놈 촘스키(Noam Chomsky)를 언어학자로만 알고 있었는데 에드워드 허먼(Edward Herman)과 공저한 매뉴팩처링 콘센트 (Manufacturing Consent)라는 책을 읽으니 그가 사회학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 제목부터 난해하다. 동의 제조? 합의 생산? 무언가 공장에서 물건을 만드는 느낌이다. 통상 물건은 일정한 기준에 따라 똑같은 형태로 생산하는데... 자발적인 동의를 제조한다고? 누가 무슨 이유로 어떤 동의를 제조하는 걸까? 두 학자에 따르면 영향력이 있는 엘리트 미디어가 돈을 벌기 위해 정부와 기업 등 특수 이익 단체를 위해 대중의 지지를 동원한다고 했다. 이제 미디어는 더 이상 정치권력을 견제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대변한다고 했다. 사실일까?
미디어를 대놓고 권력의 꼭두각시라고 비판했으니 그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 하여 두 학자는 마치 논문을 쓰듯이 방대한 자료를 비교 분석하여 미디어 생태를 프로파간다 모델(propaganda model)이란 개념으로 정리했다. 프로파간다? 그건 세계 1차 대전 때 협상국과 동맹국이 서로에 대해 나쁜 이야기를 퍼뜨려서 대중을 화나고 두렵게 했던 선전이 아닌가? 그래서 협상국 국민도 동맹국 국민도 자국이 전쟁에서 이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많은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러니 프로파간다는 특별한 목적을 가진 유언비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허먼과 촘스키는 미국 사회에서 미디어가 프로파간다를 만들어내는 기계라고 주장했다. 대중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해서 책임 있는 정치참여를 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아니라 정부나 자본가가 원하는 방향으로 여론을 이끈다고 했다. 이슈를 만들고 어떤 뉴스는 강조하고 다른 뉴스는 잠재우며 권력 집단의 이익이 손상되지 않도록 민심을 조정한다고 했다.
그러나 뉴욕 타임스도 CNN도 권력을 비판하는 보도를 하지 않나? 비판하지만 여전히 부와 권력의 불평등이 존재하는 사회 구조 안에 있기 때문에 의도하지 않더라도 권력을 누리는 자들이 대중에게 하고 싶은 말을 대신 말해준단다. 이건 보수냐 진보냐의 문제가 아니라 미디어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하는 역할에 대한 문제다. 허먼과 촘스키에 따르면 미디어는 다음 5가지 필터를 통해 권력의 구미에 맞는 "적합한" 뉴스를 걸러내서 대중에게 전달하고 대중의 동의를 제조한단다. 첫째 미디어 회사들은 재벌의 자회사고 이들의 목표는 돈을 버는 거다. 이를 위해 정부의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 GE와 위스팅 하우스(Westinghouse)의 경우 원자력 및 군사 연구 개발을 하고 해외 판매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는데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다. 마찬가지로 리더스 다이제스트 (Reader's Digest), 타임(Time), 뉴스위크(Newsweek), 영화 및 TV 신디케이션 판매자도 외교적 지원에 의존하여 미국의 상업 및 가치와 시사 해석을 외국에 판매한다. 요컨대 지배적인 미디어 회사는 부유한 소유주의 눈치를 봐야 하며 다른 주요 기업, 은행 및 정부와 밀접하게 공통의 이해관계가 있다. 따라서 이런 관계가 뉴스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둘째 미디어는 구독자나 시청자가 아니라 광고주를 통해 돈을 번다. 티브이 프로그램이 존재하는 건 광고주가 프로그램을 구매하고 비용을 지불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특정 방송 프로가 기업주의 이념이나 기업 이익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여겨지면 후원을 거부한다. 예를 들어 공영 방송국 WNET는 다국적 기업에 대해 비판적인 다큐멘터리를 방송했다가 후원이 끊겼다. 다큐가 "반미는 아닐지라도 근본적으로 반기업적"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광고주를 불편하게 하는 프로그램은 팔리지 않는다. 구매 분위기를 방해하는 심각한 논쟁이 있는 프로그램은 원하지 않는다. 그냥 가볍게 즐기면서 판매 메시지에 부합하는 프로그램을 원한다. 따라서 미디어도 정책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중요한 정보보다는 광고 시간을 늘리면서 더 많은 수입을 창출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방송하게 된단다.
셋째 미디어는 신뢰할만한 정보를 계속 안정적으로 공급받아야 뉴스를 만들 수 있는데 그런 정보를 공급하는 곳이 바로 백악관 국방부 국무부란다. 지역적으로는 시청과 경찰서 기업과 무역 단체도 뉴스로 다룰만한 가치 있는 정보를 정기적으로 제공한다. 미디어는 정보를 공급받아서 좋고 정부는 경제와 민생에 관한 문제를 전문가의 입을 통해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어서 좋다. 이렇게 하면 미디어는 뉴스를 객관적으로 전달한다고 주장할 수 있고 비용도 적게 든다. 편견과 위협을 유발할 수 있는 출처의 자료는 신중한 확인과 값비싼 연구가 필요하지만 출처가 확실한 정부 보고는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미디어는 경제적 필요성과 이해관계의 상호성에 의해 강력한 정보 소스인 정부와 공생 관계가 된단다.
만약 미디어가 정부나 권력을 가진 기관을 비판하거나 이익 창출에 딴지를 거는 방송을 내보내면 어떻게 될까? 바로 플렉(Flak)이라는 비난 세례를 받게 된단다. 편지 전화 탄원서 재판 연설 법안의 형태로 불평 위협 징벌이 가해진다. 그런 방송을 후원하는 회사의 물건을 보이콧해서 결국 광고주는 후원을 철회하게 된다. 매카시(McCarthy) 시대에 광고주, 라디오, 티브이 방송국은 레드 헌터들의 제품 불매에 대한 위협으로 공산주의자 색출을 강요받았다. 그래서 직원을 블랙리스트에 올리기도 했다. 이처럼 플렉은 엘리트 권력의 생각과 다른 특정 종류의 사실, 입장 또는 프로그램을 매도하고 폄하한단다. 1970년대와 80년대에는 플렉을 생성할 목적으로 조직되었다고 볼 수 있는 많은 협회가 생겼는데 기업은 정치적 투자뿐만 아니라 이들 협회에도 후원했다. 이를테면 1980년에 조직된 미국 법률 재단(American Legal Foundation)은 공정성 원칙 준수 및 명예훼손 소송을 전문으로 하여 미디어 피해자를 지원한다. 웨스트모어랜드(Westmoreland)가 CBS를 상대로 1억 2천만 달러의 명예훼손 소송을 가능하게 한 것도 캐피털 법률 재단(Capital Legal Foundation) 덕분이다. 그러나 플렉을 가장 많이 생산하는 기관은 뭐니 뭐니 해도 정부다. 정기적으로 언론을 공격하고, 위협하고, 시정하며 기존 노선에서 벗어나는 것을 억제한단다. 사실 뉴스 관리 자체가 플렉을 생성하도록 설계되었다고 본다. 대통령은 정기적으로 기자회견을 갖고 연설을 하는데 레이건의 경우 많은 미국인을 매료시켜서 소통의 달인이라는 이미지를 얻었다. 그래서 굳이 회유하지 않아도 대중이 알아서 레이건을 비판하는 언론을 질책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미디어가 대중의 동의를 제조하기 위해서는 공적이 필요하단다. 미국에서는 공산주의가 공적이다. 공산주의 하면 우선 떠오르는 게 사유 재산이 없다는 것 아닌가? 그러니 재산이 많고 이로 인해 우월한 지위에 있는 사람에겐 위협이 아닐 수 없다. 아니 아주 작은 집을 소유한 사람에게도 달가운 사상은 아니다. 게다가 공산주의 국가에서 자행하는 폭력이 알려지면서 미국은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이데올로기를 정치의 첫 번째 원칙으로 삼았다. 반공은 적에 대항하여 대중을 동원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재산 이익을 위협하는 정책이나 공산주의 국가나 급진주의를 수용하는 정책을 옹호하는 모든 사람에 대해 반공으로 대항하면 됐다. 즉 반공은 정치적 통제 메커니즘으로 작용했단다. 그래서 인도네시아가 동티모르에서 대량 학살을 했어도 미국은 무기를 팔며 뉴스 보도를 거의 하지 않았지만 비슷한 시기 캄보디아에서 일어난 대량 학살은 공산당 크메르루주가 한 일이므로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단다. 그리고 공적의 경우 과장과 가짜 사진을 더해 대중이 더 분노하게 만드는 건 큰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어떤가? 1988년에 쓴 책이니 자료는 낡았지만 이론은 여전히 통한다고 생각한다. 한국도 그렇지 않나? 다른 건 모르겠고 아침이나 저녁 시간에 전문의나 교수를 초청해서 건강이나 기타 생활에 대한 정보를 주는 방송을 보면 그런 느낌이 든다. 젊은 친구들은 주로 OTT 서비스를 통해 콘텐츠를 보니까 티브이에 나온 선전은 아마도 나이 든 세대를 겨냥한 걸 거다. 그래서 건강에 관한 문제를 특히 많이 다룬다. 어디가 아프세요? 그건 무엇이 부족해서 그런 겁니다. 그러니 이걸 들면 좋아요. 그리고 채널을 돌리면 홈쇼핑에서 그런 성분이 들어간 영양제나 건강 보조식품을 판다. 드라마에서도 그런 식품을 챙겨 먹는 걸 보여준다. 먹으면 좋다는 게 무슨 해가 되나? 이렇게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런 걸 막 먹어도 될까 의문도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사들이 나와서 말하고 낯익은 연예인이 효과가 있다고 말하니까 마음이 움직인다. 그래서 어떤 물건은 결국 사서 나도 쓰고 친구에게도 나눠줬다. 이렇게 판매하여 수익을 올린 회사는 누구의 소유일까? 분명히 방송은 우리를 길들이고 있다. 골치 아프게 생각하지 않아서 그렇지 몰랐던 이야기는 아니다. 뉴스는 차치하고라도 즐겁게 보는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는 늘 무엇이 가치 있고 유행하고 지향해야 할 태도인지 직간접적으로 주입받고 세뇌된다. "와 서울대학교를 나오셨어요?" 가수도 배우도 좋은 학교를 나오면 반응이 다르다. 그래서 좋은 학교에 가고 싶고, 좋은 직업을 갖고 싶고, 잘 생겨야 하고, 월급이 많아야 하고, 어디 살아야 하고, 뭐 이런 가치가 형성된다. 심지어 어떤 사건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갖는 게 옳은지 말해주고 있다. 국가에 기쁜 일이나 슬픈 일이 있을 때 함께 공감하는 게 나쁘다는 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려주는 걸 믿고 반응하기 때문에 알려준 정보가 얼마나 정확한지 허먼과 촘스키처럼 비교 분석하여 판단해야 하지만 하기도 힘들고 귀찮기 때문에 그냥 알려주는 대로 믿는다. 그러나 허먼과 촘스키는 우리가 좀 더 자유롭고 좀 더 민주적이고 좀 더 좋은 사회를 원한다면 미디어를 잘 분석해야 한다고 했다. 지배적 엘리트 그룹이 어떤 의도를 갖고 사회가 기능하는 방식을 결정하는지 알아야 한다. 엘리트들이니까 잘할 거다. 그러나 누가 지켜보고 있다면 더 잘할 거다. 그래서 권력에 반대되는 의견이 필요하고 유행하고 인기 있는 것에 의문을 가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