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

결혼의 조건

by 명희

1813년 영국 중산층이 살고 있는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오만과 편견." 다른 시대 다른 나라 이야기임에도 읽을 때마다 재미있는 건 사랑과 결혼에 대한 이야기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처음 이 이야기를 알게 된 건 초등학교 때. <<소년중앙>>이란 잡지 부록에서 만화로 읽었었다. 예쁜 두 자매가 멋있고 부자인 남자와 결혼하는 게 설레었다. 그리고 예쁘고 착하면 결혼을 잘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 후 책을 다시 읽고 영화도 봤지만 여전히 해피앤딩으로 끝나는 것만 좋았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읽으니 다른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 말고 주변 인물의 결혼 생활이 보였다. 사실 주인공 엘리자벳과 언니 제인은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했지만 실제 결혼 생활은 알 수 없다. 그러나 엘리자벳 부모와 샤롯의 결혼생활은 당시 많은 부부의 모습이지 않았을까? 그리고 어쩌면 지금도 우리는 이렇게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우선 엘리자벳 부모를 보자. 아버지는 어머니가 "젊고 예뻐서" 결혼했다고 했다. 그런데 "너무 늦게" 실체를 알게 되었단다. "어리석고 소견이 좁고 천박하다"라고 했다. 헉, 이런 심한 말을. 그래서 아버지는 책이 있는 서재에서 칩거한다. 결혼 전 부부의 경제적 형편은 크게 차이 나지 않았다. 물론 아버지가 땅을 임대하는 중산층이어서 1년에 2000파운드(현재 가치 20만 달러, 한화 2억 4천 정도) 수입이 있었기 때문에 어머니보다 돈이 많았지만 어머니도 부모가 물려준 재산이 1년에 160파운드였다. 그들은 결혼한 지 23년 되었지만 아내는 남편을 알 수 없다. 자기 부탁을 들어주는 것 같으면서도 비꼬아 말하고 자유분방하지만 속내를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엄마는 자식 혼사에 올인한다. 이들 사이에서 자란 다섯 자매. 아버지는 엘리자벳만 예뻐하고 어머니는 리디아만 싸고돈다. 아마도 자기를 닮은 자식이라고 생각해서 그럴 거다. 그럼 나머지 아이들은? 인물이 가장 평범하다는 셋째 딸 메리가 마음 쓰인다.


이제 두 번째 커플을 보자. 샤롯은 형제 많은 집 맏이고 노처녀고 예쁘지 않다. 그러나 그녀는 엘리자벳보다 더 신중하고 예리하다. 샤롯은 제인이 빙리에게 좀 더 호감을 보여야 빙리가 청혼을 할 거라고 했다. 그녀의 말이 맞았다. 그래서 달시가 제인을 오해했고 빙리에게 제인과 사귀지 말하고 했던 거다. 그리고 샤롯은 엘리자벳이 알아차리기도 전에 달시가 엘리자벳을 좋아하는 걸 눈치챘다. 그런 그녀가 엘리자벳에게 차인 콜린즈의 청혼을 받아들였다. 왜 그랬을까?


당시 영국 중산층 여성들은 경제권이 없었다. 결혼하기 전에는 아버지나 남자 친척에게 의지했으며 결혼하면 남편이 모든 걸 관리했다. 따라서 경제력이 있는 사람과 결혼하는 게 생존과도 연결되었을 거다. 그런데 샤롯네는 엘리자벳네 집만큼 형편이 좋지 않다. 결혼하지 않으면 나중에 남동생에게 구걸해야 하는 신세다. 벌써 27살. 엘리자벳보다 일곱 살이나 많다. 그러니 엘리자벳네 집을 물려받는 콜린즈가 청혼했을 때 마다할 이유가 없다. 더구나 그녀는 결혼에 사랑이 전제되는 걸 믿지 않는다. 엘리자벳은 어떻게 콜린즈처럼 잘난척하며 아부하는 사람과 결혼할 수 있냐고 말하지만 샤롯 입장에선 나쁜 선택이 아니다. 적어도 콜린즈는 샤롯을 존중한다. 사람들에게 그녀가 꾸민 집을 자랑스럽게 소개하지 않나? 그래서 샤롯도 남편이 원하는 걸 잘 거들어준다. 레이디 캐서린의 잔소리를 묵묵히 들어준다. 게다가 콜린즈가 25살이니 연하남과 결혼한 거다.


사실 유럽에서 사랑해서 결혼한다는 개념은 18세기 말 19세기 초에 시작되었다. 당시 계몽 사상가들은 "개인이 행복할 권리"를 장려했다. 그러나 그전에는 실용적인 목적을 위해 결혼했었다. 정치적 동맹을 맺고 자본을 늘리고 노동력을 확장하기 위해서. 이런 목적은 요즈음에도 남아 있지 않나? 그래서 아직도 비슷한 가정환경과 학력과 재력을 보는 거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는 그런 편견을 깨려고 한다. 엘리자벳이 처음 본 달시는 오만했다. 아는 사람 하고만 춤추고 자기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러나 달시 입장에선 부유한 신랑감에게 너무 티 나게 딸을 들이미는 엘리자벳 어머니 같은 사람이 불편했을 거다. 그래도 그렇지. "나를 유혹할 만큼 이쁘지 않아"라는 말을 들은 엘리자벳 마음이 어땠을까? 두고 보자. 뭐 조금은 이러지 않았을까? 그래서 위캠이 달시를 모함했을 때 섣불리 믿었을 거다.


그럼 달시와 엘리자벳은 어느 시점에서 서로에게 호감을 느꼈을까? 달시는 엘리자벳이 솔직하고 당당하게 자기 생각을 말할 줄 알고 제인이 아플 때 정성껏 돌보는 모습을 보고 나중에 자기 여동생과도 잘 지내겠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한편 엘리자벳은 처음부터 달시에게 끌렸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단번에 거절당하고 자존심이 상했지만 생각지도 않게 다가오는 그를 점점 사랑하게 된 것 같다. 편지를 읽고, 펨벌리를 보고, 리디아의 문제를 해결하며 생색내지 않는 걸 보고. 이 둘은 서로를 존중하고 존경했다. 엘리자벳 아버지도 그녀가 존경할만한 사람이 아니면 결혼을 결정하지 않았을 거라고 했다. 그러나 그건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제인이 빙리와 결혼한 건 존경해서라기 보다 심성이 온화해서다. 그래서 배우자를 만나기 전에 먼저 자신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어떤 가치를 갖고 무엇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정리하면 그 당시 이상적인 미혼 여성은 예쁘고, 총명하고, 착하고 알뜰한 사람이었고 이상적인 미혼 남성은 잘 생기고, 돈 많고, 말이나 글을 잘 쓰고, 친절해야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 만나서 끝까지 잘 사는 건 부부만이 알 수 있을 거다. 엘리자벳 어머니도 예쁜 것뿐만 아니라 착하게 보였을 수 있다. 그녀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서 어느 정도 재산이 있는 베넷 씨를 유혹했을 거다. 오히려 아버지가 자신을 몰랐던 것 같다. 그러나 그런대로 해로하고 있으니 살만한 거다. 콜린즈나 샬롯도 자기가 원하는 배우자가 누구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웃 부자에게 오글거리게 칭찬하는 남편을 참을 수 있는 거다. 글쎄. 내 생각에는 제인 오스틴이 너무 이상적인 결혼을 상상해서 결혼을 못한 것 같다. 그리고 지금이라면 결혼하지 않아도 J. K. 로링만큼 유명해서 돈 걱정은 없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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