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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희 Feb 02. 2024

엄마와 아들

<<바보들의 결탁>>에 나타난 모자의 양가감점

When a true genius appears in the world, you may know him by this sign, that the dunces are all in confederacy against him. -Jonathan Swift – 진정한 천재가 세상에 나타나면 바보들이 모두 결탁해서 그에게 맞선다. 이런 징후로 그가 천재임을 알 수 있다. -조나단 스위프트-


존 케네디 툴(John Kennedy Toole)의 <<바보들의 결탁(A Confederacy of Dunces)>>를 읽으면 '웃프다'는 느낌이 들 거다. 웃기는 부분은 사람들의 대화나 좌충우돌하는 모습이고 슬픈 부분은 거의 모든 등장인물이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으로 자신의 운명을 바꿀만한 힘이 없다는 거다. 주인공 이그네이시우스와 그의 어머니 아일린도 그런 주변적 사람이다. 그러나 그들의 관계는 낯설지 않다. 엄마는 아들을 위해 헌신하고 아들은 엄마가 만만하다. 그렇다고 아들이 엄마를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다. 다만 서로가 원하는 게 다를 뿐이다. 엄마는 아들이 남들처럼 평범하게 사회 규범을 지키며 살았으면 좋겠고 아들은 중세시대에 꽂혀서 엄마가 자기를 내버려 뒀으면 좋겠다. 엄마는 아들이 성실하게 직장에 다녔으면 좋겠고 아들은 중세 철학자 보에티우스처럼 작가가 되고 싶다. 이렇게 기대하는 게 달라서 서로에 대한 감정도 긍정과 부정이 공존하는 양가감정이다. 이 둘은 어떻게 이 문제를 풀어갈까?


1960년대 미국 뉴올리언스. 어머니(아일린, Irene)와 아들(이그네이시우스, Ignatius)은 작고 낡은 집에 산다. 어머니는 20년 전에 과부가 됐고 술을 좋아한다. 30세 아들은 정크 푸드와 영화 보는 걸 좋아한다. 아이린은 관절염으로 다리가 아프지만 아들이 도넛을 먹고 싶다고 하자 아침 일찍 가게에 다녀온다. 아들은 커피가 맛없다고 불평한다. 아들은 운전도 못해서 늘 엄마 차 뒷좌석에 앉아 천천히 운전하라고 잔소리한다. 엄마는 아들이 할머니 보험금으로 8년이나 대학을 다녀서 석사학위까지 받았는데 티브이만 본다고 한탄한다. 아들은 10대가 나오는 프로그램을 보며 요즈음 아이들이 방탕하다고 비난한다. “신학과 기하학(theology and geometry)”이 필요다고 한다.


왜 그런 말을 할까? 이그네이시우스는 중세사를 전공했고 보에티우스(Boethius)의 <<철학의 위안 (The Consolation of Philosophy)>>을 신봉한다. "이 책은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도록 가르친다. 이는 불의한 사회에서 정의로운 사람의 곤경을 묘사한다” (p.160). 그가 보기에 중세시대에는 보에티우스의 작품이 인기가 있어서 '질서'가 있고 '평온'했다. 그러나 중세 이후 포르투나(Fortuna)의 수레바퀴가 인류에게 “등을 돌려” 사회가 타락했다. 따라서 도덕적 삶의 규범을 상징하는 신학과, 질서의 형태를 상징하는 기하학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그네이시우스도 언젠가 보에티우스처럼 책을 낼 생각을 하며 자신의 철학과 경험을 간간이 피력한다. 그러나 그런 도덕적 사고는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게으르고 엄마에게 함부로 대하고 일이 안 풀리면 운명의 여신 탓만 한다.


한편 엄마는 성인이 된 아들을 아이처럼 대하는 것 같다. 소설은 엄마를 기다리던 아들이 경찰 검문을 받는데서 시작한다. 경찰은 초록색 사냥모자를 쓴 거구의 이그네이시우스를 수상히 여기고 운전면허증을 요구한다. 뒤늦게 나타난 엄마는 경찰에게 아들을 괴롭히지 말라고 따지고 위기를 모면한다. 그러나 아들은 평소에 엄마가 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아 단어 선택을 잘못하고 신문도 제대로 못 읽는다고 핀잔을 준다. 엄마는 친정이 가난해서 학교에 갈 수 없었다고 한다. 아들은 수십 번도 더 들은 이야기를 멈추라고 한다. 모자는 이렇게 사소한 일로 자주 다툰다. 그러나 엄마는 아들이 어릴 때 귀엽고 영특해서 모든 수녀가 칭찬했고 엄마에게 사랑한다고 했단다. 그런 추억 때문인지 엄마는 늘 아들이 하자는 대로 한다. 목욕탕에 하루 종일 들어가 있고, 방문도 안 열어주고, 엄마에게 이것저것 먹을 걸 요구하고, 돌아가신 아버지 연금으로 연명하지만, 버스를 타면 토를 하고 무언가 억지로 시키면 쓰러져서 일을 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그네이시우스가 꼭 돈을 벌지 않으면 안 되는 사건이 터진다. 아일린이 음주운전을 하다 건물을 파손하여 1020달러를 배상해야 한다. 엄마는 집을 파는 것 말고 달리 방법이 없다고 한다. 아들은 절대로 집은 팔 수 없다고 한다. 하는 수 없이 엄마가 건네준 신문의 구인란을 보며 회사가 원하는 조건(“말쑥하고 부지런하고 책임 있고 조용한 타입”)이 전혀 자신과 맞지 않지만 리비 팬츠(Levy Pants)에 사무직으로 취직한다. 그러나 일은 하지 않고 공장 노동자들을 선동해서 관리자를 끌어내려하다가 해고당한다. 그 후 거리에서 핫도그를 팔게 된다. 아일린은 아들이 창피하다. 동네 사람들이 수군거릴까 봐 두렵다. 그러나 이그네이시우스는 좋아하는 핫도그도 먹고, 포르노 사진을 파는 조지에게 핫도그 수레를 맡기고 영화를 보러 갈 수 있어서 좋다.


여기까지만 보면 고학력 백수 아들을 데리고 사는 엄마만 불쌍해 보이겠지만 아들도 나름 힘든 게 많다. 이그네이시우스는 엄마가 체면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걸 알기 때문에 핫도그를 팔게 된 사실을 어렵게 고백한다. 엄마는 곧바로 절친인 산타에게 전화를 한다. “걔가 핫도그 장사를 한데.” “핫도그 장사? 길거리에서?””길거리에서, 백수처럼.””맞아 백수지. 아니 그보다 더해. 가끔 신문에서 경찰 공지를 보니까 모두 부랑자야.””정말 끔찍하지 않아!”(p. 171). 긴 샤워를 마치고 나온 아들은 엄마의 통화 소리가 들린다. “… 할머니가 남긴 보험금 동전 한 닢까지 탈탈 털어 대학에 보냈는데. 정말 끔찍해. 그 돈이 모두 하수구로 흘러갔어…” 남에게 아들 흉을 볼 수밖에 없는 엄마도 딱하고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며 트림이 나오는 이그네이시우스도 안 됐다. 때로 우리는 의도치 않게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  


아들이 참는 건 엄마의 비난만이 아니다. 엄마는 가끔 다 큰 아들을 때리기도 한다. 그러나 아들은 화내지 않는다. 어느 날 리비 팬츠 사장이 이그네이시우스 집에 찾아온다. 사장은 누군가 자신의 서명을 날조해서 편지를 보내는 바람에 소송을 당했다. 아일린은 곧바로 “무엇이든 잘못됐다면 이그네이시우스가 했어요. 걔는 가는 곳마다 말썽을 일으켜요”라고 한다 (p.366). 이내 엄마는 사장이 보는 앞에서 아들을 가방으로 때린다. 사장이 말린다. 전에도 아일린은 아들이 해적 복장을 입고 밖으로 나가려 하자 뺨을 때린 적이 있다. 아들은 "맙소사! 정신이 어떻게 된 거 아니에요? 지금 당장 제게서 떨어지세요" (p.307)라고 하며 혀를 쑥 내밀어 메롱하고 밖으로 났갔다. 이것을 보면 아들은 체구만 큰 아이 같다. 그래서 그런지 엄마가 볼링을 치러 가는 문제로 티격태격한 후 아들에게 볼 뽀뽀를 요구하자 아들은 순수이 엄마에게 “가벼운 키스(buss)”를 해준다. 아마도 이래서 엄마가 아들을 끼고 살며 정신병원에 보내야 한다는 친구의 말을 오랫동안 듣지 않았을 거다.


그러나 결국 엄마와 아들은 우연찮은 사건으로 분리된다. 독자는 분명히 둘 다 잘된 일이라고 생각할 거다. 가족마다 사정이 다를 테니 같이 사는 것이 좋은지 아닌지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자녀와 부모 사이엔 분명한 경계는 있어야 한다. 진부한 얘기지만 자식이 내 꿈을 대신 이뤄줄 수 없고 부모가 자식 삶을 대신 살 수 없다. 아일린은 어릴 때 공부를 못한 게 한이 되어 넉넉하지 못한 형편인데도 아들을 대학원에 보낸 게 아닐까? 아일린은 프랭클린 루스벨트(Franklin Roosevelt) 대통령이 어머니에게 잘하는 것 같아 그에게 4번이나 투표했었다. 그걸 보면 아일린이 정말 원한 건 돈 걱정하지 않고 자상하게 대해주는 아들이었다. 사람은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독립적이어야 한다. 다만 여력이 되고 상대를 통제하려는 이기적인 목적으로 돕는 게 아니라면 서로 돕고 사는 게 가장 바람직할 거다.


<여담>

이 책은 엄마와 아들의 정서적 관계 외에 토론할 거리가 많다. 모자와 연결되는 다양한 등장인물을 통해 흑인 차별, 동성애 문제, 부부 갈등, 자유의 의미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개인적으로 술집에서 일했던 흑인 포터 존스의 말이 재미있었고 리비 팬츠 사장 부부의 결말이 우습고 시원했다. 이렇게 두뇌를 즐겁게 해주는 책을 쓴 작가가 책을 출판하지 못해 우울증을 앓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니… 이그네이시우스라면 그런 선택을 했을까? 아마도 "바꿀 수 없는 건 받아들이고"계속 살아갔을 거다. 그런데 229쪽에 이그네이시우스가 자신의 죽음을 상상하는 대목을 보면 “(엄마는) 붉어진 눈에서 눈물이 끓어올라 슬픔으로 실성한다…”라고 쓰여 있다. 툴도 자신의 어머니가 분명 이렇게 슬퍼할 거라는 걸 짐작했을 텐데. 아마도 마음의 병이 컸던 모양이다. 그래도 어머니 덕분에 툴의 유작이 사장되지 않고 11년 만에 출판되어 얼마나 다행인가! 일찍 떠난 아들이 작품으로 승화하여 오래 살길 바랬던 어머니의 염원이 느껴진다.


책 제목이 어떻게 번역되었는지 인터넷에 찾아보니 한국에서는 약 13년 전에 많이 읽었었나 보다.  원래 미국 남부 작가들이 쓴 소설에는 표준문법이 아닌 대화문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처음 영어 공부할 때는 그런 게 언어 습득에 방해가 될까 염려되어 잘 읽지 않았다. 그러나 이 책은 주인공도 기괴하고 내용도 기발해서 뉴올리언스 사투리를 발음 나는 대로 쓴 대화문이 읽을 만하다. 오히려 읽으면 읽을수록 정이 든다고 해야 할까? 혹시 이 책을 원서로 들을 수 있을 만큼 영어가 익숙한 사람이라면 유튜브에서 무료로 들을 수 있는 오디오책을 추천한다. (아래 링크 참고) 원어민이 읽어주는 뉴올리언스 사투리는 눈으로 읽을 때보다 훨씬 매력적이다.


<참고자료>

Toole, J. K. (1980). A Confederacy of Dunces. New York: Grove Press

https://youtu.be/iQudlUHN7hU?si=2ryrvX4yuoyflO6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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