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아리스토텔레스를 인용하지 않아도 누구나 좋은 습관을 가지고 싶을 거다. 은퇴를 하고 나니 습관이 곧 삶의 질이란 생각이 든다. 처음 출근하는 일상이 바뀌자 많은 시간을 어떻게 메꿔야 할지 몰라 난감했다. 에이, 그냥 잠이나 실컷 자고 티브이나 보자. 그렇게 며칠 게으름을 피고 나자 불안해졌다. 한국인의 평균수명까지 20년 밖에 남지 않았는데 시간을 낭비한 게 아깝고 한심했다.
오전에 책 읽고 언어 공부하고 글 쓰고 오후에는 학원 가고 운동하고… 초등학교 방학계획처럼 시간표는 잘 짰지만 주의가 산만했다. 그래서 얼마나 집중할 수 있는지 시간을 기록해 봤다. 평균 20분. 문제는 무슨 일을 하다가 갑자기 다른 생각이 들어 그것을 하다가 처음 일로 돌아오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예를 들어 책을 읽다가 단어의 뜻을 찾아보다가, 비슷한 말이 생각나지 않아 챗GPT에게 물으며 대화하다가, 갑자기 배가 고파 초콜릿을 한 조각 먹고 자리로 돌아오면 책을 읽은 시간보다 딴짓을 한 시간이 길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직장을 다닐 때는 말이 되든 안 되든 일주일에 한 편 쓰는 목표를 비교적 잘 지켰는데 지금은 한 달에 잘해야 2편이다. 그렇다고 지금 쓰는 글이 처음 글보다 더 낫지도 않다. 그때나 지금이나 엉성하기는 마찬가진데 적어도 그때는 스스로 정한 마감을 지키려고 어지러울 때까지 의자에 앉아있었다. 지금은? 아침에 일어나면 시간이 많다고 착각하여 몇 줄 쓰다 생각이 멈추는 지점에서 고민 없이 다음 날로 미룬다. 그러나 다음날 글을 읽으면 또 다른 생각이 들어 글쓰기에 필요한 자료를 읽다가 한 줄도 못쓸 때가 많다.
이렇게 일상을 적어보니 주의력 결핍증이 확실하다. 어릴 때도 집중력이 좋은 건 아니었지만 지금은 스마트폰 때문에 더 나빠진 것 같다. 인스타를 삭제했다. 처음 인스타를 시작했을 땐 몇 년 동안 일 년에 한두 번 열어봤다. 그러다 앨범처럼 사용하며 한 달에 한두 번 들어갔다. 그 후 외국에 사는 아이들 때문에 매일 확인했다. 사실 아이들 사진은 5분이면 다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후 알고리즘이 안내하는 영상을 보다 보면 한 시간이 훌쩍 지난다. 차라리 립 밴 윙클(Rip Van Winkle)처럼 잠이나 잘 걸.
립 밴 윙클이 누구인지 아나? 워싱턴 어빙(Washington Irving)이 쓴 소설 제목이자 주인공이다. 30년 전 이 단편을 처음 읽었을 땐 이것이 미국 초등학교 권장 도서라는 게 의아했다. 게으른 립이 이상한 노인을 만나 술 한 잔 마시고 20년 자고 일어나 보니 세상이 바뀌었다. 그러면 립처럼 가장의 책임은 나 몰라라 하며 동네 아이들과 놀거나 술집에서 잡담만 하며 살아도 나중에 잔소리 심한 아내는 사망해서 딸 가족과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건가? 책을 읽고 남은 건 “공처가(henpecked husband)”란 단어뿐이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다시 읽어보니 흥미로운 미국 역사가 숨겨져 있었다. 립이 잠든 사이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했을 뿐만 아니라, 립의 조상이 피터 스터이베산트(Peter Stuyvesant)와 크리스티나 요새(스웨덴 정착지) 공격에 나갔다는 게 도입부에 보였다. 피터 스터이베산트가 누구인가? 뉴네덜란드 총독으로 지금 우리가 아는 세계적인 뉴욕시가 뉴암스테르담일 때 도시를 확장하고 법과 질서를 확립해서 재임 기간에 2000명이던 인구가 8000명으로 늘어났다. 그때 북쪽 정착민과 아메리카 원주민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은 벽이 후에 월스트리트(Wallstreet)라는 이름을 갖게 됐고, 그때 넓혀 놓은 길도 영국이 보기에 너무 넓어 브로드웨이(Broadway)라고 지었단다.
그러나 스터이베산트는 음주를 통제하고, 다른 종교 단체가 예배당을 짓는 걸 허락하지 않으며, 시민들의 환심을 사려는 시도를 전혀 하지 않아 시민들에게 인기가 없었다. 결국 시민들을 그의 말을 무시하고 성벽도 지키지 않아 영국은 쉽게 뉴암스테르담 등 뉴욕 주 전체를 점령할 수 있었다. 그래도 지금 뉴욕시에 가면 스터이베산트라는 이름이 여러 곳에 남아있다. 맨해튼에 있는 마을, 길, 아파트 심지어 학교까지… 영어 이름처럼 매끈하게 발음할 수 없는 이름을 통해 과거 네덜란드의 흔적이 남아있다.
네덜란드식 이름은 립 밴 윙클이 다람쥐 사냥을 가서 잠들었던 카츠킬 산맥(Kaatskill Mountains)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지금은 캐츠킬 산맥(Catskill Mountains)으로 바뀌었지만, 원래 네덜란드 정착민이 그 산을 네덜란드어로 고양이(kat)와 계곡(kill)을 붙여 만들었다고 한다. 아마도 산 계곡에 살쾡이가 많았던 모양이다. 아무튼 처음 읽었을 때와 달리 인명 지명을 포함해 더 많은 단어가 눈에 띄었다. 특히 립의 아내 데임 밴 윙클(Dame Van Winkle)이 shrew(바가지 긁는 여자)이며 termagant(성미가 사나운 여자)라는 것도…
데임이 정말 나쁜 부인일까? 남편이 얼마나 게으르면 그렇게 사나워졌을까? 데임은 집안을 늘 깨끗이 유지했다. 립도 그걸 인정했다. 그래서 20년이 지나 마을로 돌아왔을 때 아내가 없는 텅 빈 집을 보며 아내의 잔소리보다 더 큰 공포를 느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딸과 해후하고 예전에 자기 등을 타고 놀던 꼬맹이가 건장하고 쾌활한 농부가 되어 사위가 된 사실을 알고 딸의 아늑한 집에 함께 살며, 아내의 눈치를 보지 않고 게으름을 피울 수 있는 나이가 되어, 예전처럼 동네 호텔 앞에서 사람들에게 자신의 기이한 이야기를 전해준다.
립은 결국 자신의 습관을 고치지 않았다. 남과 잘 어울리는 마음씨 좋은 사람이니 다 늙어서 굳이 부지런할 필요도 없고, 느긋한 삶이 행복하다. 나도 어떻게 보면 “립 밴 윙클(이건 하나의 표현으로 굳어졌다)”이 아닌가 싶다. 시대에 뒤떨어지고, 잠이나 자고, 힘든 일 하긴 싫고, 이렇게 내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을 긁적이는 거나 좋아하니 말이다. 그래서 자기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긴 사람을 존경하는 것만 반복하고 있다. 어떻게 저들은 그 지겨운 연구를 연습을 습작을 반복했을까? 두뇌를 탓하고 싶은데 그건 너무 쉬운 핑계다. 탁월함이 습관이란 말을 믿기에 다른 이유는 대고 싶지 않다. 이번 주 계획을 다시 세운다. 집중 시간을 20분에서 30분으로 늘렸다. 이걸 실행하면 기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