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헨리는 무엇으로 살았을까?

작가의 이력을 보고 든 생각

by 명희

나는 무엇을 하기 위해 태어났을까? 특별히 잘하는 게 없어서 무언가를 잘하는 사람을 보면 그들의 삶이 궁금해진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위인전을 좋아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보니 드러난 허물이 없더라도 누구에게나 표표히 어두운 그림자는 존재한다. 특히 작가들은 평범한 삶을 산 사람이 드문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재능을 부지런히 연마하여 마음을 흔드는 작품을 남긴 사람은 잘 살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이 든 건 오헨리 때문이다. 유튜브에서 한국 단편 소설을 듣다가 깜빡 잠이 들었는데 일어나 보니 오헨리의 <<구두쇠 애인>>이 낭독되고 있었다. 학창 시절 깊은 인상을 줬던 <<크리스마스 선물>>이나 <<마지막 잎새>>가 생각나서 오헨리의 단편 몇 개를 더 찾아 읽고 작가의 간략한 신상도 위키피디아를 통해 읽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가 본명을 쓰지 않고 필명을 쓴 건 횡령을 하고 도주자 신세여서 그랬단다.


가장 소중한 걸 기꺼이 상대를 위해 희생하는 부부나, 이웃 사람을 위해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나뭇잎을 그렸던 늙은 화가를 통해 애타심을 알게 해 준 오헨리가 남의 돈을 훔친 사람이란 걸 상상할 수 없다. 어릴 때 이런 사실을 알았다면 그를 이중인격자라고 쉽게 단죄하고 그의 글마저 읽지 않았을 텐데, 지금은 그의 일탈이 유감스럽지만 그보다 그가 글을 쓰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란 확신이 든다.


그렇지 않았다면 어떻게 381편이나 되는 단편을 썼을까? 그가 처음 글쓰기를 시작한 게 1887년이고 47세에 사망하기까지 약 23년간 글을 썼다고 치면 한 달에 적어도 한편 이상 단편을 쓴 셈이다. 실제로 그는 법을 피해 도망 다니고, 감옥에서 형을 살고 있을 때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이때 수감자 신분으로 소설을 기고할 수 없어서 여러 필명을 사용했는데 그중 오헨리로 유명해졌다. 그럼 오헨리는 어쩌다 감옥까지 가게 됐을까?


우선 오헨리의 본명은 윌리엄 시드니 포터(William Sidney Porter)다. 1862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골즈보로에서 태어나 일찍 어머니를 여의었지만 의사인 아버지와 친가에서 비교적 유복하게 자랐다. 고모가 운영하는 초등학교를 나오고 삼촌이 경영하는 약국에서 일하다 약사 면허까지 받았다. 당연히 어릴 때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는데 레인의 <<천일야화>> 번역본과 버튼의 <<우울증 해부학>>을 특히 즐겨 읽었다.


19세 포터는 결핵으로 인해 기침이 심해지자 텍사스로 떠난다. 처음엔 잠깐 요양만 할 계획이었다. 지인이 운영하는 목장에서 일손도 돕고 그들에게서 스페인어와 독일어도 배운다. 그러나 건강이 호전되자 아예 텍사스 오스틴에 정착한다. 제약회사에서 잠깐 약사로 일하지만, 그런 정규직보다 호텔 시가(cigar) 가게 점원으로 일하며 그가 만나는 사람을 주인공으로 글 쓰는 게 재미있었던 것 같다.


그는 다재다능했다. 입담도 좋고, 그림도 잘 그리고, 기타와 만돌린을 연주하며 여성들에게 세레나데를 불러주는 4 중창 단원이었단다. 그러니 17세 애솔 에스테스(Athol Estes)의 마음을 사로잡는 건 어렵지 않았을 거다. 부유한 집안 출신인 애솔은 부모가 결혼을 반대하자, 19세에 25세 포터와 몰래 결혼하고, 2년 후 딸을 낳는다. 그리고 포터는 텍사스 토지 관리국장인 친구 덕분에 제도사가 되어 월 100달러의 급여를 받으며 계속 잡지에 글도 싣는다.


1890년 친구가 주지사 선거에서 낙선하자, 제도사를 그만두고 퍼스트 내셔널 뱅크에서 회계원으로 일한다. 바로 이곳에서 포터는 호적에 빨간 줄이 그어진다. 3년을 일한 은행에서 854달러를 횡령했다는 혐의를 받고 해고된다. 그의 나이 32세. 이상한 건 곧바로 기소되지 않아 유머 주간지 '롤링 스톤'에 글을 쓰며 생활비를 벌다가, 잡지가 폐간되자, 휴스턴 포스트에 스카우트되어 휴스턴으로 거처를 옮긴다. 비록 첫 월급이 25달러 밖에 안 됐지만 글이 인기를 얻으며 월급이 오른다.


그는 칼럼을 쓰기 위해 호텔 로비를 배회하며 사람들을 관찰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자료를 모았다. 이렇게 글쓰기에 한참 몰두해 있을 때 연방 감사관들에 의해 횡령혐의로 체포된다. 장인이 보석금을 내줘서 풀려나지만, 재판 전날 뉴올리언스로 도주하여 온두라스까지 가서 반년을 숨어 산다. 당시 온두라스는 미국과 범죄 인도 조약이 체결되지 않아 많은 범법자의 도피처였다. 그곳에서 포터는 악명 높은 열차 강도 앨 제닝스(Al Jennings)를 만나 친구가 된다.


앨 제닝스도 괴짜다. 원래 변호사였던 제닝스는 형이 라이벌 변호사와 총싸움을 하다 사망했지만 가해자가 무혐의로 풀려나자 고향을 떠나 목장 인부가 된다. 형의 문제로 사법 제도에 불만을 품은 제닝스는 무법자 무리와 손잡고 ‘제닝스 갱단’을 만들어 기차, 잡화점, 우체국을 털었지만 실제로 돈을 벌지는 못했다. 오헨리는 제닝스의 열차 강도 이야기를 듣고 <<기차를 붙잡다 (Holding Up a Train)>>이란 단편을 써서 제닝스를 유명하게 만든다. 결국 포터와 제닝스는 둘 다 형을 살고 나와서 개과천선한다.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이 맞다면 포터를 이해하기 위해 제닝스의 행보도 잠시 적어본다. 그는 대통령 사면으로 일찍 구치소에서 석방되어 소설도 쓰고, 영화도 찍고, 배우로도 출연한다. 게다가 오클라호마 카운티 검사 후보와 주지사 선거에도 출마한다. 비록 낙선했지만 꽤 많은 표를 얻는다. 이후 정계에서 은퇴하여 자신처럼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도록 복음전도사가 되어 98세까지 산다.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Catch Me If You Can)”처럼 미국에서나 일어날 일이다. 그러니 제닝스보다 훨씬 가벼운 죄를 진 포터가 형을 마치고 작가 활동을 곧바로 할 수 있었던 건 이상하지 않다.


앞서 말했듯이 오헨리는 온두라스에 숨어 있을 때도 "양배추와 왕 (Cabbages and Kings)"을 써서 "바나나 공화국(banana republic)"이라는 용어까지 만들었다. 그 후 사람들은 바나나와 같은 단일 작물에 의존하는 경제구조를 가진 불안정한 국가를 바나나 공화국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포터는 계속 온두라스에 머물 수 없었다. 애솔의 폐결핵이 악화되어 죽어간다는 소식을 듣고 텍사스로 돌아와 자수하고 5년형을 선고받는다.


몇 달 후 애솔은 사망하고, 포터는 모범수로 3년 만에 출소한다. 수감 중에도 약사 면허 덕분에 교도소 병원에서 일하며 개별 방을 배정받아 실제로 감방에서 지낸 기록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감옥에서도 14편의 단편을 발표할 수 있었나 보다. 그러나 그가 가장 많은 글을 쓴 곳은 뉴욕이다. 1902년 뉴욕으로 이주하여 뉴욕 월드 선데이 매거진(New York World Sunday Magazine)에 매주 한 편의 단편을 1년 넘게 썼다.


너무 무리한 걸까? 이미 사망하기 이년 전부터 글을 쓸 수 없을 정도로 건강이 악화됐다. 술도 많이 마셨던 모양이다. 아마 그래서 재혼한 부인과 2년도 못살고 헤어졌을 거다. 1910년 6월 5일, 이혼한 다음 해 오헨리는 사망한다. 간경화증 당뇨병 합병증 심장 비대에 뇌출혈까지… 47세에 무슨 병이 그렇게 많았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의 단편들은 지금도 살아서 사람들에게 말을 건다.


그는 실로 모든 사회 계층의 본질을 담아내는 이야기를 그만의 방식으로 재치 있게 썼다. 주인공도 상류층 부인, 사회 초년생, 예술가, 여성 점원, 도둑, 서부의 무법자 등 다양하다. 많은 경우 등장인물들은 악덕을 갖고 있거나 비참한 처지에 놓였다. 그러나 동정심이 느껴진다. 그들은 우리에게 말한다. 대부분 인간은 관대하고 이타심을 갖고 있고, 역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강인함을 갖고 있다고. 그래서 미국인이 오헨리의 글을 좋아하고, 오바마 대통령까지 나서서 그를 사면해주려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전과 기록이 지워졌다고 있던 일이 없어지나? 오헨리의 부도덕한 등장인물처럼 포터의 허물이 안타까울 뿐이다.


<참고문헌>

https://en.wikipedia.org/wiki/O._Henry

https://en.wikipedia.org/wiki/Al_Jennings

https://www.loa.org/news-and-views/2126-o-henry-tommys-burglar/

https://ohenrymag.com/the-making-of-o-hen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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