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혁명의 길>

알게 된 것과 생각한 것

by 명희

3주 만에 리처드 예이츠(Richard Yates)가 쓴 혁명의 길(Revolutionary Road)을 읽어야 했다. 혹시 모임 날까지 책을 다 읽지 못할까 봐 영화부터 보고 책을 읽었다. 영화는 윈스렛(Winslet)과 디카프리오(DiCaprio)의 연기를 보는 재미가 있었고 책은 주인공뿐만 아니라 주변 인물을 더 자세히 이해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러나 내용이 어두워서 딱히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런데 자꾸 생각하게 한다. "잘 산다는 게 무얼까?"


다행히 책을 모임 하루 전에 끝냈다. 그래서 애프리얼(April)이 공연한 연극을 찾아봤다. 더 페트리파이드 포레스트(The Petrified Forest). 1935년 브로드웨이에서 공연한 연극이다. 미국이 대공황일 때 애리조나(Arizona) 오지 마을에서 일어난 일. 여주인공 가브리엘은 아빠 할아버지와 함께 식당을 운영하며 프랑스 부르즈(Bourges)에서 미술 공부하길 꿈꾼다. 그곳은 엄마와 아빠가 사랑에 빠졌던 곳. 어느 날 떠돌이 영국인 알랜(Alan)이 온다. 소설 하나 쓰고 프랑스에서 8년 살았다고 한다. 가브리엘은 그에게 비용(Villon)의 시를 읽어준다. 그것을 보고 보즈(Boze)는 질투를 느끼며 떠나지만 감옥을 탈출한 갱 두목 듀크(Duke) 때문에 다시 식당에 오고 총성이 나고 보즈는 다치고 알렌은 죽고 듀크는 부자 부부를 인질 삼아 도망친다. 사실 알렌은 가브리엘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타살을 빙자한 자살을 한다. 애프리얼은 게브리엘 역을 하며 파리에 갈 생각을 했던 걸까? 영화나 책에서 그런 말은 없다. 그러나 왠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페트리파이트 포레스트도 실제로 애리조나 주 북동쪽에 위치한 국립공원이었다. 흥미로운 건 이곳을 구글 해보니 저주라는 말도 나왔다. 1930년대에 공원을 찾은 방문객 중에서 석화된 나무 조각을 기념으로 가져갔다가 이혼 사고 죽음과 같은 불운을 겪은 이야기가 많았단다. 수백 개의 석화 조각이 사연과 함께 우편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공원 박물관에는 석화 도둑들에 대한 전시도 하고 있단다. 공원 이름처럼 겁난다(I'm petrified!). 이런 저주가 아니어도 관광지 자원을 함부로 가져오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할 거다. 돌멩이 하나 가져왔다고 산이 무너질까 하겠지만 수 천년에 걸쳐 모든 사람이 하나씩 슬쩍한다면 무너질지 모른다. 그리고 가져와서 집에 놓으면 먼지 닦기 힘들고 죽고 나면 쓰레기 된다. 무슨 말을 하다 여기까지 왔지? 아. 에프리얼도 이 공원 이름이 들어간 연극을 하며 저주에 걸린 걸까? 그녀에게 닥친 일을 계속 연극과 연관 지어 본다.


애프리얼이 속했던 극단 이름도 재미있다. 월계수(Laurel). 그리스 신화를 많이 알지 못해도 월계수 이야기는 들어봤을 거다. 아폴론이 에로스를 잘못 건드렸다가 다프네(Daphne)와 이룰 수 없는 사람에 빠졌고 결국 월계수로 변한 다프네를 관으로 만들어 머리에 쓴다. 승리의 상징 월계관!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아이러니하지 않나? "다프네와 사랑을 나누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가 아니라 말할 수 없는 "식물로 변해 내 머리 위에 영원히 있습니다"이니 말이다. 승리란 내가 원하는 걸 어떤 형태로든 얻는 건가? 갑지가 사랑 이야기가 공포영화로 변한 느낌이다.


월계수 극단은 이름과 반대로 공연을 완전히 망친다. 애프리얼은 좌절한다. 동네 사람들로 구성한 아마추어 극단 공연인데 뭐 그리 심각하나? 그렇지 않다. 애프리얼은 뉴욕에서 알아주는 연기학교 출신이고 누가 봐도 우아하고 멋지다. 그런데 주인공 남자가 갑자기 아파서 감독이 주인공을 맡고 몰입이 깨지고 연극은 엉망이 된다. 애프리얼은 불안하다. 적당히 사는 동네에서 적당한 수입을 갖다 주는 남편과 딱히 공통점이 없는 이웃과 별 의미 없는 대화를 하며 계속 살 건가?


"엄마는 아마도 내가 태어나자마자 메리 고모 집에 보냈을 거야." 1920년 대 자유분방했던 부잣집 딸과 바람둥이 남자는 애프리얼을 낳고 이혼했다. 친척집을 전전하며 자랐던 애프리얼은 불쌍하다. 그래서 그녀는 결혼하기 전에 "다정한" 사람을 사랑한다고 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아이가 생겨 결혼하고 또 아이를 낳고 우울해진 것 같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모르는 것 같다. 어쩌면 자기 엄마처럼 자유로운 영혼일 수 있다. 아이들 생각은 거의 안 한다. 그러면서도 자기 동네에 평범하게 사는 사람을 비웃는다. 뭐 나도 그럴 때가 있었다. 제도에 순응하며 남들이 하는 것을 의문 없이 따라 하다가 갑자기 그렇게 하고 있는 사람을 비판했다. 특히 남편이나 자식의 성취를 마치 자기 것인 양 위세 부리는 모습이 우습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가정을 잘 지킨 여성 덕분에 많은 남편이나 자식이 목적을 달성했을 테니 공을 인정해줘야 한다. 그들 중에는 애프리얼마냥 자유로운 영혼도 있었을 테니까.


이 부부는 집도 있고 직장도 있는데 뭐가 부족해서 이런 선택을 했는지 모르겠어요. 물질적으로 너무 풍족해서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한국에서는 지금 많은 젊은이들이 집도 비싸고 직장 구하기도 힘들어서 걱정이 많은데... 이건 우리와 거리가 먼 것 같아요.


글쎄요. 저는 좀 생각이 달라요. 1950년대 미국은 지금 미국이나 한국과 흡사한 점이 있어요. 1950년대 미국은 중산층의 확 늘어서 소비하는 문화가 생겼죠. 교외에 큰 집을 사고 가전제품을 사고 신용 대출로 갖고 싶은 걸 즉시 구입하고. 이런 건 우리도 비슷하지 않나요? 물론 지금은 코로나로 여러 가지가 어렵지만, 전쟁을 겪었던 부모님 세대와 비교하면 중산층이 현저히 늘었고 소비도 증가하고 다양해졌죠. 이런 물질적 풍요로움 이면에 자리한 공허함은 보편적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남편이 돈 잘 벌어다 주고 좋은 집 있는데 뭐가 문제입니까? 그래요. 남편이 바람 좀 피웠지만 여자도 맞바람 피웠잖아요. 어떻게 자식들이 있는데 그럽니까?


맞아요. 이들 부부에게 자식이 중요하지 않았던 게 너무 놀라웠어요. 자식에 관한 한 "당신 뱃속에 있는 아이가 아니란 게 정말 기뻐요."라는 존 말이 모든 걸 요약하지 않나요? 제니퍼와 마이클. 부모에게 관심받고 싶어 아기처럼 손가락 빨고 투정 부려도 부모는 관심 주지 않죠. 그래도 늘 싸우던 부모가 파리 이주를 계획하며 사이가 좋아지자 파리에 가는 게 무언지 몰라도 싸우는 소리를 듣고 깨지 않아도 되어 다행이란 게 가여웠어요.


저는 애이프릴을 이해할 것 같아요. 늦게 깨달은 거죠. 남편이 자기가 생각한 남자가 아니라는 걸. 그럴 수 있잖아요? 그리고 남편이 늘 직장에 대한 불평을 하니까 정말 좋아하는 일을 찾아보라고 자기가 일해서 생활비 댈 테니까 파리 가지고 한 거죠. 파리로 떠났으면 달라졌을까요?


아뇨. 어디에서 사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마음가짐 아닐까요? 자기 자신을 아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상대방이 듣고 싶은 말을 하는 게 아니라 내 솔직한 생각을 말하는 것. 서로에게 좀 더 솔직했다면... 뭐 결혼하지 않을 수도 있었겠네요. 하하.


저는 환경을 바꾸면 부부 사이가 좋아질 수 도 있다고 생각해요. 아는 사람 중에 다른 곳으로 이사 가서 지금은 잘 살고 있는 사람을 알거든요.


저도 사실 몇 년 전에 비슷한 생각을 해서 캐나다에 갔다 왔어요. 한 2년 살아봤는데 다시 돌아왔어요. 나가도 별 것 없었어요. 한국이 제일 좋은 것 같아요. 여기서 다시 일을 찾을 겁니다.


책을 아직 읽지 않는 사람에게 너무 많은 정보를 주는 게 아닌가 염려되지만 나는 위기를 맞은 부부가 주제인 이 책에서 오히려 부부가 오래 살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첫째, 남편이 말이 너무 많으면 안 된다. 부인에게 위로의 말을 하려다 다른 말을 하게 된 남편. 잘못한 것 같아 수습하려다 문제가 더 커진다. 급기야 부인은 "나를 미치게 만들기 전에 제발 그만 말할 수 없어요?"라고 소리친다. 둘째, 부인이 듣기 싫은 소리를 하면 나가거나 보청기를 끄면 된다. 어떤 남편은 "잔을 더 채우겠다는 핑계를 대고 부엌에 나가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각얼음 통을 쾅쾅 두드리고 부딪쳤다." 더 나이 든 남편은 "그다음에는 반가운 바다의 정적만 들렸다. 그가 보청기를 껐기 때문이다." 셋째, 남편이 힘들 때 이해하고 의리를 지키면 고마움을 잊지 않는다. "나는 뉴욕에서 사립학교를 다녔는데 그녀는 노동자 출신이고 뭐 결혼한 이유도 잘 생각나지 않아요. 그러나 내가 애리조나와 뉴욕에서 공황 상태에 있을 때 늘 곁에서 지지했어요. 맹세코 잊지 않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서로가 좋아하는 일을 하도록 내버려 두는 거다. 남편은 도시에서 속기사로 일하는 아내에게 집에 있으라고 한다. 그러나 아내는 근면이 모든 병을 치료하는 최고의 약이라고 믿는다. "난 내 일이 좋아요. 그리고 당신도 알다시피 하루 종일 가사도우미를 쓰려면 돈이 필요해요." 어떤가? 당신은 결혼하고 싶은가? 한 40년 같은 사람을 보고 살면서 느낀 건 젊었을 때 느끼는 복잡한 감정을 잘 묵상하고 헤쳐나가면 나이 들어 마음이 편하다는 거다. 그리고 결혼을 한 사람이나 안 한 사람이나 계속 살고 있는 사람이나 헤어진 사람이나 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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