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수
연구센터는 겉으로 보기엔 안정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센터장의 추진력으로 Y시 특산물인 마늘을 활용한 소재 개발이 시작됐고, 관련 기관들과의 협업도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기존 인력들의 노하우에 O대표의 실행력이 더해지면서 새로 설립한 네트워크 업체도 순항하는 듯 보였다.
겉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대표의 시선은 다른 곳에 있었다.
그의 가장 큰 염원은 단 하나였다.
Z사 전용 생산 공장이 하루라도 빨리 완공되어 생산에 들어가는 것.
그러나 공장 건설은 욕심으로 속도를 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시계를 감듯 시간을 당길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그때까지 공장 건설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공장이 완공되면 P사 인력이 들어가 운영할 것이고, 나는 그전까지 행정 지원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P사 인력이 어떻게 구성되는지, 누가 채용되는지에 깊이 관여하지 않았다.
이미 Z사와의 협약을 성사시키는 데 힘을 쓴 K회장의 인력이 임원으로 활동하고 있었고, 그들이 알아서 굴러가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판단은 틀렸다.
P사에는 두 명의 임원이 있었다.
한 명은 Z사 영업을 담당했고, 다른 한 명은 공장 건설을 맡고 있었다.
문제는 두 사람이 서로 견원지간이었다는 것이다.
나는 그 둘 사이에서 실무를 정리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영업을 맡은 임원은 “Z사의 요구사항”이라는 명분으로 아직 완공되지도 않은 공장의 공장장을 채용했고, 실무자가 필요하다며 추가 인력을 뽑기 시작했다.
건설을 맡은 임원은 실체도 없는 공장을 근거로 정부지원사업을 추진했고, 그걸 받기 위해서는 ERP와 MES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며 솔루션 업체와 계약을 추진했다. 솔루션 업체에는 바로 계약금까지 입금해야 한다고 했다
ERP는 전사적 자원관리 시스템, MES는 생산관리 시스템이다.
정상 가동하는 공장이 있다면 필수적인 시스템이다. 하지만 그때는 아직, 생산 실적조차 없는 상태였다.
비용은 빠르게 늘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두 임원은 서로 추진하는 걸 험담하기 바빴지, 자신들이 하고 있는 건 정당화하고 있었다.
그 사이에서 운영비를 받아야 하는 나는 매번 본사에 올라가 설명 아닌 설명을 해야 했다. 왜 이 지출이 필요한지, 왜 지금 이 인력이 필요한지.
분기를 마감하고, 반기를 정리하며 지출 내역을 하나씩 들여다보면 채워지는 곳 없이 새어 나가는 부분만 보였다.
연구센터도, P사도 수익은 거의 없는데 비용은 계속 늘고 있었다.
특히 ERP와 MES 계약은 나에게는 불필요해 보였다.
이 분야는 내가 IT 영업과 PM을 하며 가장 오래 경험했던 영역이었고, 적어도 시점만큼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대표에게 건의했다.
“지금은 아닙니다. 조금만 계획을 조정하면 막을 수 있는 비용입니다.”
돌아온 대답은 짧았다.
“그대로 두세요.”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지금 당장 필요하지 않은 인력을 충원해야 하는지, 왜 생산도 시작되지 않은 공장에 시스템부터 얹어야 하는지.
조금만 속도를 늦추면 불필요한 누수는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그런데 왜, 굳이 그대로 가야 했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