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노자 프로블럼>을 읽고 든 생각
17세기 철학자 바뤼흐 스피노자(Baruch, Spinoza)와 20세기 나치 인종 이론가 알프레드 로젠버그(Alfred Rosenberg)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스탠퍼드 대학교 명예교수 어빈 디 얄롬 (Irvin D. Yalom)은 바로 이 두 사람을 주인공으로 <<스피노자 프로블럼(The Spinoza Problem)>>을 썼다. 실존했던 인물을 소설 주인공으로 쓰다니... 어떤 내용인지 궁금했다. 서문에서 저자는 홀란드(Holland) 라인스버그(Rijnsburg)에 있는 스피노자 박물관을 방문하고 소설을 쓰게 됐다고 했다.
어째서 로젠버그는 스피노자의 책을 불사르지 않았을까? 로젠버그는 나치 통치 기간 외무장관을 지내고 나치의 공식 문화 정책 및 감시기관을 만들어 많은 책을 소각했다. 그러나 스피노자의 책은 “스피노자 문제를 탐구하는 데 매우 중요한 초기 작품이 포함되어 있다”는 이유로 보존해서 1946년에 독일의 소금 광산에서 발견됐고, 같은 해 로젠버그는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교수형을 받고 처형됐다.
실존 정신의학자 얄롬 교수는 스피노자와 로젠버그의 어린 시절의 경험, 개인적 신념, 불안, 고립, 절망과 같은 인간 경험이 그들의 삶의 목표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 보여준다. 스피노자의 개인사를 뒷받침하는 편지는 없다. 따라서 호적 등본에 나온 간단한 신상, 스피노자의 책(에티카, 신학-정치학 논문, 데카르트 철학의 원리 등)을 바탕으로 스피노자를 만들었다. 한편 로젠버그는 자서전을 비롯하여 많은 기록이 남아서 실제 인물에 더 가깝게 썼다고 확신했다. 그래서 그런지 소설을 읽는 게 아니라 전기를 읽는다고 착각했다.
첫 장은 스피노자의 이야기다. 23살 스피노자는 암스테르담에서 동생과 함께 상점을 운영한다. 막 가게 문을 닫으려고 하는데 그보다 어린 청년 두 명이 찾아온다. 모르는 사람이다. 한 청년이 말한다.
“프랑코는 신앙을 잃었어요. 그는 모든 것을 의심해요. 모든 종교적 회개, 기도, 심지어 신의 존재까지도요. 그는 항상 두려워해요. 그는 잠을 자지 않아요. 그는 자살에 대해 이야기해요.”
스피노자는 랍비를 찾아가라고 하지만 청년은 집주인이 랍비보다 스피노자에게 상담하라고 조언했단다. 프랑코는 일 년 전 포르투갈에서 아버지의 화형 장면을 목격하고 이렇게 됐다. 당시 유럽은 가톨릭과 개신교 국가 간의 싸움으로 시작한 30년 전쟁(1618~1648)이 끝나고 여전히 종교 갈등이 심했다. 특히 포르투갈 종교재판소의 주요 표적은 유대교에서 천주교로 개종한 새로운 기독교신도로 비밀리에 유대교 의식을 지키는 게 발각되면 처형됐다. 스피노자는 프랑코에게 어떤 말을 해줄까? 프랑코는 스피노자의 말을 듣고 눈이 커진다. 독자는 스피노자의 생각을 좀 더 알고 싶지만 기다려야 한다.
두 번째 장은 1930년 에스토니아가 배경이다. 교장 선생님과 담임 선생님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16세 로젠버그를 바라본다. 로젠버그는 학생들 앞에서 독일인의 “순수한 인종을 유지”하고 열등한 인종과 섞이면 안 된다는 취지의 연설을 했다. 특히 유대인이 독일어를 가르치거나 교장이 될 수 없다는 말까지 했다. 로젠버그가 아리아 인종의 우월성과 유대인 혐오 사상을 갖게 된 건 체임벌린(Chamberlain) 이 쓴 허구 “19세기의 기초(Foundations of the Nineteenth Century)”라는 서적 때문이다. 책은 아리아 인종이 모든 제국에서 문명을 창조했고 열등한 민족과 섞일 때만 무너졌다는 그럴듯한 가짜 뉴스를 담고 있다. 그런데 평소 책을 잘 읽지 않던 로젠버그가 이 책에 완전히 꽂힌 거다.
어떻게든 로젠버그의 마음을 돌려볼 생각으로 선생님은 로젠버그에게 존경하는 인물에 대해 묻는다. 독일인의 우수성을 세상에 알린 괴테라고, 하자 선생님은 괴테의 자선전을 읽으라고 한다. 거기서 로젠버그는 괴테가 스피노자를 많이 언급한 것에 놀란다. 괴테는 "에티카"를 1년간 읽으며 세상을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특히 다른 사람의 영향으로부터 마음을 자유롭게 하는 법을 배웠다고 했다. 로젠버그는 그게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다. 에티카를 읽어보지만 어렵다. 그저 스피노자가 유대인이었다는 사실이 못마땅하다.
이렇게 두 인물에게 일어나는 이야기를 번갈아 가며 읽다 보면 마지막 두 챕터가 남는다. 32장은 로젠버그의 마지막 모습이다. 그는 부하들을 이끌고 스피노자 도서관에 가서 책과 초상화 등 소장품을 챙긴다. 스피노자가 읽었던 책을 넘기며 감격한다. 그러나 히브리어 책은 말할 것도 없고 라틴어나 그리스어 책도 읽을 수 없다. 혹시 여백에 스피노자의 생각이 적혀 있을까 찾아봤지만 깨끗하다. 결국 스피노자에 대해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하고, 독일이 항복할 때까지 히틀러에게 충성하는 나치 전투 신문을 발행한다. 히틀러가 자살하고 다른 나치 리더는 그의 존재를 알아주지 않아서 실망한다. 그러나 국제 재판소에서 주요 나치 전범에 속했다는 말을 듣고 좋아한다.
마지막 33장은 스피노자가 프랑코와 이별하는 장면이다. 맞다. 바로 첫 장에 나왔던 프랑코다. 사실 프랑코는 스피노자가 유대교와 생각이 다르다는 걸 증언해서 스피노자를 제명하게 만든 장본인이다. 사정이 있었다. 그 후 프랑코는 스피노자와 몰래 만나 그의 사상을 깨우쳐간다. 프랑코도 스피노자처럼 생각한다고 랍비에게 고백한다고 하자 스피노자는 말린다. 자신처럼 추방되어 고독한 삶을 겪게 할 수 없다. 프랑코는 스피노자에게 큰 위로가 된다. 세월이 흘러 프랑코는 랍비가 된다. 그러나 기존의 유대교와 뜻이 맞지 않아 가족과 몇몇 유대인을 데리고 남미에서 새로운 유대교 공동체를 개척하기로 한다.
베이비 부머 시대 많은 한국 사람처럼 나도 스피노자가 하지도 않은 사과나무 이야기를 듣고 그에게 관심이 갔다. “에티가”를 읽어봤지만 어려워서 덮었다. 그런데 소설은 이해하기가 훨씬 쉽다. 물론 이 소설이 스피노자의 철학을 다 담은 건 아니지만 스피노자가 말한 걸 조금은 알 것 같다. 아마도 이야기여서 그럴 거다. 비록 스피노자는 우회적이고 모순된 이야기보다 요점을 바로 짚어주는 기하학이 완벽한 진실을 얻게 한다고 했지만, 수리적인 이해가 부족한 나는 아무래도 이야기로 풀어야 이해가 잘 간다. 성경에 나온 기적에 관한 일부 이야기가 미신처럼 이성적 판단을 흐릴 수 있다는 건 안다. 그러나 “도덕성, 사랑과 자선, 친절, 윤리적 행동”이 담긴 이야기는 대부분의 사람이 공감할 수 있다. 그래서 스피노자가 유대인 사회에서 추방된 사건, 정신 나간 유대인에게 칼을 맞은 사건 등을 통해 스피노자의 철학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질투와 같은 감정을 극복하려면 이성이 열정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세상 모든 일은 원인과 결과로 이어지는 자연의 법칙을 따른다고 했다. 이런 이성적 사고를 깨달으면 자유와 평화를 얻게 된다고 했다.
나이가 들며 이런 마음이 드는 건 사실이다. 그래서 사람 관계에서 더 너그러워지는 것 같다. 전에는 누가 내게 상처가 되는 말을 하면 그 사람의 탓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내가 알지 못해도 내가 원인 제공을 했을 경우도 고려한다. 습관이 쉽게 바뀌지 않지만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면 조금씩 고쳐지기는 한다. 좋든 싫든 누구나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으며 산다. 따라서 다른 사람이 좋지 않은 상황에 놓이면 나도 영향을 받게 된다. 비단 사람만이 아니다.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가 자연법칙 안에서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우리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말이나 행동, 자연을 손상시키는 행위 등에 대해 신경을 써야 하는 건 바로 나 자신이 마음 편히 살기 위한 거다.
로젠버그는 잘못된 생각의 감옥에 갇혀 늘 불안했을 거다. 어떻게 마음이 편할 수 있겠는가? 그의 극심한 우울증은 히틀러의 인정을 충분히 받지 못한 이유만은 아닐 거다. 아무리 해로운 벌레라도 죽이면 기분이 좋지 않은 게 인지상정인데 사람은 오죽하랴. 그는 인간에 대한 연민을 지우기 위해 히틀러의 인정에 목매달았을 거다. 만약 그가 정신과 치료를 통해 유대인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히틀러의 환상에서 벗어났다면 역사는 달라졌을까? 사람은 자신의 잘못을 쉽게 인정하지 않는 것 같다. 늘 나는 맞고 남은 틀리다. 어쩌면 로젠버그는 패전국가 독일과 전쟁과 연관된 모든 국가에 살고 있던 사람들의 어두운 마음으로 만들어진 치료하기 힘든 악성 종양이 아니었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