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크웰의 책을 읽고 든 생각
인본주의(Humanism)란 무엇인가?” 사라 베이크웰(Sarah Bakewell)의 다소 긴 제목의 책 “인간적으로 가능한 것: 이야기로 본 700년의 인간 역사(Humanly Possible: Seven Hundred Years of Human History in Stories)”의 첫 장에 나온 질문이다. 정말 휴머니즘이 뭐지? 오지나 난민촌에서 대가 없이 봉사활동을 하거나 버려진 개 고양이를 돌보는 사람이 떠올랐다. 그러나 르네상스에 인본주의도 생각났다. 베이크웰은 둘 다 맞고 더 많은 것이 인본주의에 포함될 수 있다고 했다. “현대 인본주의자들은 공감, 이성, 다른 생명체에 대한 책임감에 따라 도덕적 선택을 선호하고 종교적 신념은 없는 사람”이나 종교가 있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조건이 있다. “제도나 교리, 또는 저승의 신학보다는 지상 사람들의 삶과 경험에 주로 초점을 맞추는” 사람이라면 종교를 갖고 있어도 휴머니스트란다. 여기서 중요한 건 도덕의 기준이 “신”이 아니라 “사람”이란 거다. 14세기 휴머니스트인 페트라르카(Petrarch)와 보카치오(Boccaccio)도 그랬다. 그들은 가톨릭 신자로 심지어 페트라르카는 서품까지 받은 사제였지만 신학 서적보다 고대 로마나 그리스 서적에 더 관심이 많았다. 보카치오는 시 쓰기를 좋아해서 페트라르카를 만나보고 싶었다. 마침 그가 피렌체를 지나간다고 하자 집에 초대해서 대학 교수직을 제안했다. 페트라르카는 교수직은 사양했지만 자신처럼 고전을 좋아하고 명석한 보카치오가 9살밖에 많지 않은 자신에게 "존경하는 스승이자 아버지"라고 하여 감동한다.
페트라르카와 보카치오는 공통점이 많다. 아버지가 바라던 직업을 선택하지 않고 책 읽고 글 쓰는 일을 좋아했다. 특히 책 모으는 게 취미였다. 그러나 아직 인쇄술이 발명되지 않아 많은 책을 베껴 써야 했다. 필사를 해 본 사람이라면 알 거다. 한 권의 책을 베낀다는 게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는지. 그러나 분명 필사는 책의 내용을 더 잘 기억나게 한다. 그렇게 한 마디 한 마디 쓴 책이 완성되었을 때 얼마나 기뻤을까? 이들은 그렇게 필사한 책과 대화도 나눈 것 같다. 페트라르카는 키케로에게 이런 편지를 썼단다. "왜 그렇게 많은 다툼과 쓸모없는 불화에 휘말렸나요? 나는 당신의 단점이 부끄럽고 괴로워요". 그들은 고대 로마 시대의 책을 읽고, 그리스 시대 책은 다른 사람을 통해 번역하여 편집하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토론하고 지적인 삶을 발전시켰다. 왜 이런 일에 몰두했을까?
당시 이들이 살던 피란체는 사회 정치적으로 격동의 시대였다. 일단 흑사병으로 많은 사람이 사망하자 사람들은 교회의 권위에 의문을 갖고 인간의 이성과 잠재력에 관심을 갖게 됐다. 물론 기독교는 여전히 건재했다. 하여 보카치오 마저 한 신부의 위협에 책을 버릴 뻔했다. 신부는 보카치오가 수집한 책을 버리지 않으면 그가 죽는 꿈을 꿨다고 했다. 보카치오는 신경이 쓰여 페트라르카에게 편지를 보냈다. 페트라르카는 “무지는 덕의 길이 아니다”이라고 답장했다. 그리고 혹시 책을 버릴 거면 자기에게 보내 달라고 했단다.
다행히 보카치오는 책을 버리지 않고 우리가 잘 아는 “데카메론(The Decameron)”을 썼다. 10인이 10일간 10개의 우화를 들려주는 이야기. 이 책의 서문에는 끔찍한 흑사병에 관한 내용이 있다. 흑사병이 창궐했을 때 페트라르카와 보카치오는 인간의 양면을 목격했다. 한편에서는 흑사병이 유태인 탓이라고 대량 학살이 일어나고, 부모조차 감염된 아이를 돌보지 않고, 세상이 끝났다고 농사도 팽개치고, 법을 어기는 도덕적 붕괴가 속출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반유대주의를 멈추도록 애쓰고 물건을 나눠주고 아픈 사람을 끝까지 돌봤다.
사람은 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나? 페트라르카도 흑사병으로 아들 손자 절친을 잃고 문학적 활동으로 위로를 얻었다. 특히 같은 슬픔을 겪는 동료에게 보내는 위로의 편지는 도덕적으로 격려하는 생각들이면서 아름다운 글 자체가 사람들의 기분을 북돋아 준다고 생각하여 문학적 기법에도 주의를 기울였다. 예를 들어 어려움을 겪는 한 지인에게 의인화된 이성이 슬픔과 기쁨의 대화에 차례로 응답하는 편지를 썼다. 이성은 행복한 생각으로 슬픔을 달래기도 하고, 기쁨이 지나치지 않도록 억누르는 역할을 했다. 그러면서 “너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렇다고 페트라르카와 보카치오가 모든 면에서 덕이 있는 사람은 아닌 것 같다. 보카치오는 화를 잘 내고 까다로웠고, 페트라르카도 인간성의 결함을 의심케 하는 이야기가 있다. 페트라르카와 보카치오는 둘 다 그리스어를 못해서 “오디세이”와 “일리아드”를 번역하기 위해 레온티우스라는 사람과 일하게 됐다. 페트라르카는 레온티우스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그가 일을 하다 말고 콘스탄노플로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겠다고 하자 돌아올 비용을 주지 않았다. 불행히도 레온티우스는 이탈리아로 돌아오는 길에 배가 뒤집혀 사망했다. 이때 페트라르카는 레온티우스의 죽음보다 그가 가져오겠다고 한 책에 대해 더 궁금해했다고 하니 좀 실망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이크웰이 지적했듯이 인문학에 대한 페트라르카와 보카치오의 공로는 크다. 지칠 줄 모르는 인문학 연구와 헌신 덕분에 사라질뻔한 책들이 생명을 얻고 인간의 지혜와 탁월함을 계속 연구할 수 있는 초석이 마련됐다. 이렇게 베이크웰은 700년의 인본주의 역사에 기여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쏟아낸다. 워낙 많은 사람의 흥미로운 일화와 인용문이 많아 다 적을 수 없지만 교육적인 면에서 내 생각과 가장 부합하는 휴머니스트는 에라스뮈스(Erasmus)인 것 같다. 그는 “교육이란 사람이 세상에 적응하고, 동료 인간들과 조화를 이루며, 친구를 사귀고, 현명하게 행동하고, 모든 사람을 예의 바르게 대하면서 지식의 빛을 공유할 수 있도록 훈련하는 것”이라고 했다.
여기서 내가 주목하는 단어는 “예의 바름”이다. 에라스뮈스가 루터의 공격성을 싫어한 것처럼 나도 전투적인 사람이 싫다. “악의에 악의를 더하는 것보다 예의 바른 태도로 본질적인 문제를 완화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예의 바름은 평등하고 친절한 마음을 포함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무시하듯이 말하거나 꾸짖듯이 말하면 전달되지 않을 거다. 그래서 인간이 선이든 악이든 자신의 길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는 에라스뮈스의 말이 인간에게 그런 자유가 없다는 루터의 말보다 설득력이 있다. 루터의 용기에 비해 에라스뮈스의 태도는 다소 소극적으로 보일 수 있다. 교황과 황제가 올바른 결정을 내리면 따르고 그릇된 결정을 내리면 관용하겠다고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루터가 교황과 결별한 후 수세기 동안 심심하면 일어난 종교 갈등과 전쟁은 정치적 투쟁으로 복잡해지면서 공동체를 파괴시켰다.
우리가 화내고 다투고 전쟁하는 것은 제대로 교육을 못 받아서 그런 걸까? 한국을 비롯하여 소위 선진국에서 교육받은 사람은 대부분 인문학 서적을 읽으며 비판적 사고도 기르고 자기 성찰도 한다. 그런데도 사람은 여전히 서로를 존중하는 가장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아 황당한 일이 벌어진다. 독서 모임도 예외는 아니다. 아이러니한 건 베이크웰의 책에 대해 토론하고 문제가 발생했다. 10여 명이 모인 자리에서 유독 두 명이 말을 많이 했다. 그중 한 명은 책도 읽지 않고 왔다. 그런데도 할 말이 많은 것 같았다. 음악이 나오는 주점이라 멀리 앉은 사람은 잘 들리지도 않았다. 모임이 끝나고 한 회원이 온라인에 이 점을 지적했다. 맞는 말이지만 예의 바르지 않았다. 두 명의 실명을 거론하며 콩글리시로 말해서 듣기 거북했다고 했다. 메시지는 계속 이어졌다. 안 좋은 말이었다. 아무도 대꾸하지 않았다. 다음날 미국인 독서 진행자가 메시지를 삭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