 게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티브이보다 책이 좋은 건 마을 모습이나 사람들이 입은 옷 먹는 음식 등 대사 없이 카메라에 슬쩍 비친 배경이 모두 글로 묘사됐다는 점이다. 되돌아보니 내 영어 수준에 맞는 쉬운 책을 많이 읽어서 자연스럽게 어휘와 구조도 습득하고 자신감도 생긴 것 같다.


미국인들이 나이 들어서도 책을 많이 읽는 건 도서실의 역할이 크다고 생각한다. 미국은 어느 동네나 도서실이 하나씩 있는데 도서실을 보면 미국이 잘 사는 나라라는 걸 알 수 있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동네 도서실은 넓고 쾌적하고 어린이 동화부터 노인용 큰 글자 책까지 많은 책을 구비하고 있다. 또, 일 년에 한 번씩 도서실에서 책 세일을 할 때  일 이 달러 밖에 안 하는 세계명작이 수두룩했다.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학교 도서실 동네 도서실에서 책과 친해져서 나이 들어서도 독서가 자연스럽다. 꼭 서점에 가지 않아도 슈퍼나 편의점에도 책이 있다. 계산대 가까이  캔디나 청량음료 외에 서점보다 값싼 페이퍼백 책이 진열되어 있어서 음료를 사거나 장을 보는 사람이 부담 없이 책을 살 수 있었다.


당시 슈퍼에서 산 책 중에 아이들과 함께 읽은 구스범스(Goosebumps)가 있다. 영어로 구스범스가 '소름' 혹은 '닭살'이니 내용이 호러 추리소설이다. 그러나 어린이용이어서 적당히 무서웠다. 그렇게 단계별로 책을 읽어나가며 제인 오스틴(Jane Austen)과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를 만났고 그 후 빅토리아 시대 작가의 책을 많이 읽으며 영국에서 부농으로 사는 상상을 했다. 그러나 좋아하는 장르의 책만 읽다 보니 아무래도 세상을 이해하는 폭이 좁았던 것 같다. 그래서 독서모임에 참여했다. 독서모임이 좋은 건 우선 나 혼자 절대 읽지 않을 법한 다양한 책을 접하는 거다. 또한 정해진 시간까지 의무적으로 읽어야 해서 계속 책을 읽게 되고, 다른 사람과 의견을 교환하며 책 내용을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혼자 읽어도 재미있는 책도 많다. 특히 요즈음 유튜브에 올라온 무료 추리소설 오디오북이 그렇다. 다만 주의할 점이 있다. 작년에 제목이 끌리는 오디오 책이 있어서 들었는데, 위기 부분에서 끝났다. 뒤가 너무 궁금해서 결국 아마존에서 전자책을 사서 읽었다. 상술인가? 궁금한 게 풀려서 시원했지만 앞으로 그런 책은 듣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이번에 들은 책은 전체가 녹음되어 있었다.  프리다 맥페이든(Freida Mc Fadden)이 쓴 “가정부(The Housemaid)”와 “가정부의 비밀(The housemaid’s secret)." 둘 다 반전이 끝내준다. 물론 이런 종류의 소설을 많이 읽다 보니 결론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지만 마치 어릴 때 동화의 결말을 알아도 몇 번이고 다시 읽는 것처럼 지겹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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