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지아시의 <<귀향>>

독서모임에서 읽은 책

by 명희

누구나 독서모임에 가본 경험이 있다면 다음에 열거한 장점을 체험했을 거다. 억지로라도 꾸준히 책을 읽게 되고, 자신의 취향과 다른 책을 접할 수 있고, 다른 사람과 책 이야기를 하며 자신도 알고 남도 아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특히 미국 사람이 이끄는 독서 모임은 영어로 의견을 주고받아서 영어 말하기 연습도 할 수 있어서 좋다. 내 경우 마지막 이유가 가장 큰 동기부여였다. 미국에서 제법 오래 살았지만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다 보니 12년째 한국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데도 영어 말하기 능력은 점점 떨어지는 느낌이다. 그래서 용기를 내서 독서모임에 참석했다. 줌(Zoom)으로 만나는 독서모임인데도 떨렸다. 진행자가 특별히 준비해 온 질문도 없었다. 그냥 말하고 싶은 사람이 자신이 느낀 점이나 좋아하는 대목에 대해 말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고 말을 시작했는데 말이 길어져서 내가 말하고자 했던 요지가 흐려졌다. 좀 더 듣고 있을 걸...


우리가 토론한 책은 야 지아시(Yaa Gyasi)의 <<귀향(Homegoing)>>이었다. 작가 이름을 어떻게 발음하는지 궁금하여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니 '야 쟈시'라고 들렸다. "지(G)"와 "야(ya)"를 빨리 붙여 발음하는 것 같은데 한글로 표기할 때 "지아시"가 맞는 것 같다. 내 취향은 제인 오스틴, 찰스 디킨스, 토마스 하디 등 20세기 이전 작가가 쓴 소설이다. 따라서 1989년에 태어난 젊은 가나 출신 미국인 야 지아시가 낯설었다. 다시 말해 내가 스스로 찾아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다. 목차도 특이하다. 모두 익숙하지 않은 사람 이름이다. 1권 1장은 에피아(Effia), 2장은 에시(Esi), 3장은 쿠웨(Quey)… 이렇게 7명이 등장하고, 2권에도 7명의 인물이 각 장의 제목이다. 이 모든 사람이 주인공인 이야기는 구전동화처럼 들렸으며 계속 다음이 궁금해졌다.


에피아와 에시는 같은 엄마에게서 태어난 자매지만 서로의 존재를 모른다. 에피아는 판텔랜드에 불이 났던 날 태어난다. 아버지는 에피아를 무척 사랑했지만 엄마는 그녀를 학대한다. 나중에 에피아는 아버지의 아내 바아바가 자신의 엄마가 아닌 걸 알게 된다. 에피아는 아버지의 바람대로 마을 추장과 결혼할 수 있었지만 바아바의 음모로 할 수 없게 된다. 대신 케이프 코스트 성(Cape Coast Castle)에 새로 임명된 영국인 주지사 제임슨 콜린스와 결혼한다. 백인과 결혼한 현지 처녀들은 백인으로부터 많은 돈과 선물을 받았다. 바아바도 그걸 노리고 에피아를 시집보낸 거다. 그래도 한 가닥 양심은 있었는지 에피아 생모가 남긴 검은 돌 펜던트를 에피아에게 준다. 에피아는 코스트 성에 살며 비교적 편안한 결혼 생활을 하고 아들 쿠웨도 낳는다. 그러나 성의 지하 감옥에 노예가 갇혀 있는 걸 모른다. 전쟁에서 진 부족이 노예로 팔려온 거다. 그중에 에시도 있었다.


14세 소녀 에시는 엄마 아빠의 사랑을 듬뿍 받고 아산티랜드에 산다. 에시 아버지는 전쟁에 승리하여 아브로노마를 노예로 데려와 하녀로 만든다. 에시는 아브로노마가 불쌍해서 그녀의 아버지에게 딸이 있는 곳을 알려줬는데, 이로 인해 에시가 살고 있는 마을이 공격을 받아 에시가 붙잡힌다. 엄마는 에시가 붙잡히기 전에 검은 돌을 주며 에시의 언니도 검은 돌을 가졌다고 말한다. 에시는 사람이 뒤엉킨 지하 감옥에서 검은 돌을 숨겨 놨지만 노예선으로 끌려가며 돌을 찾지 못한다. 이렇게 이야기는 1760년대부터 최근까지 약 250여 년간 두 자매와 후손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알려준다. 가나에서는 흑인과 백인이 흑인을 물건처럼 거래했고, 미국에서 흑인은 물건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는다. 잔혹한 노예 생활. 노예 폐지 후에도 계속되는 제도적 차별.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흑인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면 절대로 못할 만행이 저질러진다.


작가가 궁금하여 유튜브에서 영상을 찾아봤다.

"이름을 어떻게 발음하는 게 맞나요?"

"야 지아시(Yaa Gyasi)입니다. "

"야(Yaa)가 특별한 뜻이 있나요?"

"목요일에 태어난 여자 아이입니다."

"어떻게 이 책을 쓰게 되었나요?"

"2009년에 스탠퍼드 대학교(Stanford University)에서 보조금을 받고 가나에 가서 글을 쓰기 위한 조사를 했어요. 원래 엄마와 딸에 관한 이야기를 쓰려고 했죠. 우리 엄마 고향이 파티랜드에서 가까운 곳이라 그곳을 조사하러 갔었죠. 그런데 친구가 와서 그냥 케이프 코스트 캐슬(에 가보자고 했어요. 저도 궁금했던 터라 그러자고 했죠. 그런데 가자마자 거기가 내 소설 배경이 될 거라고 느꼈어요. 관광 가이드는 그곳에서 근무하던 영국 군인이 지역 여성과 종종 결혼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영국에서 교육받고 돌아와 가나의 중산층을 형성했다고 했어요. 우리는 관광 가이드를 따라 노예가 잡혀 있던 지하 감옥에 내려갔었죠. 공기도 안 통하고 빛도 없는 곳에 수백 명 사람이 어떻게 지냈을까? 아직도 혼이 돌아다니는 것 같았어요. 바로 위가 교회였어요. 백인 군인과 결혼해서 사는 가나 여성도 위에 살았죠. 그러나 성 지하 감옥에 있는 동족이 어떤 운명인지 알지 못했다는 게 놀라웠어요."


미국에 15년 넘게 살았지만 흑인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었다. 처음에는 흑인에 대해 검증하지 않은 고정관념만 있었다. 백인보다 똑똑하지 않고 우범자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 고정관념은 미디어를 통해 강화됐다. 흑인 남성이 사건 사고에 자주 등장하고 흑인 여성은 많은 아이를 낳고 정부지원만으로 생활하고 있다. 흑인은 학교 성적도 낮고 고등학교 중퇴자도 많다. 그러나 내가 만난 흑인은 대부분 친절하고 성실히 일하며 똑똑했다. 그래서 흑인에 대한 생각이 조금 달라졌지만 그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조상이 노예였다는 게 무엇을 의미인지 몰랐다. 사람을 가족에게서 강제로 분리해서 전혀 모르는 곳으로 데리고 가서 학대하고, 죄수 임대(convict leasing) 같은 제도로 계속 억압하면 그들의 뇌가 어떻게 변할까?


분명한 건 인간이 지속적으로 탄압을 받으면 자존감이 낮아지고 탄압을 내재화하여 압제자의 시각으로 현실로 받아들인단다. 그렇게 길들여진 사고는 답습될 수 있다. 2009년 이후 유행하고 있는 후성유전학 (epigenetics) 연구에 따르면 우리의 환경이나 우리가 선택한 행동은 DNA를 둘러싼 단백질에 영향을 주고 그것이 후대에까지 전달된다고 한다. 예를 들어, 1944년에 2만 명이 아사했던 네덜란드 기근 때 자궁에 있던 태아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과체중, 당뇨병, 심장병, 정신병에 걸릴 확률이 높았다고 한다. 즉 유전자 때문이 아니라 전 세대가 겪은 기근과 같은 외상으로 인해 다음 세대가 질병을 앓았다는 거다. 이런 걸 보면 200년 넘게 탄압받고 열악한 환경에 노출됐던 흑인이 백인보다 못 사는 게 당연하다.


이제 미국 흑인은 자신의 뿌리를 찾아 아프리카 역사도 공부하고 자존감을 높이는 교육을 받고 있다. 200년 넘게 억압당했으니 그것을 치유하는데 더 많은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이런 치유 과정에 백인이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할 텐데 잘 모르겠다. 노예무역이 떠난 가나에 기독교가 들어갔단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동등하다고 했나 아니면 하느님을 믿는 사람만 그렇다고 했나? 성경은 분명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너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라고 했다.


백인은 사람을 사고 판 조상을 어떻게 생각할까?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럼 그 후엔 왜 그리 모질었나? 잘못했다는 반성이 없어서 그럴 거다. 아니 이건 백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힘 있는 자가 그랬다. 전쟁을 해서 진 사람을 노예로 데려다 팔았다. 우리 조상이 저지른 죄는 지금 나와 관계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야 지아시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에피아의 후손인 말조리가 불을 무서워하고 에시의 후손 마르커스가 바다를 싫어했다. 노예선을 타고 미 대륙으로 건너간 조상의 아픔을 몸이 기억했다.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과거의 세대도 현재와 이어져 있어서 죄에 대한 결과도 유산으로 물려받았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전 세대의 잘못을 끈질기게 추궁하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했다. 상대방이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데 저런다고 뭐가 달라지나? 그냥 용서하고 살아야지. 그러나 <<귀향>>은 후손에게 대물린 되는 죄를 고민하게 한다. 일제 감점기에 잘못했던 사람들, 군사정부 때 잘못했던 사람들, 지금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있는 사람들, 그들의 죄가 자손에게 간다고 생각하면 무섭지 않나? 지금이라도 선대가 잘못했다는 걸 아는 사람은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해야 한다. 이건 후손이 잘 되기 위한 일이다.


나도 반성한다. 다른 사람이 힘들게 사는 게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흑인이 착취당했던 게 나와 뮤관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힘들게 사는 건 그들이 부지런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아프리카계 미국인보다 열심히 공부하고 일해서 그들보다 잘 사는 거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내가 흑인에 대한 고정관념을 갖고 그들을 대한다면 인종차별을 하던 시절의 백인과 다름없이 그들을 학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보면 미국 흑인은 매우 강한 정신력을 가진 것 같다. 그렇게 모진 고난을 겪었으면서도 건재하게 미국을 지탱하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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