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날

부부 싸움

by 명희

"여보 내 귀걸이 봤어요?"

"왜 또 잃어버렸어? 당신 하는 게 그렇지."

"'또'라뇨? 내가 언제 귀걸이를 잃어버렸어요?"

"당신 전에도 귀걸이 잘못 놨다가 잃어버렸잖아. 칠칠치 못하게... 잃어버려도 싸다. 앞으로 귀걸이 하지 마."

"도와주지 않을 거면 말하지 말아요. 당신은 그렇게 내게 기분 나쁜 말을 하면 속이 시원해요? 그렇지 않아도 귀걸이를 어디다 놨나 생각이 안 나서 한심하다고 자책하고 있는데 당신이 꼭 그렇게 보태야겠어요?"

"당신이 늘 부주의하니까 그렇지... 그런 말을 듣게 했잖아."

"늘 그렇지는 않아요."

"전에도 샤워하다 하수구로 내려갔잖아."

"그 후로 조심했어요... 어제 분명히 빼놓은 것 같은데 생각이 안 나서 속상한데 당신은 어떻게 그렇게 모욕적인 말을 해요?"

남편이 조용하다. 잠시 후 "여기 있네." 안락의자 옆 테이블 아래에 떨어진 귀걸이를 발견했다.

"고마워요. 내가 착해서 당신이 한 말 용서한다."

"하여튼 당신은 부주의 해."

"이제 그만. 한 마디만 더 하면 나 정말 화나요."


딸아이가 엄마 아빠 좋은 시간 보내라고 스위트룸에 호캉스를 보내줬다. 그래서 전날 룸서비스에 저녁 칵테일 뷔페에 맛있는 것 많이 먹고 냄새 좋은 목욕물에 한참 담그고 때까지 밀고 폭신한 침대에서 푹 잠자고 일어나서 맛있는 호텔 조식 먹으러 가려고 준비하다 귀걸이를 찾지 못한 거다. 이 사건이 있기 전까지 남편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남편이 쪼잔하게 돌변하는 순간이었다.


남편의 말이 틀린 건 아니다. 내가 그동안 귀걸이를 잘못 간수하긴 했다. 다이아몬드 귀걸이를 너무 잘 둔다고 봉투에 넣었다가 물건을 정리하며 버리기도 했다. 그래서 여행 갈 때는 모조 귀걸이를 한다. 그러나 자주 쓰던 물건을 잃어버리면 가격과 상관없이 마음 상하는 일이라 조심한다. 그런데 또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니 한심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보다 왜 기억이 안 나지? 벌써 치매인가? 이렇게 초조한 마음이 든 순간에 남편의 날카로운 비판이 평소보다 더 아프게 들렸다.


그러나 이상하다. 그렇게 화가 나지 않았다. 젊었을 때 같았으면 이런 말을 듣고 속상한 마음을 이야기하지 않고 그냥 오랫동안 침묵했을 거다. 내 마음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뾰로통한 얼굴로 째려만 봤을 거다. 그러나 이제는 내 마음을 침착하게 말할 수 있게 됐다. 이건 남편이 그동안 나를 오래 잘 참아줘서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남편에게 듣기 싫은 말을 들었는데 문득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 큰 소리가 끊이지 않는 집에서 자라다 보니 내 마음을 잘 이야기하지 못했다. 문제가 생기면 혼날까 봐 말하지 못하고 혼자서 울던지 자책했다. 그래서 결혼하고도 문제가 생기면 비슷하게 대처하며 내 감정을 들여다보지 않고 내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상대가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남편은 내게 매우 너그러웠다. 적어도 내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되었다. 내게 특별히 요구하는 게 없었다. 간이 안 된 반찬을 주면 싱겁다고 했다. 그래서 소금을 넣어 먹으라고 하면 그렇게 했다. 집안이 어지럽다고 생각되면 자신이 치웠다. 내가 이미 청소했는데 다시 하는 게 조금 거슬렸지만 나보다 청소를 더 잘하는 것 같아 내버려 뒀다. 그래서 집안에 큰 소리가 나지 않았다. 무엇보다 내가 늦게 공부를 다시 시작할 때 묵묵히 뒷받침해주며 늘 응원해줬다. 그래서 남편 덕분에 마음이 평안해지고 나 자신을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이렇게 좋은 남편이어도 기분 나쁜 말을 할 때도 있고 그러면 금방 서운해진다.


"여보 그런데 아까 왜 나한테 그렇게 밉게 이야기했어요?"

"당신이 부주의하니까 그렇지."

"그래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아무 말이 없다. 남편의 새끼손가락을 갔다가 내 새끼손가락에 건다. “약속. 미운 말 안 하기."

뭐 앞으로 미운 말 또 할 수 있다. 그러면 그냥 또 이렇게 화해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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