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서머싯 몸의 <<비>>
남편이 PPT에 노래 한 곡을 삽입하고 싶다고 하여 남편이 고른 곡을 편집하여 PPT에 넣어줬다. 노래를 들으니 뜬금없이 눈물이 났다. 가사 때문일까? 아니면 허스키한 로드 스튜어트의 목소리가 4시간 수업이 끝날 무렵 쉬고 갈라진 내 목소리 같이 늙어서 그럴까? <<항해(Sailing)>>. 아마 50~60대라면 제목을 몰라도 멜로디를 들으면 금방 기억이 날 거다. 이 노래는 원래 1972년 써더랜드 브라더즈(Sutherland Brothers)가 부른 곡이지만 1975년 로드 스튜어트가 히트를 시킨 곡이다. 인터넷에 나와 있듯이 가사를 들어보면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와 함께 있고 싶어서 대서양을 건넌다는 내용 같지만 실은 “인류가 절대자와 함께 자유와 충만함을 향해 나아가는 삶의 영적 여정에 대한 이야기”이라고 한다.
항해가 영적 삶의 여정으로 비유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니 윌리엄 섬머싯 몸(William Somerset Maugham)의 <<비(Rain)>>라는 단편이 생각난다. 1921년 처음 출간되었을 제목은 <<미스 톰슨(Miss Thompson)>>이었다. 그녀는 중요한 인물이지만 이야기 초반부에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배에 타고 있는 두 부부가 있다. 한 커플은 의사 맥파일(MacPhail) 씨 부부고, 다른 커플은 선교사 데이비슨(Davidson) 씨 부부다. 이들 부부는 놀음하고 술 마시고 흡연하는 사람들을 싫어한다는 공통점으로 가까워졌다. 맥파일 씨는 태평양의 사모아제도에 처음 왔고, 선교사 부부는 이곳에서 벌써 8년째 선교활동을 하고 있다. 배가 항구에 정박하자 라바라바(Lavalava)를 입은 원주민이 보인다. 데이비슨 씨 부인은 주요 부위만 가린 라바라바가 "매우 음란한 의상”이어서 그녀의 남편은 “그런 옷을 입으면 도덕적으로 행동할 수 없으니 법으로 금지해야 한다”라고 했단다. 그러나 맥파일은 기후에 맞는 옷이라고 말한다. 드릴의 소음처럼 높고 단조로운 목소리를 가진 선교사 부인은 자신들이 선교하는 지역에선 라바라바를 입지 않고 치마와 바지를 입는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어떻게 그랬을까? 데이비슨은 의료 선교를 하며 폭풍우가 몰아치는 날에도 도움이 필요한 곳에 언제든지 달려갔다. 만류하는 아내에게 하느님을 믿고 나약한 모습을 보이지 말아야 원주민에게 신을 믿으라고 말할 수 있다고 했다. 그렇게 용기 있는 모습을 보여줘서 원주민의 신뢰를 얻은 것 같다. “간통하고 거짓말하고 도둑질하는 것뿐만 아니라 몸을 드러내고 춤추고 교회에 오지 않는 것도 죄로 만들었다.” 죄를 깨닫게 하는 것은 간단했다. 벌금을 제정했다. 지불을 거부하면, 수입원인 코프라를 팔 수 없었다. 함께 낚시하여 얻는 물고기도 받을 수 없었다. 그건 굶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강압적으로 모든 일을 진행하여 그들의 방침을 따르지 않던 덴마크 상인까지 마을에서 내쫓을 수 있었다. 데이비슨 부부는 그들의 가혹한 행위가 하느님의 뜻이라고 굳게 믿었다. 소심한 맥파일은 전쟁터에서 두려움에 떨며 수술했던 기억이 떠올라 데이비슨의 용기에 감탄하자 데이비슨은 맥파일이 “신을 믿는다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한다.
선원 한 명이 유행성 홍역을 진단받아 두 부부는 각각의 목적지로 갈 수 없게 되어 파고파고에서 적어도 10일간 머물러야 했다. 그곳은 태평양에서 일 년 강수량이 가장 많고 이들이 도착했을 때는 우기였다. 그래서 제목이 <비>로 바뀌었나? 알아보니 '비'는 기독교에서 물로 세례를 하여 영적 탄생을 상징하는데, 문학에서도 같은 의미란다. 아무튼 파고파고에는 호텔이 없어서 두 부부는 혼혈인 상인이 임대하는 방을 구해 2층에 짐을 푼다. 여기서 톰슨 양이 처음 등장한다. 맥파일은 톰슨이 방값을 흥정하는 걸 보며 당차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배에서 2등석에 타고 있었고 숙소에서도 아래층에 머물게 된다. 데이비슨 부부가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동안 맥파일 부부는 카드놀이를 하고, 아래층 톰슨 방에서는 축음기 소리와 남자들의 목소리가 왁자지껄하다.
맥파일은 한없이 내리는 비가 신경에 거슬리고, 책을 읽고 해군 병원에 다녀와도 무료하다. 선교사는 하루에 여러 가지 활동을 나눠서 해야 한다고 했다. 공부할 시간과 운동할 시간을 정하고 비가 오든 날씨가 좋든 매일 같은 활동을 반복한다고 했다. 이렇게 철저하게 자기 관리를 하며 원주민을 강압적으로 전도하는 데이비슨이 톰슨의 정체를 알게 됐다. 감히 자기가 묵는 숙소에서 매춘을 하다니! 톰슨을 설득하지만 씨알도 안 먹힌다. 극단의 조치를 취한다. 그녀가 샌프란시스코로 돌아가 3년 형을 살도록 총독을 독촉한다. 동시에 톰슨이 죄에서 벗어나 구원받아야 한다며 매일 그녀를 찾아가 기도한다. 그러나 톰슨이 떠나기 전 날 데이비슨은 바닷가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타살일까, 자살인가? 자살인 것 같다. “목이 귀에서 귀까지 베어졌고, 오른손에는 여전히 그 일을 저지른 면도날이 있었다.” 그러나 인터넷에는 톰슨이 죽였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데이비슨은 톰슨을 구원한다는 명목으로 늦은 밤까지 혼자서 그녀를 만났다. 사망하기 삼 일 전부터 데이비슨의 기도 소리는 끊이지 않았고 톰슨의 거만했던 태도도 확 바뀌어 맥파일 부인도 놀랐다고 했다. 그러나 데이비슨 부인이 남편의 사체를 확인하고 집에 돌아오니 톰슨은 전처럼 다시 축음기를 크게 틀고 남성들과 떠들고 있다. 데이비슨 부인을 보자 입안의 침을 모아 뱉었다. 부인은 얼굴이 붉어져 2층으로 뛰어올라간다. 맥파일이 톰슨에게 따지자 그녀는 증오에 찬 얼굴로 외친다. "너희 남자들! 너희 더럽고 더러운 돼지들! 너희들은 다 똑같아, 너희들 다. 돼지들! 돼지들!"
톰슨이 저렇게 치를 떠는 걸로 봐서 데이비슨이 톰슨을 범했는지도 모르겠다. 맥파일은 데이비슨이 톰슨과 독대를 한 다음날 “데이비슨의 눈이 황홀함으로 빛났다 (Davidson’s eyes shone with ecstasy)”고 했고, 데이비슨이 꿈에서 네브래스카의 산은 봤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 산이 여성의 가슴을 연상케 했다고 기억했다. 이 사건이 있기 전까지 데이비슨은 성경의 말씀 중 특정 부분에 충실한 삶을 살며 원주민에게도 같은 원칙을 적용했을 거다. 그래서 “썩은 나무는 베어 불 속에 던져야 한다”라고 했고 “즉시 행동해야 한다”라고 했었다. 이제 자신이 간통을 저질렀으니 그는 즉시 자신의 말을 실천한 것 같다. 그러나 그는 하느님이 보기에 좋은 일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스도의 사랑, 연민, 겸손에 대한 가르침은 등한시하고 성경을 극단적이고 잘못 해석하여 원주민에게 강요했다. 원주민이 라바라바를 입고 춤을 추는 문화를 파괴하고 열등하다고 여기며 문명화하는 것이 그의 의무라고 믿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이비슨이 인간적으로 불쌍하다. 매일 부인과 성경공부를 하고 기도하는 것은 좋지만 부인과 즐거운 시간을 가졌을까? 음악도 듣고 춤도 추고 사랑도 나누면서 성경 말씀을 전했어도 기독교를 전파할 수 있었을 거다. 좀 더 시간은 걸리겠지만, 벌금을 내거나 굶어 죽는 게 두려워서 믿는 게 아니라 예수의 가르침이 좋아서 교회에 나오는 사람이 있었을 거다. 데이비슨 부부가 아이도 낳고 원주민과 어울려 살아가면서 예수의 사랑을 실천했다면 데이비슨 부부도 행복하고 원주민도 예수의 가르침을 느낄 수 있었을 거다. 아무리 좋은 결과도 강요와 폭력으로 얻는 건 옳지 않다. 그러나 기독교의 역사 속에서 구원을 명목으로 폭력과 강요를 한 사람은 많다. 절대자에게 순종하는 삶은 강요된 게 아니라 우리가 매일 평범한 삶 속에서 주어진 일을 하며 선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데이비슨이 독선 대신 관용을 실천하는 삶을 살았다면 데이비슨과 단 둘이 있어야 할 일도 없었을 거고, 선교활동도 계속할 수 있었을 거다.
<참고 자료>
https://mmccl.blogspot.com/2016/04/s-rain-1921.html
https://en.wikipedia.org/wiki/Sailing_(Sutherland_Brothers_s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