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독립

10회

by 명희

앤드류가 자신이 꿈꾸던 배우자를 찾은 것처럼 영숙도 만수와 처음 사귈 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영숙의 하루 일과를 다 들어주고 영숙이 좋아하는 스테이크를 사주고 영숙의 생일은 말할 것도 없고 영숙과 처음 만난 날까지 기억해서 선물과 저녁 식사를 잊지 않는 자상한 남자친구였다. 결혼해서도 변함이 없었다. 그레이스와 앤드류가 자랄 때는 만수가 말이 없다는 게 오히려 장점이었다. 집을 사는 문제부터 아이들 교육까지 영숙이 결정하면 만수는 승낙했다.


여보, 교회 권사님이 부동산을 하는데 49평 아파트가 2억 7천에 나왔다고 해서 갔다 왔어요. 괜찮더라고요. 당신도 저녁에 한 번 가 볼래요?


그래요.


어땠어요?


좋아요.


그럼 당신 병원에서 마련해 준 아파트 전세금을 새집을 사는데 1년만 써도 되는지 물어볼 수 있을까요?


좋아요.


여보, 아이들이 아무래도 미국에서 학교를 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레이스만 외국인 학교에 보낼 수 없고 앤드류까지 외국인 학교에 보내면 나중에 대학에 보낼 때 경제적으로 더 여유가 없을 것 같아요. 그러니 우리 아이들이 대학에 진학할 때까지 3년간 떨어져 지내요. 그동안 저도 박사학위 받을 게요.


그래요.


돌이켜보니 만수의 답은 늘 단답형이었다. 그러니 요즈음 들어 만수가 영숙과 대화하지 않는 게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해외여행도 마찬가지다. 영숙은 방학 때마다 한 나라를 정해 혼자 여행을 즐겼다. 만수는 시간이 나면 여행보다 골프가 좋았다. 그래서 여태까지 영숙과 만수는 각자 좋아하는 걸 하며 둘이 시간을 보낼 때는 티브이를 보거나 맛있는 식사만 하면 족했다. 그러나 혼자서 여행하는 것보다 패키지여행이 편하다는 걸 안 뒤에 영숙은 패키지여행을 혼자 하는 게 쓸쓸했다.


여보, 이번 여름에 우리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에 가는 패키지여행 가요.


여름에 하와이 학회 가기로 했잖아.


하와이 갔다 와서 가면 되죠.


병원을 그렇게 오래 비울 수 없어.


그럼 겨울에 갈 수 있어요?


이제 멀리 여행 가는 건 힘든 것 같아.


만수는 여전히 병원에서 환자가 가장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주말에도 환자 회진을 돌며 식구보다 환자와 보내는 시간이 길었다. 그래서 영숙도 환자가 되었을 때 만수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았다. 병원은 그런 이유로 은퇴 나이가 지난 만수를 놓아주지 않았다. 여태까지 영숙도 학교 일로 바빠서 병원에서 저녁을 해결하고 들어오는 만수가 고마웠다. 그러나 이제 정년을 한 학기만 남겨 놓고 앞으로 집에서 지낼 일이 걱정이 됐다. 그레이스의 시부모처럼 오손도손한 관계를 만수에게 기대하면 실망만 커질 거다. 위니가 그랬듯이 영숙도 중얼거린다.


아 괜찮아, 나빠진 건 없어. 변화도 없고.


로피(Laufey)의 “I wish you love (나는 당신이 사랑하기를 바란다)”를 들으며 생각한다.


경제적으로 독립한 게 전부가 아니었어. 정신적인 독립을 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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