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파적 엔딩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by 명희

학창 시절 읽지 못한 책이 많다. 그중 하나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다. 이 책의 줄거리도 대충 들어서 알고 있고 출판 당시 젊은이들 사이에서 베르테르의 옷이 유행하고 심지어 비극적인 선택을 따라 했다는 이야기도 들었지만 별로 궁금하지 않았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읽은 책을 죽기 전까지 되도록 많이 읽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다. 뭐 대단한 목적이 있는 건 아니고, 그냥 심심해서다.


65세가 넘어 은퇴를 하고 나니 앞으로 책 읽을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는 초조함이 밀려왔다. 아무 생각 없이 매일 책을 읽고, 오디오 책을 들으며 독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냥 인상 깊은 문장 하나와 그에 대한 느낌을 쓰는 거다. 자 그럼 내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를 읽고 어떻게 놀았는지 설명하겠다.


일단 괴테가 이 작품을 쓰게 된 배경을 찾아봤다. 괴테는 겨우 24세 밖에 안 된 1774년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5주 만에 썼다. 괴테가 사랑과 시련에 관한 내적 갈등을 통찰력 있게 묘사할 수 있던 건 아마도 그가 사모했던 여인이 절친과 결혼해서 그랬을 거다. 게다가 괴테의 지인이 당시 귀족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중산층으로 변호사라는 직업에 만족하지 못하며 다른 사람과 약혼한 백작부인을 흠모하다 자살했는데, 이를 계기로 소설을 썼단다.


이 책은 처음 오디오로 들었다. 그리고 독후감을 쓰기 위해 다시 책을 읽었다. 처음 책을 읽었을 때 관심 있던 부분은 로테가 도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베르테르가 죽을 수밖에 없었나였다. 베르테르는 로테가 “어떻게 그리고 어찌하여 완전한지, 그 이유를 댈 수가 없다”라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베르테르는 로테가 6명의 동생들에게 빵을 나눠주는 모습을 보고 사랑에 빠졌다. 그녀는 가정이 “행복의 원천”이라고 생각하며 책도 그런 가정생활을 닮은 이야기를 좋아한다. 무엇보다 로테는 춤추는 게 가장 즐겁다.


하긴 누군가에게 첫눈에 반했을 때 이유를 알기는 쉽지 않다. 인상은 분명히 좋았을 거다. 동생들에게 인자한 모습, 자신이 좋아하는 걸 분명히 말하는 솔직함, 명랑한 성격… 그러나 손 붙잡고 춤춘 게 관건이었다. 뭐 요즈음 시대에 빗대면 호감 가는 이성과 클럽에 갔다가 남다른 케미가 통했다고 할까? 문제는 마음을 뺏긴 상대가 약혼한 사람이란 거다. 더욱이 처음에 로테는 베르테르를 친구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로테도 문제가 있다. 어떻게 베르테르가 자기를 그렇게 흠모하는데 단순히 친구로 남기를 바랐을까? 생일 선물로 분홍색 리본을 보낸 건 무슨 의도인가? 돌아가신 어머니 이야기를 하며 “우리는 저 세상에서도 다시 만나게 될까요?”라는 질문은 왜 하나? 로테가 둔한 건지 아니면 괴테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여성은 순진무구해서 자신의 진실된 마음조차 빨리 알아차리지 못한다고 생각했는지, 로테는 베르테르와 알고 지낸 지 6개월이 지나서야 처음으로 자신의 은근한 소원이 베르테르를 자기 곁에 머무르게 하고 싶은 것임을 느낀다.


한마디로 로테는 남편 알베르트와 친구 베르테르를 둘 다 사랑한다. 남편은 엄마가 유언처럼 맺어준 사이로 성실하고 믿음직하다. 한편 베르테르는 남편이 바쁠 때 즐겁게 대화하고 동생들과 놀아주고 시를 읽고 공감할 수 있는 존재다. 로테가 이기적인 것 같지만 이해할 수 있다. 아직 나이가 어려서 그랬을 거다. 그러나 베르테르의 집착이 심해지자 단호히 선을 긋는다. 마지막에 베르테르에게 오시안(Ossian)의 시를 읽어달라고 한 건 좀 이해가 가지 않지만… 아마도 괴테가 드라마틱한 마무리를 위해 집어넣은 장면 같다.


오시안은 한때 전쟁터에서 용맹을 떨쳤던 아르민이 아들과 딸을 먼저 저승으로 보내고 통렬하게 괴로워하며 죽음을 맞이하는 내용이다. 이 시를 들은 로테가 눈물바다가 되자 베르테르도 함께 울며 그녀에게 키스 세례를 퍼붓는다. 로테는 정신이 버쩍 들며 베르테르를 밀쳐낸다. “이것이 마지막이에요. 베르테르 씨, 이제 다시는 만나지 않겠어요!” 로테가 베르테르의 정열을 받아줬다면 퇴폐소설이 됐을 거다. 그렇다고 베르테르가 자살을 선택한 건 안타깝다.


베르테르는 똑똑하고 선한 사람이지만 너무 생각이 많고 “예민한 감수성”을 가졌다. 처음 빌하임의 자연에서 안정을 느끼며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는 특히 서민층과 아이들과 어울리며 그들의 단순한 삶을 낭만적인 시선으로 바라봤다. 일을 하지 않으면서도 아이들에게 용돈을 줄 정도로 경제적인 어려움이 없었던 게 베르테르를 더 염세적으로 만들었을까? 아니다. 그는 기질적으로 명랑한 사람은 아니었다. 아마도 자신이 속한 중산층이 귀족에게 차별받는 문화도 한몫을 했을 거다. B양과 잘 되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러나 B양도 로테와 닮아서 좋아했던 거다. 베르테르에게 로테는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있는 여인이었다. 베르테르는 로테가 알베르트와 잘 살 수 있도록 배려한 듯한 유서를 남겼는데, 과연 베르테르가 그렇게 떠나고 잘 살 수 있을까? 그가 정말로 로테를 생각했다면 그 고장에서 멀리 떠났었야 했다. 생각할수록 베르테르의 자살이 이기적인 것 같다. 그는 로테를 사랑한 게 아니라 자신을 사랑했다. 로테가 알베르트와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지켜보는 고통에서 해방하려고 자살한 거다.


철학자 에밀 시오랑(Emil Cioran)은 “낙관주의자만 자살한다”라고 했다. 그러면 베르테르도 비관주의자가 아니라 낙관주의자였을까? 생각해 보라. 비관주의자는 어차피 세상은 부조리해서 죽어도 살 때보다 더 나아지리라고 기대하지 않지만, 낙관주의자는 죽으면 더 나아지리라고 기대할 거다. 실제로 베르테르도 하늘에서 로테의 어머니를 만나고 로테를 기다리겠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그는 그의 행동이 그토록 사랑했던 로테에게 얼마나 큰 트라우마가 될지 생각하지 않았다.


어릴 때 읽지 않길 잘했다. 해피 엔딩이 취향인 나와는 거리가 먼 소설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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