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하면 생기는 일

by 명희

일할 때는 정년퇴직을 기다렸는데 막상 퇴직을 하고 나니 정기적으로 출근하지 않는 게 생각보다 힘들다. 그렇다고 다시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는 일을 시작하고 싶지 않다. 직장에 다니며 한 달에 두세 번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게 힘들어서 은퇴하면 더 자주 글을 쓸 거라 다짐했었다. 공식적으로 2월 말에 은퇴했지만 수업이 끝난 작년 12월 중순 이후 시간은 많았다. 갑자기 엄마가 돌아가셨다. 처음 경험하는 충격이었다. 새해 들어 한 편의 글도 쓰지 않았다. 엄마가 떠나기 전에 썼던 단편 소설은 다시 읽어보니 이상했다. 노트북을 열어 글쓰기 대신 오디오 북을 듣거나 영화를 봤다. 계획은 생각 속에 머물며 행동으로 옮길 수 없는 핑계만 찾았다.


마음도 몸도 힘드니까 쉬어. 그동안 일하느라 맘 편히 놀지 못했으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어도 돼.
맞아. 근데 아무것도 안 하니까 쓸쓸해. 글을 안 쓰니까 뭔가 찜찜해.
그래? 그럼 써.
근데 내 글은 뭐랄까… 아무리 나만 읽는 글이라도 다른 사람도 읽을 수 있는 곳에 올리는데 좀 단순하고 표현력도 없고 상상력도 없는 것 같아. 좋은 작품을 읽으면 읽을수록 내 글은 그냥 수다 같아.
아유, 글 잘 쓰는 사람과 비교하면 어떡해? 당연히 너는 아직 초짜지. 그나저나 넌 왜 글을 쓰는데?
글을 쓰면 생각이 정리되고 마음이 안정돼. 나중에 우리 아이들과 손주들이 내 글을 읽고 좋은 추억이 됐으면 좋겠어. 나를 모르는 사람도 내 글을 읽고 미소 지을 수 있으면 좋겠어. 혹시 외계인이 지구에 와서 지구인의 생각을 표본 조사할 때 내 글도 채택됐으면 좋겠어.
그럼 고민하지 말고 그냥 써. 다만 직장에 다녔던 것처럼 같은 시간에 매일 조금씩 쓰면 어떨까? 내가 보면 너는 한꺼번에 하는 게 문제인 것 같아.
아는데 잘 고쳐지지 않아. 한 번 앉아서 글을 쓰기 시작하면 계속 앉아 있게 돼.
그런 식으로 작업을 하면 오래 못하지. 생각해 봐. 일단 어떤 일이든 너무 힘들었던 경험은 두뇌가 기억해서 다음에는 하고 싶지 않게 돼. 게다가 네 나이에 그렇게 오래 앉아 있으면 허리가 어떻게 되겠니?
그러게. 그래서 운동을 다녀. 그런데 운동 다녀오면 너무 배고프고 힘들어서 밥 먹고 낮잠을 자. 어떤 땐 2시간 넘게 자서 밤잠을 설치지.
집에 있으면 자기 통제를 더 잘해야 해.
내 말이. 게다가 요새는 집중이 잘 안 돼. 아이들이 올린 인스타그램 보다가 다른 사람이 올린 영상을 2시간이나 본 적이 있어. 남은 인생을 이렇게 허튼 일에 소비하며 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급 우울했어.
정신 차려. 머리로만 생각하지 말고 움직여. 사람은 행동해야 해.
응. 그래서 시간표를 짰어. 오전에는 책 읽고, 외국어 공부하고 오후에는 헬스장에 가서 운동하고 외국어 공부하고 오디오 북 듣고. 참, 운동 가기 전에 30분 글 쓰고.
글쓰기는 시간을 정하는 것보다 양을 정하면 어떨까? 하루에 A4용지 반 장.

이렇게 스스로 다짐을 했지만 이 글을 쓰기 위해 2시간 넘게 앉아 있어서 나머지 스케줄이 다 밀렸다. 어떡하지? 걱정하지 말자. 그냥 하면 되는 거다. 엄마가 없으니 이제 내가 집안의 어른이다. 내가 우리 아이들을 위해 잘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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